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상을 받았다는 북해도의 상징인 연어를 물고 있는 곰이다. 가격대는 ....미지수...안판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어려서부터) 인형을 꽤나 좋아한다.

아직까지도 몸이 아플 때 부드럽고 포근한 인형을 곁에 끼고 있으면 많은 위로가 된다.

참말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긴하다. 갸냘프길 하나, 그렇다고 어리고 꿈많은 소녀이길 하나?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오타루에 갔을 때 오르골 전시장엔 여행객들을 위한 그만그만한 가격대의(10만원대) 오르골상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이층 삼층으로 올라갈 수록 진기한 오르골들을 전시해 두었다.

오르골은 어릴적 환상적인 멜로디를 가진 장난감이다. 누군들 오르골을 만지작 거리는 꿈을 꾸지않았을까?

그러나 현실은 내 아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각국 것을 주워다 논 것이 너댓 개가 있는데...종당에는 리듬이 짧아지기도 하고

영영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내겐 아예 관심 밖이었다.

그렇지만 가격대가  만만찮은 아름다운 갖가지의 오르골들~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아내기에  매혹적인 상품이긴 분명하다.

정작 오르골은  오래된 진기한 것만 구경하고는 장식으로 군데 군데 놓아둔 인형에 더 관심을 가졌다.

나이불문하고 다 그런건 아닐까? 나만 그런가? 에이~ 나, (할)줌마가 아주 유아틱하긴 하다. 나도 인정한다.

그 곳에서 부터 쇼핑의 자유시간을 주길래 거리로 나와서 오타루 운하 메인도로가에 있는 그 중 나아보이는 유리공방을 구경했다.

아예 크리스탈룸에는 가격대를 붙여놓지도 않았다.

(흐미....평소에도 셈이라믄 몬하지만...돈 야그는 더 더욱 시러하는 나, 오늘부로 증면 됐씸돠 계산이 마구 엉망진창이라네요.

동구라미 두 개는 뗍니다. 적어도 세개는 떼야는데...그래도 증말이지 억쑤로 비쌉미데이~~)

 

 

오른쪽은 부엉이 같기도 왼쪽은 나도 모르겠는디...

하나당 가격이 60,000엔이다.

오늘 환율이 882.7이니 우리돈으로 환산하자면

무려

529,620원!!

진짜로?

다이아몬드로 맹글었을까?

난 줘도 안 갖겠는데...깨지면 다치기나 할껄?

0을 3개 떼내고 60엥 이라치면 52,000원 뭐, 그 정도라면

적당한데...(음 계산하기 괴롭따 나도...)

 

 

거북이 한 마리당 몸값이 35,000엔

또 계산 날려보자. 

308,945원이다.

비싸긴 비싸다!!

 

 

한 뼘도 채 못되는 크기의  신랑신부 유리 인형~

어라 친절하게 한글로 쓰여져 있네

21,000엥, 말만 잘하면 20,000엥에도 줄 수 있다는 건가??

요런 가격표는 처음보네 그랴!

185,367원

 

 

쬐그만 신부인형 하나에 거의 10만원 수준?

차라리 보석?

잘 만든 유리공예, 다이아몬드 안 부럽네!! 

 

히....예쁘긴 예쁘다.(요건 누가 주면 갖는다)

 유리공예 하시는 분들....우리도 연구 좀 합쎄다!!

부가가치가 높은 게 이 시대의 장땡 아니겠냐고요!!

더군다나 예술이라는데...예술!!

 

 

인형을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카메라에 담다가 보니 유리공예품 인형도 다가가서 찍게되었는데

조막만한 동물 유리 인형 하나가  50만원이다.

물론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어물쩡 만든 듯한 신랑신부 인형도 18만원이나 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입이 다물어지질 않아 턱관절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진품명품에 버금가는 선조들의 진기한 도자기 값을 능가하려드는 그들의 유리공에 작품 가격은 거품일까?

나의 안목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만큼 세계화된 상품의 가치성이 있다면 우리도 유리공예에 주력을 기우리는 개발을 시도해야잖을까?

 

 

 

23,100엔 이면....보자,  203,903원이넹!

 

 

370,734원,,,계산 안해불라요!

 

크리스탈

가격대 알 필요 없겠찌라?? 

통과~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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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취향으로 보자면 이런 것은 별로, 카메라 지 알아서 건성 흔들흔들~~

 

 

 

 

오르골전시장 

오르골 전시장의 증기시계

 

세계에서 두 개 뿐이란다.

벤쿠버의 게스타운과 이 곳..... 이 시계는 정시와 30분에,

벤쿠버의 시계는 15분 마다 증기로 독특한 소리는 내어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한다.

쇼핑에 정신을 앗겨 시계소리를 그만 놓쳤다.

시계의 네 귀퉁이와  중간 뾰족한 곳으로 증기가 올라온다고 한다.

 

 

이제 오타루의 유명한 오르골 전시장으로 되짚어 가보자!

북해도 오타루운하 부근에는 물류창고가 많다.

오래전에 지어진 창고들은 겉모습은 석조건물인데 반해 내부는 목조로 되어있다.

일층 천정은 오픈되었고 이층 삼층은 다락식으로 연결되었는데 ....일전에 이야기한 그림을 전시해둔 제과점 내부도 그랬다.

옛것을 다치지 않고 고대로 이용했는데....그 아름다움이 어떤 근대의 건물양식보다도 더 어울린다.

 그 물류 창고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이용 관광상품을 파는 명소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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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들은 상품이 아니라 거의 골동품 진열용 오르골인 셈이다.

손대지 말라는 문구가 애절타!!(손대지 맙시다)

 

 

 

 마지막으로 계산 한 번만 더!!

305,414원,,,,3십만원이 좀 넘는군....음!!

 

 

이제 오르골 전시장에 간간이 사이사이에 놓여져 있던 인형들 

전시잔 1층인 이 곳은 가격이 아주 싸요.

맘 놓고 구경하자고요!!

가격은 오르골 10만원대 가량 과 함께 있었으니...물표만 달고 있군요.

아마도 몇 만원선?

 

이건 거저 준다면  가져오지요.

저 위엣 것들은 그냥 준다해도 잠깐 생각해 보고.....(받을까 말까? 잘 깨어지는데..)

 

 

 

 

 

 

 

 

 

 

이 아래 사진은  일본인들의 문화유산인 북해도 도청을 구경갔을 때

박물관 전시품입니다.

일본 전통인형과  북해도 원주민 '아이누족' 인형같습니다.

워낙 추운 곳이니 에스키모 모습과 비슷하지요?  원주민들이 소련이 가까워서 그랬는지...약간 이국적이며 눈이크고 피부가 희고

일본인들보다 용모가 잘났더군요. 중앙에 있는 마스코트는 눈에 익은데 잘 모르겠군요.

귀여운 인형들은 불문곡직 찍어서 담아 옵니다.

나중에 파파할머니되면 심심한 시간에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볼라고요!!

 

 

 

 

아니누족 박물관은 다음에...글:그림/이요조 

 

 

이번 여행에 돈까지도 환전해서 다 들고 쫓아다니는 비서(?)를 대동했더니만 

환율착오를...ㅎ`ㅎ`ㅎ`ㅎ

중국에서 생활체류(3달+2달)시 버릇대로 셈을 치르고 우리돈으로 무조건 130을 곱해서 계산하던

버릇입니다. 중국에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택시비

6~7위안 X130을 ....시장에서나 마트에서도 그런 방식의 계산기가

입력되었나 봄돠~ 흐~~

 

 

 

북해도 소와신잔(蘇和新山) 화산모습

 

  쇼와신잔

모태격인 우수잔의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인한 일련의 지진으로 1943년 12월에 형성된 화산으로
지금도 뿌연 분연과 매캐한 유황 냄새를 내뿜는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화산의 폭발로 생겨난 칼데라 호수 도야호로 출발 

 

 

눈 쌓인 산길을  오르고 올라서...

 

 

현재도 활동을 보이는 우수잔  활화산인 셈이다.

 

 우수잔 

 

우수잔(산)이 온통 끓고있는 모습이다.

 

 

활화산은 어디에나 출입금지 팻말이...  

 

 

 

지난 300여년간 8차례나 분화한 우수산은 지금도 연기가 나오는 화산이다. 

 

 

 

 

 

 

 도야호가 보인다.

도야호는 바다가 아니고 화산으로 생긴 일본 우수잔 칼데라호수다.

 

 

우수잔을 내려와서 쇼와신잔으로 가는 길목 

호수로 내려와서 우회전해서 한참을 가니

 

 

쇼와신잔이 있다.

한창 전쟁중인 2차대전당시 민심이 흉흉할 때여서 정부에서는 화산폭발 이야기를

쉬쉬-하며 묻어두었다한다.

그 곳의 우체국장이 매일 화산의 위치와 각도 생성을 기록하므로서 좋은 자료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는 그의 평생 모아온 녹봉을 다 털어서 이 부근 일대를 매입하고

화산에 대해서 기록하였다는데,

지질학자도 아닌 우체국장의 이런 정신이 지금도

존경받으며 그의 동상이 쇼와신잔 화산 바로 옆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마지막 분화는 2003년 3월에 있었는데 당시의 분화로 이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한다. 

 

 

 

소와신잔에서는 우수잔으로 가는 로프웨이를 탈수가 있다.

우리는 반대로 우수잔의 화산상태를 눈으로 보면서 찻길로 소와신잔으로 이동하였다.

 

 

아직도 뜨거운 유황 연기가 올라오는 이곳은 출입금지로 되어있습니다.
 

 

소화 18년(1943년) 보리밭이었던 이 곳이 분화하면서

생겨난 402m의 융기가 바로 소와신잔(蘇和新山)입니다. 

 

 

삿뽀로에서는 두시간 거리의 소와신잔 

쨍하고 추운 날씨에 하늘이 호수보다 더 푸르다.

 

 

우수잔을 뒤로하고....하산 

 

 

도야호로 가는 길입니다.

아래사진에, 드디어 화산폭발로 생긴 바다같은 도야호(칼데라호수)가 보이는군요. 

 

 

 

글:그림/이요조

 

경상도에는 의외로 특유의 돼지국밥집들이 많다.

부산 사상터미널 부근에 가면 밀양국밥집이 있다.

밀양국밥집은 돼지국밥집이라는 뜻이다.

since 1976이면 만 30년이 넘었다.

 

부산이 고향인 나의 외가는 김해였다. 시골을 좋아해서 겨울방학이면 외가로 달려가던 나는 소와 돼지와 닭과 강아지들을 보며 자랐다.

눈이크고 굼실굼실한 소의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내 마음도 평온해질 수 없었다.

닭들은 아침이면 홰에서 내려와 병아리들을 끌고다니며 진종일 마당을 헤짚고 다니다가 멀리 뒷산까지도 원정을 나가곤 했다.

강아지는 늘 가마솥을 긁은 누룽지 숭늉에 그나마 운이 좋으면 생선가시가 고작이었다.

그래도 잘만 짖고 뛰어다녔다.

막내이모만 남았었는데 부엌일은 혼기가 찬 이모가 도맡아 했고 농사는 문도령이라는 노총각이 있어 밤이면 머슴방에는 동네 장정들이 모여들어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겨울이면 쇠죽을 큰가마솥에 가득 끓여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먹이를 쇠죽통 한가득 부어주는 것도 한겨울 일이었다.

까망돼지가 있었는데  정지깐에서 나오는 구정물을 이모는 부지런히 모았다.

살 씻은 물, 음식찌꺼기등을 모아 쌀겨?를 한 바가지 타서 돼지에게 부지런히 먹였다.

지금처럼 흰돼지가 아니라 까망돼지는 참으로 발육이 더뎠다.

이모는 자기 시집갈 때 잡을 돼지이므로 정성을 기우려 돼지에게 먹이를 주었고 겨울밤이면 호롱의 심지를 돋우고 십자수를 놓았다.

신랑 우인들 손수건 20장, 아니 30장은 해야겠지? 해가며....

 

드디어 잔치날이 잡히면 제일먼저 외할머니는 콩을 깨끗이 골라 콩나물 시루에 앉히셨다.

어느게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으니 술도 앉혔다.

어린 내 기억에 집에서 술을 못만들게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아마 그 때가 그 때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할머니는 회할부지를 위해서 늘 누룩을 몰래 빚으시고 술을 숨겨서 담으셨다.

잔치날이  다가오면 여자들은  곡식을  절구에 찧어 일일이 체를 쳐서 시루떡을 쪄냈고 찹쌀은 힘쎈 장정이 떡판에 물메를 쳐서 손수 볶아가루를 낸 콩고물 묻혀 쫄깃하고도 꼬소한 찰떡을 만드셨다.

전을 부치는 기름내는 동구밖까지 번져나고  잔치는 언제나 흥겨운 법이다. 동네가 온통 잔치마당으로 들썩거렸다.

강아지들도 눈치를 챘는지 다른 때 보다 더 짓까분다.

 

돼지는 동네 장정들이 몰려오면 우리에서 발버둥치며 온동네가 씨끄럽게 끌려나가고,,,,

막상  꽥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고  해체되어 고기로 일일이 분해 되었다.

눈깜짝할 사이 김이 술술 오르고 고기는 삶아지고 ....

어느새 돼지수육과 내장이 함께  한 접시를 이루면 막장과 소금이 곁들여지고

여러가지 슴슴한 나물반찬과 김치와 떡과 전들이 차려지게 된다.

집에서 빚은 술과 단술9식혜)과 그리고 겨울이면 잔치 떡국이 나오는데....밥이 나올때는 돼지국이 곁들여 나왔다.

얼마나 구수하고 얼큰하고 맛있었는지....(내 어릴적 기억은 이랬다)

 

우리나라가 먹거리 문화가 급작스레 많이 퍼진 것은 10년 전후로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식당이 귀했다. 요즘엔 눈에 밟히느니 식당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외식이 늘고 있다는 추세다.

내 기억속의 돼지국밥은 그 정도였다. 참고로 울엄니는 돼지고기를 못잡수셔서 우리남매들은 돼지고기는 굶고 자라났다.

대신 거의 생선종류로 대신했는데....

시집을 오니 어느날 다니러 오신 시어머님 <돼지국을 끓여라>시는 분부가 떨어지셨다. <집에서 웬? 돼지국을?>

당췌 어떻게 끓이는지를 몰라 어머니께 부탁드렸고 덩달아 먹어봤더니 의외로 맛은 꽤 괜찮았다.

겨울이면 김치찌개대신 돼지국을 끓여드리니 쇠고기보다 돈도 덜 들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수월했다.

요리도 훨씬 쉬웠고 재료도 간단했다.

 

한 십여년 전에는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꾸벅꾸벅 졸며 내려 가다가도 멀리- 이 돼지국밥집 식당들이 보이면 경상도에 다 다랐다는 이정표를 대신했다.

그 때 시골의 잔치 분위기를 떠 올리면서 한 번쯤 먹어봤으면 했지만....그 기회는 마음만 있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남편과 남편친구와 나 이렇게 사상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지려는데 남자들은 뭔가 아쉬웠나보다.

아침먹은지 얼마됐다고, 간단한 점심이나 먹고 헤어지잔다.

나는 줄레줄레 따라갔더니 밀양국밥이다.

간판을 보자 <돼지>자는 전혀 없는데도 <나는 아! 돼지국밥이네!>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거 아시는가?

밀양에는 막상 밀양국밥이 없다는 것을....

밀양에 가서 국밥집을 찾으면 <돼지국밥집>은 많지만 막상 <밀양국밥집>은 없다는 사실을.....이거 아이러니가 아닌가?

 

옛날 이미 오래전부터 돼지국밥은 시작되었지만  상업화된 유래는 이북사람들이 피난을 와서 겨울이면 돼지를 한 마리 잡아

걸어놓고 먹던 그들의 향수를 잠재우기 위해 고기양은 적지만 둥둥 띄운 국밥으로 해결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는지도 모른다.

상술에 뛰어난 그들이 부산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국제시장과 영도다리를 주무대로 오가며 손쉽고 간편하고 영양보충에 훌륭하고

돈없고 배고픈 시절 허기와 마음을 달래주던 유일한 음식이 아니었을까?

 

맨 위엣 사진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니 종업원 아주머니 한 분이 인상을 쓰며 내게 따지러 오는 중이다.

그 당시 나는 DAUM과 일의, 용역관계에 있었으므로  일종의 취재중인 셈인데 영영 글이 묻혀버리는가 했더니  이웃집에 가서 돼지국밥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때아닌 볕을본다.

그런 글이 얼마나 많은지....앞으로도 봄까지는 어디 안다니고도 바가지로 쉽게 퍼내기만해도 될터이다. <계속>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보면...

(실은 돼지국밥하면 밀양국밥집이 꽤나 알려져 있긴하다) 

 

 

아마도 내장국밥을 시켰나보다.

메인 국밥보다 500원이 더 비싸군!

 

 

마치 설렁탕처럼 나왔다. 잘게 썬 파와 다대기.

 

 

그리고 새우젓, 부추겉절이

 

 

깍두기와 양파 고추 찍어먹을 막장

 

 

간이 아주 슴슴했다.(영 안되었었나?)

남편 친구가 먼저 하는 방법을 보고 따라서 ...했다.

 

 

새우젓을 넣고

부추겉절이도 넣고

 

 

내장이 보인다.

 

 

부추를 경상도에선 정구지라 부른다.

 

 

정구지도 넣어주고

 

 

휘 저으면 국물이 벌개진다.

 

 사상터미널에 가시면 밀양국밥집을 찾아가 보시라....

배가 든든~

가격저렴!!

 

 돼지국밥말기

 

살이 많이 붙은 돼지뼈다귀를 푹 고운다.

어찌보면 사골을 고아 만드는 설렁탕 국물내기와 방법은 같다.

삶은 돼지고기와 내장을 알맞게 썰어 준비해두고는

뚝배기에 밥과 썰어놓은 고기를 올려 그릇 그릇 준비해둔다.

손님들이 몰려오면 썰설 끓고있는 큰 국물솥에 밥과 고기가 담긴 뚝배기를 가져다 대고는

큰 국자로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뤄내다를 두어번 반복하는 토렴을 거친 후, 

다대기를 얹어 손님상에 낸다.

손님은 새우젓과 부추겉절이로 짠맛과 매운맛을 조절한다.

부추겉절이는 말만하면 리필가능!

각자 취향에 맞는 국밥이 말아지면

깍두기나 풋고추등으로 식사를 하면된다. 

고기나 내장수육을 건져내어 부추겉절이에 싸먹는 맛도 일품이다.

 

글:사진/이요조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속으로

 

 오타루는 훗카이도의 작은 항구도시이다.

러브레터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오타루는 눈과 낭만과 로맨틱한 분위기로 가득 찬 도시임을 알 것이다.

나같은 여행객이 또 있을까?

아무리 패키지 여행일지라도 사전지식 검색 하나 없이 떠나는 게 나의 특징이다.

음~ 그 건 왜냐면 사전지식은 상상을 불러오고 그 상상은 항상 실체와 어긋나기 때문에 검색이나 아무런 지식도 없이 떠나는 여행

하얀 면 소창 손수건 같은 정보로 그 곳을 보면 맞딱뜨린 감동은 언제나 새롭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빛깔로 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이 아니라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로 떠나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온전한 나만의 느낌을 오롯이 품어올 수가 있으므로....

내게는 신기한 낯 선 고장이니까!

 

1872년 최초로 부두를 건설해 상항(商港)으로 홋카이도 개척의 가교 역할을 했으며, 1880년 삿포로[札幌]와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어 삿포로의 외항 및 이시카리 탄전의 석탄 선적항으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러시아 연방의 사할린·프리모르스키(연해주)와의 교역도 성하였다. 현재도 홋카이도 서안 제1의 상항(商港)이다.
평지가 협소하여 상가·녹지대·주택지 등은 해안단구상에 계단상으로 발달하여 비탈로 이어져 있다.

부두 부근과 서부의 가쓰나이강[勝納川] 하곡이 공업지대를 이루어 제관(製罐)·목재·고무·제분·식품 등의 공장이 있다. 하코다테 본선[函館本線]이 통하고, 동쪽의 교외는 니세코·샤코탄[積丹]·오타루[小樽]해안 국정공원에 속하며 겨울은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메이지[明治] 말기의 많은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어 뛰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검색

 

 明治말기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항구도시

오타루를 가로지르는 운하 

눈이 내리다 멎다가 하는 날씨였다. 

부산출신인 나에겐 거리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적산가옥에서 어린시절을 거의 보낸 내 눈에는 마치 추억어린 옛집을 만나본 듯 할 정도다.

석조건물의 창고들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잘 활용하는 그들, 

운하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창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이 곳!

러브레터 "오겡끼데스까~" 연인의 도시 오타루가 아닌가?

 정겨운 항구도시 오타루

가로수가 마가목인가? 기사에게 물었더니 '나나카마이도' 란다. 

지금은 그저 관광적인 요소로만... 

작은 항구와 좁은 언덕길이 있는 오타루~

평온하게 흐르는 옛 운하와

 

석조창고등 화려한 역사와 로맨틱한 정취가 넘실거리는 도시~ 

추운날씨에 빈 인력거만 손님을 기다리고 섰다. 

 

 뒷 골목 오르골 전시장들 역시 오래된 석조건물

 

 오르골 전시장 앞에 있는 증기시계,세계에서 두 개 뿐이라는...

매 시간과 30분에 증기가 품어나온다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맞지도 않고 추운 날씨에 지켜보질 못했다. 

 

 그 내부로 들어가 보면 나무계단을 이용 이층으로 혹은 다락으로

전시실이 아주 재미있게 연결된다. 

뒷골목의 유명 향토 빵가게인데 역시 석조창고를 이용했다.

옆 건물은 신축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기존건물들과 밸런스를 맞추느라 비슷하게 만들었다.

(건물비교 하느라....틀어진 사진 그대로 사용)

눈이 많은 북해도 눈에 파묻힐 나무를 보호하느라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서 먹거리 몇가지를 샀다.

포장이 마치 가마니처럼 된 과자가 궁금해졌다.

뭘까? 글을 모르니...그런데 친절하게도 샘플이 있다.

팥을 설탕에 굴렸는데...아주 포근포근한데 축축하지도 않고

맛있었다.(나중에 먹어본 결과)

맛보다는 포장이 예뻐서 샀다.

 

 

 

꽃무늬 빵봉투가 예뻤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아! 예쁘네~>

눈치로 알아들었는지...싱긋 웃으며 빵봉투속에 쇼핑빽을 두 개나 더 넣는다.

<오! 감탄!>

그랬는데...투명 비닐을 꺼내더니 빵봉지를 덮는게 아닌가?

손잡이만 쏙 나오고 빵봉지는 우의를 입었다.

<눈은 벌써 멎었는데..>

순간 또 감탄!!

 

아랫층은 빵가게,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아름다운 그림 엽서를 팔고 있었다.

 

 

이층은 빵과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였다.  

이층으로 올라가봤더니..... 

많은 꽃그림과(사진 흔들렸음) 

 오타루를 그린 그림을 전시회중이었다.

간단한 드로잉이지만

난 폭설속을 지나온 기억과 

 그리고 운하의 잔상들

오타루 근교의 특징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요약되어 있는지....

 그림앞에서 나는 또 다른 그림여행을 했다. 

분위기와 특성을 잘 잡아낸 선 몇 개로 그려진 드로잉의 매력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림에서는 실제 운하를 가로지르는 배도 볼 수가 있었고

그 옛날 화려했던 오타루 운하의 정취도 느낄 수가 있었다.

해서 나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선물받고는 아직 그대로인 4B연필로 끄적여 흉내내 보았다.

 

 창고건물을 활용 낭만적인 분위기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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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씻은 물이 다음사람의 변기 사용 물로 .....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②


본에서 오직 하나의 무공해지대가 있다면 홋카이도(北海道).
도쿄에서 홋카이도의 싱그러운 공기를 포장해서 상품화하는 진풍경까지 생겼났던 청정한 곳이다.

오지...눈의 나라 홋카이도 !
중심지로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삿뽀로가 있는 곳이다.
외곽에는 넓은 대지에 처녀림이 존재하는 북극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일본의 4대섬 중에 가장 북단에 위치한 원주민 아이누의 고장.
일본에서 가장 개척이 덜 된 곳, 그러기에 오염이 덜 된 홋카이도는 진정 아름답다.
가로수로 포플러 나무가 있고 몽골 같은 原野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노브리베츠의 지옥계곡(地獄谷)
벌거숭이 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뜨거운 열기가 마치 지옥을 연상케한다 하여 붙은 이름.
산책길옆의 나무가 잘 자라더라도 시냇물이나 바위에는 화상을 입을 염려가 있으니 함부로 손대지 말란다.
계곡 전체에 유황냄새가 독하게 나지만 무려 11(?)가지의 온천수가 부분마다 다르게 솟아난다는 곳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오지의 지옥을 체험했다.
지옥온천과 지옥까마귀들과 길이 어디며 들이 어딘지도 모를 눈길을 헤쳐 나온 지옥설원을 보았다. 도착할 때는 4시 가까이였는데 밤중이었다. 사진은 야간모드로 찍었기에 밝게 나왔을 뿐 실제는 캄캄했다.
홋카이도는 3시 30분이면 일몰이고 4시면 어둡다. 5시면 한 밤중이 되어버린다. 일본의 국조인 까마귀들, 날만 어두우면 이런 비상을 한단다. 안 그래도 을씨년스러운 지옥계곡의 하늘을 온통 뒤덮던 까마귀 떼들...

 

① 지옥계곡
② 지옥을 방불케 하는 까마귀 떼
③ 지옥설원

 

까마귀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오후 4시가 채 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해도의 석양은 이미 오래전에 지고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훅 끼쳐오는 유황냄새에 뭔가 이상한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단체로 울부짖고 단체로 비상하며 날아 올랐다.
좀체 놀라지 않는 나도 놀랐는가 보다, 노브리베츠 지옥계곡 사진 대부분이 흔들렸다.
사진을 찍다가 보니 카메라의 흔들림이 마음따라 후들거림을 느낄 수 있다.
빈센트반고흐의 밀밭을 나는 까마귀가 갑자기 떠올랐다. 암울하고 음산한...분위기~
지옥계곡은 나무도 자라지 않는 음산한 곳인데 어스름녘의 까마귀라니 너무나 절묘한 지옥의 묘사가 아닌가?

머리가 흔들 거려왔다.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음인지 현기증이 인다.
유황냄새에 속도 메스꺼웠다.
까악!! 까악!!
소리도 크고 몸집도 우람하다.
저 숱한 까마귀는 도대체 뭘 먹고 살까? 낮에는 여자 관광객들을 골라 먹이도 낚아채간다는 까마귀들...
호텔에 들어와서 방문을 닫으니 좀 살 것 같다.
그렇지만 까마귀와는 달리 유황냄새는 사방을 스멀스멀 살아서 기웃거렸다.

밤이되자 눈이 내렸다.
깊은 산 속 계곡이다. 거리가 스산하다. 가로등 불빛 뿐....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 밤 내린 눈으로 빙판길에 눈이 부셨다.
아! 눈이다~
2007년 들어 첫 눈을 맞게되는 셈이다.
멋진 북해도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우리나라처럼 눈이 왔다가 아니라....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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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일본에서 오직 하나의 무공해지대가 있다면 홋카이도(北海道).
도쿄에서 홋카이도의 싱그러운 공기를 포장해서 상품화하는 진풍경까지 생겼났던 청정한 곳이다.

오지...눈의 나라 홋카이도 !
중심지로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삿뽀로가 있는 곳이다.
외곽에는 넓은 대지에 처녀림이 존재하는 북극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일본의 4대섬 중에 가장 북단에 위치한 원주민 아이누의 고장.
일본에서 가장 개척이 덜 된 곳, 그러기에 오염이 덜 된 홋카이도는 진정 아름답다.
가로수로 포플러 나무가 있고 몽골 같은 原野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오지의 지옥을 체험했다.
지옥온천과 지옥까마귀들과 길이 어디며 들이 어딘지도 모를 눈길을 헤쳐 나온 지옥설원을 보았다. 도착할 때는 4시 가까이였는데 밤중이었다. 사진은 야간모드로 찍었기에 밝게 나왔을 뿐 실제는 캄캄했다.
홋카이도는 3시 30분이면 일몰이고 4시면 어둡다. 5시면 한 밤중이 되어버린다. 일본의 국조인 까마귀들, 날만 어두우면 이런 비상을 한단다. 안 그래도 을씨년스러운 지옥계곡의 하늘을 온통 뒤덮던 까마귀 떼들...

 

 

노브리베츠의 지옥계곡(地獄谷)
벌거숭이 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뜨거운 열기가 마치 지옥을 연상케한다 하여 붙은 이름.
산책길옆의 나무가 잘 자라더라도 시냇물이나 바위에는 화상을 입을 염려가 있으니 함부로 손대지 말란다.
계곡 전체에 유황냄새가 독하게 나지만 무려 11(?)가지의 온천수가 부분마다 다르게 솟아난다는 곳이다.


여행 떠나기 전 감기가 딱 붙어 저도 여행을 함께 떠나잔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곳에 약사여래..뭐라고 되어있다(동양은 다 같은 모양이다)
병을 고쳐준다니 김이 오르는 곳에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 (편도선이나 좀 가라앉게..)
심지어 길가에 축담을 쌓은 돌 틈에서도 김이 모락거렸다. 손을 대어보니 돌은 싸늘했지만,
지옥온천의 산장에 하룻밤을 묵는 내내 호텔 구석구석을 스멀거리며 기어다니는 유황냄새~

계란이나 양파가 썩는 유황냄새가 가득한 이 곳! 정말이지 지옥을 연상케 한다.

온천탕에 들어갔다.
여러 군데의 탕이 있는데..그 중 첫 번째 탕에 들어가서 좀 편히 앉아 보려다가 기겁을 했다.
가루분 같은 흙먼지가 탕에 가라앉았다가 그 먼지가 내가 들어가니 어떻겠는가? 그 먼지 층이 5cm는 좋이 될 것만 같았다.
기겁을 하고는  여러 번 여과되어 흐르는 맑은 탕으로 들어갔다.
아깝지만 더친 감기에 노천탕은 생략했다.

 

① 지옥계곡
② 지옥을 방불케 하는 까마귀 떼
③ 지옥설원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부셨다. 눈이 와 있었다. 기분이 상큼했는데, 그랬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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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문채취기

 온 몸으로 표현할 길밖에 없는 x 가새표 

 

김해공항 국제신청사

 

 김해공항을 오전 8시 50분 KAL로 출발,
북해도 치토세 공항에 11월20일 11시에 도착할 때는 겨울비가 추적대며 내리기 시작했다. 

치토세(千歲)공항!

일본은 입국하는 외국인 16세 이상 지문채취를 하는 첫 날, 치토세 공항의 (외국)첫 비행기란다.
그러니까 북해도로서는 시행하는 첫 손님인게다.

한적한 공항이기에 망정이지 입국심사가 더뎠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어졌다.
뉴스로만 접하던 지문채취와 사진찍기가 시작되나 보다.
기자들이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취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입국심사가 까다로와 상습 지체되는 일본여행에 짜증을 더 할 게 뻔하다.
입국심사대의 긴-행렬에 많은 사람들이 수런거렸다. 검지(둘째 손가락)을 올려 지문채취를 하고 난 뒤 얼굴을 들고 카메라 렌즈구멍을 정면 주시하라는 말에 고개를 들면 찰칵 사진이 찍힌다.
<기분이 좋지 않다. 마음과 몸을 쉬게하려 여행을 떠나왔을 따름인데, 지문을 뜨고, 찰칵 사진이 찍히고...>

불쾌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테러범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라는데,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뛰는 것은 아닌지
미국은 수긍이 간다고 쳐도 일본은 왜 따라쟁이처럼 흉내를 내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일본내에서 지각있는 자들은 이 번 일을 인권침해, 프라이버시침해운운 반대운동을 벌이는데 굳이 여행객들을 잡고는 무슨 심산인지 모르겠다.

지문채취, 또는 사진 촬영을 한다해서 그 걸 피해가지 못한다면 테러범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세 살 먹은 아이들이 생각해도 이런 행동은 여행객들을 잠정적인 범죄자로 보는 일이다.

한마디로 불쾌하다.

수화물을 찾아서 공항심사대를 빠져나오자.
그 곳 역시 TV 방송기자들이 경쟁 취재하느라 소란하다.
그들은 일본어를 능통하게 잘하는 한국손님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다.

일본어를 능통하게 하는 한국인(?)들에게 와르르 붙어서 인텨뷰를 하고 그들은 생끗 웃으며
<뭐, 테러법들을 여과하기 위한 방법이라면....당연히 해야지요. 뭐...>
이런 대답이나 하고들 있다.

다들 웃는 얼굴로......< 어우야, 속 터져!  솔직하게 불쾌한 내색 하나 없다>
얼추<좋은게 존거여> 로 끝내는 대답, 대답들....

<내가 일어를 잘 하등가, 영어에 능통하등가 했어야지..>
이 때처럼 후회되어 본 적이 없다.

한국말로 불만을 토로하고 앉았는데 조심스레 웬 남자가 말을 건넨다.
처음에는 같은 여행객인 줄 알았다.

한국말로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먼저 그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물었다.

그는 명함을 꺼내며 자기는 북해도 신문사에서 나왔으며,한국에 3년 동안 체류하면서 한국말을 배웠단다.

봇물이 터져나오듯 나의 불만은 포문을 열었다.
미국인들에게도 오늘 우리가 한 것처럼 똑같이 하는 것인지?
차별화를 두지 않는 것인지 먼저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건 너무 하지 않느냐?
언제나  전쟁의 이슈 그 소용돌이 가운데 있는 미국처럼  너희들('장삿군에 가까운')은 모난 돌도 아니면서 무슨 '테러범우려'란  명분을
앞세워 단순여행객들을 암시적인 범행자로 지켜보자는 작태가 아닌가?
나, 오늘 이 일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네티즌들에게 알리고 우리도 지문채취를 하든지하자고 해야겠다.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신분도 망각, 다혈질인 나는 울분을 토했다.
김희로가 생각난다고도 해줬다. 

세계 정세에 언제나 유리하게 매끄럽게 요리조리 잘 피하고 몸조심 잘하는 일본인들,
작금에 그들이 누구에게 원한을 살 일이 있다고 테러범 운운할까?

아 맞긴하다.
그들이 한국과 중국에 저지른 침략과 노략질의 만행들,
이제야 부끄러워지며 두려워지는가 보다.
그래서 발 뻗고 자기에 심사가 가히 편치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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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2007,11, 20일 11시 도착 (KAL) 

치토세(북해도)공항 

치토세(북해도)공항 전경 

 취재진(공항안)

취재진(공항안) 

 취재진(공항안)

 

 취재진(공항밖) 

오른쪽 베이지칼라의 양복입은 사람이...(맨 아래...글))

일본어을 구사하는 손님에게만 접근 

 다들 ..기분좋게...

(한국사람들 너무 무르다)

  웃는 얼굴로,

 

......

<자국을 보호하는 차원이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가 이해해야지 않겠느냐>

는 (영어)말에 너무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취재에 포카스를 맞춰야 되는데(거세게 불응하거나 분개하는 자는 없는지)

기대에 어긋난 ...황당한 웃음일까?

 

볼 하나 가득  심술바람을 넣은 나를 눈 여겨 보았는지 한 남자가 다가왔다.

방송취재가 아니니 그는 카메라도 없고 펜과 종이 뿐이다. 

(그가 가장 솔직한 인텨뷰를 받아낸 게 아닌가 싶다.  거대한 카메라 앞에 솔직한 심경을 토로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하고나니 속이 조금 후련했다.

말이 통했지만 나는 저절로 액션이 취해졌다.

두 팔을 들어 가새표를 지어 강하게 흔들었다.

그는 내 뜻을 분명 전달 받았으리라!

 

"NO"

 

 

사진: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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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북해도 도청사(그들의 문화유산)에 갔을 때 일이다.

나는 그들의 문화유산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마음의 잔상에 남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문화재를 지키고 앉아있는 

머리에 허연 서리가 앉은 한 서기관과

그리고 이차대전 전쟁비품을 보며

묵념으로 숙연하던

중년의 한 지식인에게서...

 

아직도 몇몇 소수의

의식속에는

국수주의가 피처럼 살아

흐르는 것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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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을 치른 선조들의 

전쟁유물들 앞에서 요지부동으로

숙연한 그를 피하여 사진을 찍다.

그의 코트자락이 ,,,오른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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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스산해진 날씨에 가을이 못내 아쉬웠음일까?

생각없이 훌쩍 떠났다. (밀양>

밀양은 감도 많고 대추도 많은 고장이다.

신시가지가 영화의 거리가 되었다. 지나치며 얼핏보니 <송강호의 거리>란 팻말이 보인다.

아직은 가을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해서

아직은 감이 그대로 있을줄 알았는데,

까치감만 몇 개 대롱거렸다.

감을 따낸 게 아니라 그저 숱하게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익다못해 뚝뚝- 떨어져버린 감들, 

단맛을 아는 벌레들이 꾀이다가  곧 자연으로 되돌아가겠지~

 장대를 들고  임자없는 감나무에 도전장을 냈다.

툭-부러져 내린 감나무

이래서 감나무엔 오르지 말라고 했나보다.

감나무는 가지가 꽤나 굵어도 맥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보기보다 장대 다루기가 꽤나 힘이 든다.

 

긴 장대를 겨냥하자니 팔이 후둘거린다. 

1번 주자... 감을 따보지만 어렵다. 

큰 개울자리 뚝방에서서 감을 따자니 행여 아래로 떨어질까 어지럽고 

 

따질 듯...될 듯,말 듯,

결국은 안반만 나무라고 물러났다.  

2번 주자! 

된 듯 했으나 역시 헛 손질~ 

3번 주자까지 나섰건만, 

따는 듯 싶다가도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치니

감은 비명을 지르며 아스라지고 만다. 

 

감을 따는 게 아니라,

떠나가는 가을을 따 두려는 몸짓이다.

겨우 하나 땄다. 

따냈다. 

도시사람들에게 감도 그 자리를 선선히 내어놓으려 들지 않는다. 

 

떨어져 부서지는 감!

바구니에 아직은 떫어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감 하나 겨우 담겼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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