고량포 역사기행   

  

  

  고량포를 찾아서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물 적벽을  흘러돌아  절경을 바라보다가  아쉽게도  고량포 여울목 가차이 가서는 그만 되돌아 나온다.

민통선에 가로막힌 것도 사실이지만  고량포 여울목에는 수심이 얕아  사람이 그 저 건너가게도 생겼단다.

멀리서 고량포를 바라보자니 흐끄므레한 그 모습이 바로 이 자갈마당이었나 보다.

이런 자연적인 자갈마당이 질편히 드러누웠으니 물턱이 생기고  낮고 좁아진 턱으로 통과하는 물살은 드쎄어서 여울목이라....

여울이란 이름은 그저 듣기에 어감은  예쁘지만  아서라~  당찬 물살이다.

사진에서도 그 여차없는 물길의 맥이 짚어진다.

 

 

그러나 어이없는 일은 며칠 전, 황포돛배안에서   마주 바라다보이는 고량포가  어드멘지  방향감각을 상실해버렸다.

북쪽이라는 것만 알 뿐....바로 코앞이 민통선이고....경순왕릉이 있단다. 그제서야.....아!! 내가 가봤던 곳임을 알아차렸다.

블로그를 쓰기도 전에 경순왕릉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군 초소가 있었고  아직 해가 걸린 당낮인데도 출입이 허용된 시간을

지났노라는 말에 애써 달려간 길을 되돌린 적이 있었다.  그랬던 경순왕릉을 지난 여름에야 찾아갈 수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라니~~

각종전파기기의 장애로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한 마리 벌처럼 귓속이 이명감으로 앵앵거려왔다.

<아 거기가 거기였구나~~~>  민통선안에 위치한 미수허목의 묘역도 주저치않고 통과시켜달라며 홀로 찾아 갔지 않은가?

 정 그렇다면 고량포를 당연 찾아가봐야지~~  생각한  곧  나흘 뒤 고량포를 다시 찾아들었다.

 

 

아는 것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알고 난 뒤의 고량포는 새삼 느낌이 다르게 닿아온다.

개성이 가까우므로 개성에서 쓸 물자를 서울 마포나루를 위시 경기북부지역의 농산물을 이 곳 고량포까지 배로 실어 교역을 했던

곳이라 한다. 개성으로 보내는 물자가 부려지는 규모가 큰 나루로 전쟁 전 경기도 장단군이었고 그 당시 화신백화점이 있었으며

문산 인구의 3배가 넘는 번화한  곳으로 장단군 사람들은 개성으로 걸어다니거나 자건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개성에서도 자건거를 타고 고랑포로 놀러왔는데 1시간 가량 걸렸다고 한다.


 

물이 얕아서 고랑포 여울목으로 한국전쟁 때 인민군 탱크부대가 건넜고 1968년 북한 124군 소속 김신조 외 30명이 건너왔던 곳이다.

더 정확하게는 고량포에서 1km더 가면 북한공비들이 침투한 장소라고 이정표를 보고 더 깊숙히 들어갔으나....

이런~ 정말 민간인 출입금지의 바리케이트가 민통선임을 실감케했다.

차를 되돌려 나오는 길에 보이는 팻말이 <지뢰조심> 이란다,  머리끝이 쭈뼛서는 살벌함....아직 이 곳은 전쟁터다.

그리고 보니 여기저기 강둑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길은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계속 <지뢰> 표시가 되어있다.

 

 

개성이 가차운고로 학자들과 문사들이 즐겨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는 곳,

황진이가 부운거사 김경원이를 눈물지으며 그리워했다는 ........바로 이 곳! 임진강!

개성 송악산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데, 민통선에 가로막혀 물길 타고 흘러보지 못하는.....연결될 수 없는 두지나루와  임진나루~~

언제쯤이면 임진강은  철조망에서 풀려나 적벽루 아래를 거침없이 오가며 풍류를 즐기는 묵객들이 노닐까?

그래 ...단 두마디의 말, 자유!! 

묵묵히 서있는 저, 적벽도  침묵의 강물도  시퍼런  자유의 염원을 恨으로 품고  흐르고 있을 터!

아~ 애달퍼라~~


 

5월의 임진강은 너무 화창한날이어선지 되레 뿌우옇다.

 

마음같아서는 바지가랑이 듬성듬성 걷어붙인 남편 등을 떠다밀어 투망이라도 던지라고 해볼까? 

 

남쪽으로 내려오던 강물이 북쪽으로 휘어져 흐른다. 자유로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흘러 한강과 합류하고 서해로 흘러든다.

 

영화를 찍어도 좋을 장소같은 곳....

나룻배를 타고 님을 떠나보내는 눈물바람의  별리의 장소로도 어울릴 것 같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광이다. 

이 곳이 철조망으로 묶인지 어느덧 56년이 흘렀다니....왜 아니 그럴까......

이 곳은 56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이다. 

 

 

나도 치마끝 뱅뱅 싸잡아 돌려 속옷에 질러넣고 강물에 들어가면  여기저기 꼬물거리는 다슬기가 연신 잡힐 것만 같다.

 

고량포구에 다다랐다.

 

고량포구는 철책으로 굳게 닫겨있었다.
민간인 출입을 금한다는 빨간 글씨의 경고판이 터억 가로막는다.

 

 

황포돛배안에 걸린 번성했던 고량포구의 옛사진

 

대신 아쉬운 맘 달래라고 고량포구를 조망할 수있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詩碑가 서있고... 

 

시비의 전문을 읽자니....(성원경詩)

'내 고향은 장단 고량포외다. 달밝은 밤일랑 징개미 춤추었고 비에젖은 날이면 자라 덩실 노닐었소

봄이면 장구채, 삘기,찔레, 싱아먹고....~~~어이타 인가없는 휴전선이 웬말이오!

 

오른쪽  고량포, 적벽이 보인다.

 

와글와글...지금이라도 옛사람들의 자취가 눈에 밟히는 듯.....환청이라도 들려 올 듯 한 이 곳!
왁자지껄 분산했을 고량포구의 죽은 듯....고즈넉함이 웬 말인지.....

 

고량포구의 옛모습

 예전 고량포구에는

학교가 있고  문방구가 있고 우체국지소, 화신백화점,변전소,금융조합, 곡물검사소, 우전시장, 여관, 시계포 등이 있어서 번화하던 곳~

 

가까이 다가가니....더 보이질 않는다.

 

바로 이 곳이 어림잡아 시계포가 있던 저잣거리일테다. 그 오른쪽이 화신백화점이 있던 장소일테고.

오른쪽 2~3시 방향으로 들어가면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능'이 있다.

신라의 왕이 왜 이 곳에 ? 라는 질문이 생기지만 다음글로 미루기로 하고~~

 

북한공비가 바로 침투했다는 곳....

고량포에서 1km를 더 들어가자니 바리케이트가 앞을 처억가로막네요.
 차를 돌리려는데....그제사 눈에 보이는 <지뢰>란 글자들~~

 

산나물,지뢰....지뢰...산나물....산나물이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는...지뢰, 지뢰밭이란다......

지금 이곳은 전쟁중!!!

돌아 나오다가 먼-눈으로 홀깃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강!  우리나라 7대강중의 하나인 임진강~~

 

고량포, 묻혀버린 역사속으로....다가가보니

철조망에 갇혀버린 고량포  적벽만이  임진강 여울목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다음글/경순왕릉

 

 

 

에도 봄은 왔다.

얼었던 강이 풀리고 완연한 봄이 왔다.  강물에 봄빛이 한껏 녹아난 듯,  물빛은 푸르고 점잖은 듯 잔잔하다.

물은 원래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어서 양쪽의 강둑이 낮은 곳으로 쏠려 들어가기 마련이다. 여름우기에 접어들면 자칫 범람하기 쉬운 강이기도 하다.

다리 너머 낮은 곳, 기다란 밭뙤기엔 모종을 심었는지 낮은 비닐을 씌우고  참외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바쁜 일손이 보인다.

하늘에 그 운을 맡기고 다 앗기더라도....어쩔 수 없는 농사를 짓고 있다.

 

연천군으로 들어서는 곳은 북한지역인 중면 여척리로 중면 횡산리와 왕징면 강내리에서  누인 ‘S'자형으로 멋지게 굽어 흐른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는 듯 하다가 다시 분단된 국토의 한계선을 가로질러 흐르다가  다시 내려왔는가 싶으면 어느새 한강과 합류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 254㎞를 달려 한강과 만나는 임진강 줄기는 56㎞가 파주시와 접하고 있으며 30㎞가 개발 가능지역이라고 했다.


 

분단된 탓에 자연경관이야 제대로지만....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던 곳에 임진강 두지나루 황포돛배가 떴다.

60만년전 지각변화로  한탄강과 임진강은 현무암 바위와 주상절리가 형성된 적벽이 아름다운 강들이다.

민통선안에 위치하였다가 지금은 풀려난 장남면 고랑포리 그 부근이야 아직 철책으로 막아져 있지만......

 

 

고량포구는 옛문헌에는 ‘皐浪渡’로도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임진강 일대에서 가장 번창했던 포구의 하나였다.
특히 서해안에서 조류를 타고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조기, 새우젓, 소금배 들이 장단의 대표적 특산물이었던 장단백태, 땔감, 곡물 등을 교역하였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경기북부 지역 농특산물의 집하장 역할을 하여 주요 상권형성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고량포구에 다다르면 강물빛이 하얗게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고량포 여울목이란다.

이 여울목은 1968년 김신조 무장공비 31명의 일당이 바로 이 여울목을 걸어서 지나온 그곳이다.

수심이 깊은 임진강인데도 이 여울목에 오면 갑자기 수심이 무릎정도로 얕아져서 강을 건널수 있다한다.  

고량포 여울목을 바라보고 뱃머리는 오던 방향을 선회하여 다시 돌아 나오는데 총 45분이 소요된다.

 

 

 

역광이라 강물이 검푸르게 보인다.

 

 

황포돛배를 운전하던 선장이 가르키는 곳, 강의 정 중앙 한가운데...저 너머 보이는 희미한 산이 바로 30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개성의 송악산이란다.

 

  

 

 

 

선장님의 배려로 뱃전에 편안히 앉아서 사진 찍으며....

음악소리가 들려오는지 조차도 잊고 나는 강물과 적벽을 흠씬 느끼며 교감을 시작했다.

 

  

칼로 잘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좌측은 문산지역 장좌리적벽,.오른쪽은 연천 원당리 적벽이다.

마주 바라보이는 곳이 고량포 여울목,  왼편이 군사한계선인 고량포구다.

 

 

내 눈에는 마치 토끼가 엎드린 듯 보이기도...

 

 

주상절리의 적벽모습

용암인 마그마가 바닷물이나 강물의 냉각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여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

임진강 적벽의 주상절리는 모양이 상부는 바늘침 같게 생겼고 하부는 떡시루처럼 이중으로 생긴게 특이하다.

가로 세로, 이 두가지로 된 주상절리는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형태라 전한다.

 

 

 

 

 

이래서 돌단풍인가보다. 흙하나 없는 수직 석벽에 꽃을 피운 '돌단풍,

 

 

임진강의 어부들인가보다. 강에서 물고기 잡는 어부들의 모습은 차라리 편화롭게 보이기까지 하는데.

 

 

적벽에는 동굴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육이오 동란에는 방공호가 되어주기도 했단다.

이 동굴모양은 이름이 떠 오르지 않지만 덩치에 비해 머리가 아주 작은 갑각류(?) 작은 그런 동물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라다보이는 곳이 민통선 안에 있는 예전 고량포구,

이 부근에는 미수 허목의 묘역과 지금은 출입이 풀린 경순왕릉이 있다.

 

 

  예전 고량포구

왼쪽 아래엔 학교가 있고,문방구가 있고 우체국지소,화신백화점,변전소,금융조합,곡물검사소, 우전시장, 여관, 시계포 등이 있다.

 

 

아마도 예전부터 난 길인 듯, 길이 고불고불 정겹다.

화려했던 옛 정취는 어디로 사라지고....그나마 기억하던 사람들 조차 떠나고 나면

아마도 이런 자료뿐이리라~

 

 

정말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어보인다.

선장님이 알아서 가르쳐주신다. 문산으로 가다가 장좌리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3km가량 들어오면 이 곳이란다.

 

 

 

 

 

 

절벽에 흰꽃, 요즘 피는 흰꽃이 무에 있던가? 조팝나무? 배룽나무? 야광나무?

푸른 적벽에 등 기대어 하이얗게 무리져 피었다.

 

 

 

 

 

 

 

 

군데군데 산철쭉도 피어있는 적벽의 풍경,

임진강은 우기시 저 다리를 넘어 범람하기가 예사란다.

파주 문산,연천의 물난리가...바로  이 임진강?

왼편 강둑을 보니...잘 흘러내리던 강줄기가 질펀한 연천평야를 덮치게도 생겼다.

 

 

 

파주,문산쪽의 장좌리적벽은 그런대로 높이가 있어서 적벽위엔 그나마 수림이 울창한 편인데

지대가 좀 낮은 연천쪽 원당리적벽은 민둥머리 강둑이다.

 

 

우리 분단의 비극을 대표하는 임진강,

그 강물은 유유히 북에서 남으로 침묵속에 흐르건만 분단 60년의 아픔은

60만년의 역사를 가진 적벽을 휘감아 돌아 흐르는 강물이..........시니컬하게 웃으며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글:사진/이 요조

 

다음글은  고량포, 묻혀버린 역사속으로 ③

 

 

 

 

 

 

 

 

 

 

길이가 254km인 임진강1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종내는 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파주에 있는 임진강 두지나루터에는 황포돛배가 있다.

언제부터 타보고 싶었는데...여름엔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마냥 기다리기 지루해서 못탔다가

드디어 며칠 전 그 작은 소원을 이루었다. 요즘은 파주시에서 임진각 관광객을 연계해서 손님을 불러들이나 보다.

임진각에서 버스로 태워다주고 승선료는 10,000원이라니....늘 한산하기만하던 두지 나루터가 주말이면 황포돛배 2대가 바쁘게 보였다.

유난히 강을 사랑하는 나로선 여간 흐믓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는 바다를 늘 바라보고 자랐던 내게 강은 그 고향의 향수를  그런대로 상쇄시켜주더니 어느새 가슴속으로 들어 와서는 크게 자리잡아버렸다. 

말없이 잔잔한 강,  그  강물 아래로는 물살이 드쎄게 흘러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도도히 흐르는 江!

황포돛배를 바람에 맡긴 채 그 도도한 강물위를 유유히 이 내 몸 하나 맡겨봄은, 강물위를 흘러가는 작은 강낭꽃잎처럼.... 

수주 병영로님의 시도 떠오르고 하는 모처럼 화창한 봄날의 여여함이다.

내겐 45분동안 망각의 시간을 만끽하는 최극상의 사치다. 

 

60만년전에 형성된 임진강 적벽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호사다.(다음글에서 연이어 임진강, 적벽의 아름다움을...)

내 나이 어언 한갑자를 다 살았음에...내 나이 곱하기 만번을 살았으니....내가 이 나이되도록 살고 또 살기를 만번이나 더 한 적벽!!

배에서 울려퍼지는 횡포돛배....이미자의 구성진 가락이면 누가 머래나. 

석양, 황혼녘에 황포돛배를 타야 제 격인 것을....

 

그러나 배를 타는 층들이 어버이날이 가까워선지 어르신들이 대다수다. 그래선지 더 상세한 설명의 업그레이드가 없었나보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장좌리 적벽 끝간 데 조선후기 전서체의 1인자로 불리우는 미수 허목선생의 친필 서체가 각인되어 있다는데.... 

 남방한계선에 있는 미수 허목의 묘소도 찾아나선 내겐참으로 서운한 일이다. http://blog.daum.net/yojo-lady/13745266

임진강 주변에는 중요한 역사적 문화관광지가 요소요소에 있다. 그에 대한 보충 설명도 더 필요할 듯 하다.

 미수 허목을 만나다. http://blog.daum.net/yojo-lady/13745268

 

 

 

시원한 강바람!

너무 잔잔한 강의 너울, 차라리 바다 파도처럼 뱃전에 부딪치며 철썩이는 소리라도 내면 좋으련만......너무 고즈넉하다. 강은.....

 

황포돛배에 황혼은 아니지만 지는 오후 햇살이 가득 걸렸다. 강물위에서 명상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두지나루터 전경 

 

 

 

 

  

  

  

 ▼ 승선에 대해 설명하는 선장, 그리고 황포돛배의 bgm을 담당하던 유행가 테잎! 

 

 

 

 

 

 

 

 

 

  

 

  

 

 황포돛배 운항구간 및 요금

 

운항구간 : 두지나루 - 고랑포 여울(회항)
운항거리 : 왕복 5KM(45분 소요)
최대 탑승인원 : 47명
운항시간 : 10 : 00 - 18 : 00(매 정시 출발)
요금 : 두지리 승선시 - 대인 8,000원 소인 4,000원
임진각 출발시 - 대인 10,000원 소인 5,000
임진각 출발의 경우 버스요금 포함가격임

2. 문의전화
(주)DMZ 관광 031-953-4180, 952-4556, 952-2066,958-2557
서울영업소 02- 399-2698, 2699

 

 

 

  

 

 

 

  1. 한강의 제1지류로서 길이 272㎞, 유역면적 8,135㎢, 곡류정도 1.4배이다. 법동군 용포리 두류산(頭流山:1,323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법동군과 판교군을 지나고, 판교군 남부에서 고미탄천(古味呑川)을 합한 뒤 이천군을 지나 유로를 남동쪽으로 바꾸어 철원군 내에서 평안천(平安川)과 역곡천(驛谷川)을 합친다. 휴전선을 지나 연천군 전곡읍과 군남면 경계에서 한탄강이 흘러들며, 유로를 남서쪽으로 바꾸어 파주시로 흐르다가 문산천(文山川)과 사천(沙川)을 합친 뒤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에 흘러든다. 하천의 이름은 파주시 문산읍과 파평면 경계에 위치했던 고구려의 진임성(津臨城)을 신라 경덕왕 때 '임진'으로 고침에 따라 이 명칭을 따서 '임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강의 상류는 산지하천을 이루고 유속이 급하여 그 연안에 평지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으나, 중·하류지대에는 철원평야·풍덕평야·문산평야 등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임진강 상류지역에는 소나무·참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주요농산물로는 쌀·옥수수·콩 등이 생산된다. 유역일대 연강수량은 1,200~1,300㎜로서 홍수의 피해가 잦다. 이 강에는 어름치·열목이·붕어·잉어·메기·뱅어·숭어 등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국토 분단 전에는 농산물의 집산지였던 고랑포(지금의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일대)까지 강을 따라 배가 다녔으며, 유량이 많을 때는 소형선박이 안협(지금의 강원[북한] 철원군 중북부 일대)까지 운항되었다. [본문으로]

 

 

 씨 풀리자 근질거려서 방안에만 있을 수가 없다.

감기기운이 지끈지끈 오는 것 같아 누웠느니 ...차라리 바깥으로 나가 산뜻한 바람이나  운동삼아 쐬고오자고 나선 길이다.

사실인즉슨 겨우내 참고 살았던...절절히 만나고싶은 인물이 꼭 있었다. 300여년전에 돌아가신 대학자 '미수허목'과 기생 '홍랑'이다.

영암에 갔을 때 홍랑과 최경창(崔慶昌)이 머물었던 곳도 사진을 찍고 시비도 보고,,,홍랑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400여년전 고운 사람이  파주에 누워있단다. 난, 홍랑도 무척 만나보고 싶어졌다.

홍랑은 <묏버들 꺽어~~>란 시조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저 황진이에 버금가는 기생정도로만 알았는데 기막힌 러브스토리라니~

또 하나, 경북 봉화 여행길에서는 문화해설사님을 통하여 귀동냥으로 처음 만나본 '미수허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만치 캄캄했었다.

우의정까지 오르고 시 서화에 능하며 특히 전서체로는 동양의 제 1인자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는 그가 계신 곳!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산 48번지만 외우고는 무작정 찾아나선 길이었다.

이상하게 왕징면에만 오면 네비게이션이 기를 못피고 정신줄을 놓는다. 나중에사 알고보니 군사지역이 가까워서 그런 모양인데..

주소만 겨우 적어 온 군남 왕징면 강서리 산 48번지를 내 무슨 재주로 찾는단 말인가?

겨울 산골에는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개들만 빈집을 지키고 있는 듯 했다.

군남면, 화이트교를 건느려는 찰나, 도로에서 지나치며 이정표를 보고는 반가움에 무조건 우회를 하고는 그 동네 부근에 비슷한 묘역이 있나싶어

낮으막한 동산을 오르내렸다. 헛수고였다. 동네라고는 한결같이 빈집같은 적막감 뿐~어쩌다 마주친 사람도 전혀 모른다는 도리질 뿐~

이대로 돌아 가야하나 싶었을 때, 복덕방이 눈에 들어오고...다행히 너무 자세히 가르쳐주긴 했지만...혼자선 갈 수 없는 곳이란다.

뭔말인고 하니 민통선 안에 묘역이 있다는 것이다.

북삼교를 지나 직진하면 초소가 있단다. 이...그랬어~ 이제사 기억이 난다.

전두환씨의 아들이 만들어 놓은 허브빌리지를 찾아왔을 때, 그 때도 네비게이션이 허브빌리지를 눈 앞에 두고도 빙빙돌려서

골탕을 먹이던..그래서 초소까지 갔다가 물어보고 되돌아나갔던 적이있었다.

징파 나루가 있다는 북삼교, 나루의 기능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민간에서는 미수나루라고도 불린단다.

허목이 나들이를 하려면 당시에는 반드시 이 나루를 건너야 했으므로, 나루에 당도하여 술막에 앉아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공에게 “미수 왔다!”라고 고함을 질러 나룻배가 건너왔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맑은 물이 파도치는 나루, 징파(澄波)나루.

얼었던 강물이 슬슬 풀려나는 정월대보름날 나는 길을 나섰다. 그랬는데......어허...낭패로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겨울 철새떼가 하늘을 가득 덮고있었다.

날씨 풀리자 날아갈 일이 걱정이 되는 움직임 같아 보인다.

 

 

먼-길 떠나기 위한 도약인지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북삼교에서 바라본 허브빌리지 뒷배경

 

 

254킬로미터에 달하는 임진강 중에서 우리가 만나고 보는 구간은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단다.

임진강의 상류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한강과 만나는 하류지역도 절반은 모르고 산다.

한강을 만나기 위해 남으로 흐르는 오후 임진강은 햇살을 수직으로 받으며 꽂꽂이 흘렀다.

군데군데 얼음이 눈치를 보듯 슬슬 풀려 녹아났다.

 

난데없이 다리위까지 들려오는 징소리...멀리 좌측 강가에 바짝 세워둔 차가 한 대 보였다.

 

 

부쩍궁금해보여서 줌인으로 당겨보니 굿을 하고 있나? 생각했는데, 마침 오늘이 음력 정월 대보름!

용왕신에게 기원하는 중인가보다. 그래선지 여기저기 다리 아래에 무려 3군데나....말없이 흐르는 강물에

기원을 새기는 걸까?

 

 

줌인으로 당겨보니 돼지머리와,  떡 과일, 쌀푸대등이 보인다. 거창하다.

 

 

바다에서는 만날볼 수 없는 그 무엇...강은 의연하게 침묵한다.  

 

 

얼었던 산골짜기 물들이 흘러흘러 이념따위는 상관없는 철새떼처럼 돌아 흐른다.

 

옛전설에 이 곳  절벽바위에 부엉이가 살아서 부엉이 바위라고 불렀다 한다.

부엉바위로 부르다가 벙바위로 불려지기도 한다는....옛날에 어느 스님이 이 바위를 보니 고양이 형국이고

강 건너 마을은 쥐형상이더란다. 그래서 그 마을을 찾아가봤더니...쇠미해지고 있는 마을이 되었더란다.

그래서 저 벙바위,,아니지 고양이 바위의 눈에 해당되는 부분을 거적으로 가려주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났더니....마을이 기가돌고 살아나서 한 사람은 높은 관직에 올랐는데, 왕의 신임을 받게되자

안하무인이 되었고 고양이 눈을 가리는 일도 잊어버렸다한다.

끝내는 그 행적이 드러나 죽임을 당하게 되고 마을이 다시 피폐해지더라는 ....

<실제 이야기로 검색글에서 그 시대와 왕과 그 사람의 관직까지 알았는데...재차 검색이 되지 않는 애석함>

이 곳 사람들은 붉은 벙바위에게 절을 하고 지나다녔다 한다.

지금은 전두환씨의 아들 전재국이  그 곳에다가 허브빌리지란 이름으로 꽃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봄오자 녹아 흐를 것을 물은 얼어서 빛깔마저 달리하고.... 

모질게도 강물을 다 얼구어버린 한겨울의 江, 그 위로 흰눈이 소복히 내려 쌓인 겨울 임진강을 보고싶다.

 

 

징파나루쪽(右) 

 물그림자 도도하고...

 

징파나루란 이름이 걸맞을 정도로 맑고 잔잔한 여울이 감미로와 보인다.

물이 맑아 징파라 했다지만 본래 이름은 둠밭이다. 두메에 있는 밭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둠밭을 한자로 옮긴 것이 둔전이고 이를 소리 나는 대로 이두식으로 옮긴 것이 징파다.

사람들은 임진강 맑은 물을 사랑해서 맑은 파도 징파를 선호했지만, 내지는 그런 상상을 촉발하도록 한자를 골라 붙였지만

둠밭도 충분히 정감어린 이름이다.

 

 

임진강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이 곳이 '군남댐'인 모양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임진강은 홍수로 몸살을 앓고 들판이며 민가까지 질편하게 누워버리는 통에 아예 몸풀 곳을

마련해주느라 댐을 건축중인 모양이다.

 

 

이 곳은 기원을 막 끝내고 돌아가는 모양새다. 

 

'미수허목'의 묘역을 찾아가는 길.....민통선 안에 모셔져 있다는데, 나는 과연 들어 갈 수가 있을까?

임진강 최북단의 다리 북삼교위에서 지금은 흔적뿐인  그가 드나들었다는 다리 북쪽의 나루를 바라본다.

지난해, 경북봉화를 두 번이나 거푸 방문을 했었다.  늦여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조선제일의 아름다운 정자

'청암정'에 올라보고 점점 미수허목의  절필인<청암수석> 을 마지막으로 영면하셨다는 그 분이 궁금해졌다.

아니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고는 점점 만나고싶은 간절함에 솔직히 안달이 났었다.

나는 강서리 산 48번지를 찾아 삼북교를 건너 민통선 검문소, 징파리 초소를 향해 곧장 직진했다.

(다음글로 계속........./이요조)

 

,,,,,,,,,,,,,,,,,,,,,,,,,,,,,,,,,,,,,,,,,,,,,,,,,,,,,,,,,,,,,,,,,,,,,,,,,,,,,,,,,,,,,,,,,,,,,,,,,,,,,,,,,,,,,,,,,,,,,,,,,,,,,,,,,,,,,,,,,,,,,,,

 

 

 청암수석(靑巖水石) 허목의 마지막 절필(이 글을 써 두신 후 15일만인가 운명하셨 전한다)

 

미수 허목은 청암정에 한 번 가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다가, 88세 되는 해(1582년) 4월에 '청암수석(靑巖水石)' 네 글자를 써놓고

글씨를 보내기도 전에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 달 하순에 운명하니 이 글씨가 미수의 절필(絶筆)로 알려진 것이다.

미수가 후미에 써놓은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청암정은 권충정공의 산수에 있는 옛집이다. 골짜기 수석이 가장 아름다워 절경으로 칭송되고 있다.

내 나이 늙고 길이 멀어 한 번 그 수석간에 노닐지는 못하지만, 항상 그곳의 높은 벼랑 맑은 시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특별히 청암수석 네 자를 큰 글자로 써 보내노니 이 또한 선현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 사실을 기록해 둔다.

8년 초여름 상완에 태령노인은 쓴다

(靑岩亭者, 權忠定公山水舊庄. 洞壑水石最佳稱絶景. 僕年老路遠, 不得一遊其間, 懷想常在高壁淸溪, 特書靑岩水石四大字,

亦慕賢之心也. 識之. 八年孟夏上浣台嶺老人書).'

 

 

충재박물관에 가시면 유서깊고 흥미로운 다양한 옛 문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님의 도움으로 '미수허목'을 알게되다.

청암수석(靑巖水石) 

전서의 대가였던 미수허목이 보내 온 청암정에 걸린 편액(篇額)

 다양한 옛 문서가 비치된 충재박물관

 

충재권벌은 마치 거북이처럼 생긴 큰 수석의 등위에 정자를 세우고  정자 둘레에는 물길을 끌어들여

거북이가 물 가운데 정자를 업고있는 형상으로 건축을 했다고 한다.

 

충재권벌이 독서를 하는 곳으로 겨울에는 청암정 바로 앞의 건물에서는 겨울을 나고 바람을 쐬고(下사진 左) 

여름에는 즐겨 독서를 하거나 시문을 지었다는 정자로  닭실마을 황금들판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풍경~

 

 

수백년 풍상에도 고색창연 <영남 최고 정자> 

충재, 기묘사화 연루돼 이곳서 15년 은거했다.

 빼어난 풍광 벗삼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조정 복직 이후도 大義 외치다

끝내 유배된  조선 중종 문신인 충재권벌(1474~1548) 선생의 유적지이다.


냇물을 끌어들여 그 물이 거북처럼 생긴 바위에 세워진 청암정을 돌아나가게

만들고 亭內에는 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새긴 허목(許穆)이 쓴 편액(篇額)이

걸려있어 옛날 시골 연못의 모습을 지금껏 보여주고 있다.

 

 

 

임진강변에 위치한 <허브빌리지>가 4월 26일 open한다는군요. 

강을 끼고 있는 입지적 조건을 잘 살려서....

천혜의 꽃동산으로 꾸며두었더군요.

제가 간 날은 오픈을 앞두고 일손이 분주한 나날중의 하루였지만...

손색없이 잘 꾸며져 있더군요.

 

일상에서 지친 당신이여~  일상이 생기를 잃고 그 빛이 쇠할 때

임진강변으로 달려오세요!

 

 

사진찍기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가보세요!

어디..어느 곳을 찍어도 .....멋진 곳!! 

얼마나 사진을 많이 찍었는지.....차례도 뒤바뀌었습니다.

그런 설명도 핑계도  그저 사족에 불과할 뿐....

 

 

임진강까지만 달려 오시면...

외국의 어느 수려한 풍광 못잖은  허브빌리지가

지친 당신의 상처를 치유할 것입니다. 

 

 

 설명 글이 따로 들어 갈 필요가 없어 보이지 않으세요?

스크롤바 댕기시는 손목압박이 있으시겠지만...

주-욱 내리시기만 하셔도

예민한 당신은 금새 눈치채실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도예공방 

 

 

 

 

이지역은 아직도 군사지역이라....오염이 되지 않았습니다.

출입이 자유롭게 된 것도 기실은 얼마되지 않은 세월일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임진강의 아름다운 속내를 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허브샵인데....준비는 되었지만 문이 닫겨있더군요.

반사되는 유리창 때문에 렌즈를 바씩 갖다대고....내부를 찰칵!!

 

 정문입니다.

관리실인 셈이지요. 입장료를 받습니다.

 

 이 점이 제겐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입니다.

누구의 발상인지...

江을 끌여들였더군요.

산중턱에서.... 

  

 

시선과 연결....강을 가차이 불러들인,

그 발상~ 멋지십니다. 

 

사실은 이런데요.... 

 

그 물이 흘러내리는 곳입니다.

 

물길 위에서 내려다 본 ....

테이블과 의자가

물가에 쉬러 내려앉은 까망 물잠자리 날개같다는 생각을,

 

 

 

 

 

카메라렌즈에 뭐가 묻은 것도 모른 채 계속 찍었습니다.

뷰파인더로 보는 영상이 너무나 밝고 환한 대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아서...

바보처럼 하늘에 꺼먹점을  구름처럼 붙여서 찍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말아야겠지요. ㅎ`

 

도자기 의자와 그림타일로 만든 탁자가 있더군요., 

 

 

허브농장을 분양한답니다.

잎파리 형태의 농장이 너무 예쁘지요.

저는 잎 끝에 달린 동그란 이슬방울 예약하고 왔답니다.

(ㅎ` 희망사항)

 

 

얼마나 더 확장공사를 할지...

센터는 그런대로 정리가 되었고...자꾸만 넓히는 중이랍니다.

 

 

 

 

 

 

 

미술전시를 하는 갤러리가 있고, 

 

전 이 건물이 콘도형식으로 지어진 숙박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만약에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참으로 멋진 곳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불협화음을 내는 연인이나 부부가 있다면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뭐! 인생이 별건가...

살아있을 동안, �처럼 피어있을 동안

예쁘게...

향기롭게...

꽃을 닮지 않을까 해요!

 

 

 둘이서 손잡고 걷다가,

다리 아프면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며 밤, 달빛어린 강물을 내려다 보며

말이 없어도 좋으리!

강바람에 머리카락 흩날리며~

 묵묵하게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엉킨 실타래같던 사연들이 술술 풀리고

저 - 강물에 흘려보낸다면~~~

 

 

간장, 된장을 품은 넉넉한 장항아리처럼

햇살을 받아 따끈하게

그런 삶을 꽃 피울 것 같지 않으세요??

 

 

무수카리 보랏빛에 눈이 부십니다.

 

 

이 집은 아마도 비공개의 별채인 모양입니다.

 

 

 

 

강을 바라보며.....차 한잔,

이야기가 술-술 풀릴 것 같지않나요? 

 

  

 

 

 

 

 

 

 

야외무대 

음악회나....웨딩을 올려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객석입니다.

 

 

 

 

 

 

 

임진강과 북삼교 

 나도(논네) 데이또 하고잡따!

 

 

  

 

 

 

물길이 더 예쁜 시인의 길,

 

목판에 새겨진 시화가 걸린 곳입니다.

물이 있고 동굴안 형태라...얼마나 시원한지,

봄날씨에 동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감동적인 시를 읽고  마음에 소름마저 돋아나니...

어휴, 죽는지 알았습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화장실 

 

화장실창문

 

화장실 

갤러리 

 

직원 아주머니 한 분이 예쁜 바구니를 들고나와 쑥을 캐고계시더군요.

오픈식날....화전을 부칠거랍니다.

꼭 오셔서...드시라는.....말과 미소가 향기나는 허브꽃 같았습니다.

 

행사알림표

 

 

대충 정서가 된 것 같아서

스크랩 열어둡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만 치시면 되겠지만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222번지

어른/6.000원  청소년/5,000원  어린이/4,000원

 ☏ 031)833-5100, 5101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원하신다면...가시는거지요 뭐,

그늘이나 벤치도 많으니 가족과함께 싸간 도시락 잡숫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이요조: 글/사진

 

 

 

 

경의선, 복구된 도라산역까지....

거슬러 내려오면서 촬영하였습니다. 사진은 도라산역사 내에 설치된 그림입니다. 

 

.

 

 

 

 

 

 

  

탄강

포천 관인, 고석정에서는 가히 신선비경을 장쾌하게 자랑하더니 흘러~ 흘러 전곡쯤 오면 포천 막걸리의 취기가  얼추 오르는지,

물줄기가 남으로 내려가는 듯 하다 다시 북쪽으로 거슬러 구불구불  S자로 질탕해지다가 그 질펀함이 더 江다운  江처럼 느껴진다. 산수화의 한 폭이 듯 싶던 상류의 도도한 협곡의 까탈스럽기 조차한 그 모습은 가슴이 너부데데해지면서 유유 해졌다.

그러다가 결국은 임진강과 그 몸을 한데 섞고야 만다.

 

휴전선을 따라 흘러내리듯, 북쪽 산하를 풍류객처럼 호기 부리다가 그 맑음은 연천에 이르러 군부대 포사격장의 뜬금없이 울려대는 포소리에 깜짝깜짝 놀라 그예 氣가 흐트러진 한탄강물은 군남면 남계리의 도감포에 이르러 그만 임진강에 몸을 섞은 채 동두천시, 양주시, 연천군을 걸쳐 흐르며 온갖 오염된 하천 물에 꼴깍거리며 허우적대다가 임진강으로 흘러 파주시 탄현면에서 다시 한강을 합수되어 북쪽으로 흘러들다가 철조망에 그 몸이 찢겨나서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금 서쪽, 황해로 흘러드는 참으로 한탄스런 강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이요조) 

 

 

 

 

 

 

 

 

 

 .

 ▼ 재인폭포에서 궁평리로 나오며....

 

 위 사진의 한탄강은 궁평리로 돌아가는 한탄강 모습인데, 재인폭포에서 나오는 길, 또는 전곡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다. 

전곡 읍내를 빠져나와 선사유적지를 잠깐 들렀다가 한탄강유원지로 내려왔더니 <한탄강 국민유원지 재개발 사업>에 따른 잠정폐쇄(2005.6.21 ~ 2007.12.31)로 출입금지였다. 한탄강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 봤더니 물에 잠길 듯 말 듯 한 다리가 있다.

비가 오면 응당 잠길 것 같은 낮고 자그마해서 더욱 앙증맞은 다리~~

한탄강의 수직 벽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흘러가면 군남면에서 임진강을 만나 두 물은 필연적이 듯 그만 아우라지고 만다. 

▼한탄강교에서 우측으로,

 

 

 

 한탄강은 길이 136 km. 강원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김화 ·철원 ·포천 일부, 연천(漣川)을 지나 연천군 미산면(嵋山面) ·전곡면(全谷面)의 경계에서 임진강(臨津江)으로 흘러든다. 산악지대를 관류하므로 유역은 대체로 절벽 ·협곡이며, 남대천(南大川) ·영평천(永平川) ·차탄천(車灘川) 등의 지류가 있다. 하류인 전곡 부근은 6 ·25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한데 강변이 아름다워 유원지가 조성되었다.

한탄강 관광지 (경기 연천군)

위    치 : 경기 연천군 전곡읍 전곡6리 

 

주변명소 : 전곡리선사유적지(사적 제268호), 양원리지석묘(향토유적3호), 은대리물거미서식지(천연기
           념물 제412호), 열두개울

 

 

.

.

.

.

 

 

 임진강과 합류하기 전, 마지막 한탄강유역이지 싶다.(지난 겨울에)

 

 

사진에는 잡지 못했지만 두루미가 나르고....나룻배 한 척이

 내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온 것 같은.....적요감이 강물 위에 조올고,

 

 

 

 

 

 

 

 

 

▼ 흐...리터엉(엉터리) 그림이지만 올려봅니다.

 

 

 

강에 가면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되면 늘 엄마가 그립다.

 

 

지난 번 다녀온 임진강이 얼마나 좋고 재미가 났던지,

어버이 날 전화도 한 통화 못드렸다가 그 자랑을 오래만에 안부전화겸 (수유리)이모님께 했다가 딱-걸렸습니다.

ㅎㅎㅎ~

"거기 나도 좀 데려가다고~"

 

이종사촌남동생이 군인이라 전방에서 근무하며 전곡에 사신지라 늘, 그립던 고향같이 짠-하셨나 봅니다.

토요일, 이종여동생과 딸아이가 학교를 안 가는 날이라기에 임진강으로 내달렸습니다.

 

일차 약속한 날은 비가 와서 미뤘고...거의 한  스므날 뒤의 임진강 돌미나리밭은 갈대가 자라올라 풀에 베일 것 같았고, 땡볕은 사정없이 내려쪼였습니다.

월요일이라   천렵나온 사람들은 거의 없이 고즈넉했고,  강가에 서 있는 미루나무는 졸고 있었고요.

 

 

나는 지난 번에 잡지 못한 다슬기를 초등생인 이질녀와 함께 강물에 뛰어 들었습니다.

제 어미(동생)는 물이끼가 더럽다며 들어오지 않길래 그림도구를 준비해 주고는 물에서 제가 잘 놀았지요. 많이 잡아야 좋은가요?  ㅎㅎ 부실한 허리는 개않은데 뒷날 종아리 뒷 근육이 댕겼습니다.

마치 등산 한 것처럼(얼마나 평소 운동부족이면?)

칠순을 훨씬 넘긴 이모님은 쑥캐서(끊으러)떡을 만드실 것이랍니다.

아마도 동네 사람 다 돌릴 떡을 만드실 모양입니다.

 

 

다리아래 그늘진 곳에 차를 두고...적은 식구가 세팀으로 나뉘고,

 

 

ㅎㅎㅎ 잡는 솜씨야 뭐 이렇지요.

그래도 얼마나 재미있던지, 아이와 나는 강물에서 빠지기도 하면서 마음도 함께 빠트렸습니다.

 

 

 집으로 올시간...잡은 다슬기를 풀어 주었습니다.

 

 

미안하다...잘 가라~~

 

 

황해도가 가까운 최북단 왕징면 '황해냉면' 집입니다.

이모님도 전곡사실 때 이 집을 자주 찾으셔서 아주 그리운 맛이 되셨다는군요, 다행입니다.

 

ㅠ,.ㅜ;;; 돼지고기는 (잘)안 드신다는군요.

울 엄마만 그런 줄 알았는데....자매들 입맛 역시나 비슷하군요, 가만 울 외할무이가 아마도 못 드신 듯.... 저 역시나 그래요 먹긴 먹어도 그렇게 썩 내켜하진 않아요.

 

지난 번에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서 못 찍은 냉면사진!!  메밀 100%는 아니더군요.

하기사 냉면이 100% 라면  좀 불은 것 같은 맛이겠지요?

 

 

물냉면입니다.

할머니와 어린이는 물 냉면,  다소 젊은 우리 둘은 비빔면, (전 어딜가나 비빔면입니다.)

 

 

지난 번에는 배터리가 없어 냉면 사진도 못찍었고...

실은 스티커도 없었는 듯??

오늘은 가서 앉자마자 " 인터넷 글보고 찾아 왔다는 사람들 없었나요? 지난 번에 왜, 교회에서

밤에 다녀간 일행중 한 사람인데..." 했더니

있었다고 합니다. 일단 명함을 건네주고 냉면을 먹는데

월요일이고 점심시간도 아니어서 좀 한갖진지 두 부부는 카운터 위에 있는 컴텨를 켜고는 다음 검색중입니다.

 

식사를 다하고 나는 좀 찾기 어려운 시티N을 열어 즐겨찾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조금 쑥쓰~~

밑에 미나리 이야기는 왜 또 그렇게 긴지~~ 따로 잘라내야겠다는 생각을....ㅎㅎㅎㅎ

며느리냐고 물었더니 딸이라고 그럽니다.

 

"아 맞어!!  할아버지(아버지) 쏙, 닮았네~ 내가 이 집을 찾은지도 햇수로 이십년이 다 돼가요.

이 집 짓기 전  저 아랫동네 사실 때부터~"

 

딸과 사위가 맡아서 가게를 보고 있다한다.

물론 바쁠때는 가족뿐만 아니라...도와주는 일손이 엄청 많아야 한다.

 

 

맛을 내는 실질적인 요리사! 이 집 사위분은 스티커를 받아서는 요리조리 한참을 대 보더니

실내로 들어가버린다. 왜?

 

 

유리문을 깨끗이 닦고 , 부착할 곳도 깨끗이 닦아내고....이왕지사...깨끗하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아마도 맛내기 작업도 깨끗할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드뎌 마음에 드는 장소  선정, 정성스럽게 ...조심스럽게, 우리 Daum 시티N 스티커는 이렇게 붙여져야한다.

 

아무 곳이나 감히 붙일 수 없는 퀼리티를 부여, Daum 선정업체 다워야한다.

 

 

내가 봐도 제일 적절한 자리 맞다.

 

열심히 사는 부부모습 한 컷, 찰칵!!  첨엔 약간  어색모드~

 

"치즈" 라 외치며 스스로 자연스런 포즈를 연출하는 부부, 정말 아름답습니다!

 

 

식당 앞 전경입니다. 여름밤 개구리 와글대던 그 무논입니다.

젊어서 농사일에 이골이 나신 이모님은 그래도 모를 보니 모가 심고 싶다 하십니다.

아직 모 심을 곳이 어디 남아 있을라나? (있으면 연락주세요~) 선수 공짜로 보내드립니다.

 

 

갈대는 아닌것 같고 사초과이긴 한데...금빛 예쁜...물결이.....

 

 

 

올 때는 이모님, 잠시 사셨던 전곡시내를 추억삼아 한바퀴 돌아  한탄강에 이르렀습니다.

선사유적지입니다.

넓고, 자연스런 수목과의 조화가 좋더군요.

그늘에서 수박을 하나 잘라먹고...이모님은 또 쑥을 뜯기 시작하십니다.

아마도 한 번 집요하면 끝장을 보는 이런 열정적인 모계의 피가 제게도 흐르는 게 아닌지...ㅎㅎ

동생이 그럽니다.

"언니야 엄마랑 길을 걸으면 나는 못 쫓아가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ㅎㅎㅎㅋㅋㅋㅋㅋ 나는 운전을 못할 정도로 눈물 찔끔거리며 웃습니다.

 

왜냐고요? 우리 엄마도 그랬거든요.

 

나는 빈 몸으로 쫓아가는데...엄마는 늘 무엇을 들고도 저만치 앞 서 휘휘~ 걸어가십니다.

차라리 내 걸음은 경보나,,달리기가 섞였습니다.

걷다가 꾀를 냅니다. "엄마 배 아퍼~" 꾀가 아니라...실제로 배 옆구리가 결리고 아팠습니다.

에휴...딸 부잣집, 외갓집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8공주)들 성격이 한결같이 유별나게 바지런합니다.그에 비하면 우린 죽도 밥도 아닙니다. (왜 그렇지?)

 

늘 그랬습니다. 엄마는 잰 걸음으로,  절대 뛰시는 건 아닌데...절대로, 아마도 축지법을 쓰는 듯, ㅎㅎㅎ옛날 외할아버지가 축지법을 쓰셨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신접살림 아파트 5층에서 잘있어라시며 현관문을 (나오지못하게) 밀듯이 닫아까지 주시고 나는 베란다로 나가 내다보면 엄마는 그새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러 가십니다.


 

 

初夏로 접어 들었습니다. 망초꽃 봉오리 연달아 무성한 걸 보니~

 

" 이모! 나 원시인 아저씨랑 사진 하나 찍어 주세요~"

 

 

아래 이 꽃 이름이 뭔가요? 저도 처음보는 꽃입니다.

 

아주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메꽃등...그냥 야생화, 사진을 찍거나  관찰하기에 아주 좋은 곳 같습니다.

자연숲을 보존하니까 자연 생태계도 훌륭하더군요,

분간키 어려운 엉겅퀴, 지칭게, 조뱅이  다 있었는데요.

ㅎㅎ 또 배터리가 달랑거려서요~

전 이 곳 생각은 못했거든요.

갠적으론 울창한 숲과 그늘을 찍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선사유적박물관도 있구요, 체험장도 있고, 무엇보다  방금 얘기한 천혜의 그늘이 좋더군요.

입장 무료니까... 지나치실때는 꼭 들러 보세요.  가족이, 연인들이 트래킹하기엔 너무 좋더군요, 시원한 미루나무 숲도 있고, 매미소리 쩌렁쩌렁한 여름 숲에서 독서는 또 어떨까요?

책 읽다보면 시원해서 졸음이 오면 보던 책 얼굴에 덮고 한 숨 푹, 자는 재미도 아주 쏠쏠할 듯~~

 

전곡에서 한탄강 중간지점입니다.

 

 

글:사진/이요조

 

산골 아가씨처럼 해맑은 '메꽃'

 

 

 

 

 

전곡리 선사유적지, 선사 박물관  (031)839- 2561-3

 

 

click~ ☞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임진강편

 

관련업소 샵블로그 바로가기

황해냉면

031-833-7470
GO

'여행발전소 > 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보고 싶은 섬/무의도편  (0) 2006.07.19
누에섬을 아세요?  (0) 2006.06.21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임진강편  (0) 2006.05.22
인천월미도 소래포구 나들이  (0) 2006.05.01
오이도 가는 길(총편)  (0) 2006.04.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