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변에 위치한 <허브빌리지>가 4월 26일 open한다는군요. 

강을 끼고 있는 입지적 조건을 잘 살려서....

천혜의 꽃동산으로 꾸며두었더군요.

제가 간 날은 오픈을 앞두고 일손이 분주한 나날중의 하루였지만...

손색없이 잘 꾸며져 있더군요.

 

일상에서 지친 당신이여~  일상이 생기를 잃고 그 빛이 쇠할 때

임진강변으로 달려오세요!

 

 

사진찍기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가보세요!

어디..어느 곳을 찍어도 .....멋진 곳!! 

얼마나 사진을 많이 찍었는지.....차례도 뒤바뀌었습니다.

그런 설명도 핑계도  그저 사족에 불과할 뿐....

 

 

임진강까지만 달려 오시면...

외국의 어느 수려한 풍광 못잖은  허브빌리지가

지친 당신의 상처를 치유할 것입니다. 

 

 

 설명 글이 따로 들어 갈 필요가 없어 보이지 않으세요?

스크롤바 댕기시는 손목압박이 있으시겠지만...

주-욱 내리시기만 하셔도

예민한 당신은 금새 눈치채실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도예공방 

 

 

 

 

이지역은 아직도 군사지역이라....오염이 되지 않았습니다.

출입이 자유롭게 된 것도 기실은 얼마되지 않은 세월일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임진강의 아름다운 속내를 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허브샵인데....준비는 되었지만 문이 닫겨있더군요.

반사되는 유리창 때문에 렌즈를 바씩 갖다대고....내부를 찰칵!!

 

 정문입니다.

관리실인 셈이지요. 입장료를 받습니다.

 

 이 점이 제겐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입니다.

누구의 발상인지...

江을 끌여들였더군요.

산중턱에서.... 

  

 

시선과 연결....강을 가차이 불러들인,

그 발상~ 멋지십니다. 

 

사실은 이런데요.... 

 

그 물이 흘러내리는 곳입니다.

 

물길 위에서 내려다 본 ....

테이블과 의자가

물가에 쉬러 내려앉은 까망 물잠자리 날개같다는 생각을,

 

 

 

 

 

카메라렌즈에 뭐가 묻은 것도 모른 채 계속 찍었습니다.

뷰파인더로 보는 영상이 너무나 밝고 환한 대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아서...

바보처럼 하늘에 꺼먹점을  구름처럼 붙여서 찍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말아야겠지요. ㅎ`

 

도자기 의자와 그림타일로 만든 탁자가 있더군요., 

 

 

허브농장을 분양한답니다.

잎파리 형태의 농장이 너무 예쁘지요.

저는 잎 끝에 달린 동그란 이슬방울 예약하고 왔답니다.

(ㅎ` 희망사항)

 

 

얼마나 더 확장공사를 할지...

센터는 그런대로 정리가 되었고...자꾸만 넓히는 중이랍니다.

 

 

 

 

 

 

 

미술전시를 하는 갤러리가 있고, 

 

전 이 건물이 콘도형식으로 지어진 숙박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만약에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참으로 멋진 곳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불협화음을 내는 연인이나 부부가 있다면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뭐! 인생이 별건가...

살아있을 동안, �처럼 피어있을 동안

예쁘게...

향기롭게...

꽃을 닮지 않을까 해요!

 

 

 둘이서 손잡고 걷다가,

다리 아프면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며 밤, 달빛어린 강물을 내려다 보며

말이 없어도 좋으리!

강바람에 머리카락 흩날리며~

 묵묵하게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엉킨 실타래같던 사연들이 술술 풀리고

저 - 강물에 흘려보낸다면~~~

 

 

간장, 된장을 품은 넉넉한 장항아리처럼

햇살을 받아 따끈하게

그런 삶을 꽃 피울 것 같지 않으세요??

 

 

무수카리 보랏빛에 눈이 부십니다.

 

 

이 집은 아마도 비공개의 별채인 모양입니다.

 

 

 

 

강을 바라보며.....차 한잔,

이야기가 술-술 풀릴 것 같지않나요? 

 

  

 

 

 

 

 

 

 

야외무대 

음악회나....웨딩을 올려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객석입니다.

 

 

 

 

 

 

 

임진강과 북삼교 

 나도(논네) 데이또 하고잡따!

 

 

  

 

 

 

물길이 더 예쁜 시인의 길,

 

목판에 새겨진 시화가 걸린 곳입니다.

물이 있고 동굴안 형태라...얼마나 시원한지,

봄날씨에 동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감동적인 시를 읽고  마음에 소름마저 돋아나니...

어휴, 죽는지 알았습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화장실 

 

화장실창문

 

화장실 

갤러리 

 

직원 아주머니 한 분이 예쁜 바구니를 들고나와 쑥을 캐고계시더군요.

오픈식날....화전을 부칠거랍니다.

꼭 오셔서...드시라는.....말과 미소가 향기나는 허브꽃 같았습니다.

 

행사알림표

 

 

대충 정서가 된 것 같아서

스크랩 열어둡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만 치시면 되겠지만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222번지

어른/6.000원  청소년/5,000원  어린이/4,000원

 ☏ 031)833-5100, 5101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원하신다면...가시는거지요 뭐,

그늘이나 벤치도 많으니 가족과함께 싸간 도시락 잡숫기에도 좋을 것입니다.

 

이요조: 글/사진

 

 

 

사월 초순의 강은 고독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햇살이 여지없이 따끈하게 내려쪼이지 �았다면 나  역시나  강물의 고독에 말려들 뻔 하였다. 

떠날때는 사진을 찍고 스케치도 하려고 잔뜩 무겁게 준비를 하고 떠나긴 했는데,

햇살이 좋아서 , 돌틈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의 생명력에 놀라워서 그만 퍼대고 앉아 그들과 놀기에 열중해버렸다. 

쑥도 캐고, 모래바닥에 납짝 엎디어 사진도 찍고,

바다를 좋아하고 강을 사랑하는 나는 어스름 해가 비끼는 저물녘이 오도록 그렇게 기다렸다.

 

사진에는 지극한 초보지만 비낀햇살의 감미로움을 잘 알기에....수직으로 내려꽂히는 정오의 햇살은 내게 무의미하다.

석양을 기다리며, 쑥도 캐고 새카맣고 반질한 까만 조약돌도 만지다가...

정말,아무도 아무도 없는 강에서, 사구에서 나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사위가 너무 조용하니 바람이겠거니 무심했는데, 아니었다 그 소리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쏴~~ 쏴아~~

강물 흐르는 소리를  육십이 거진 다되어서 들어보다니....

강이 살아서 흐르고 있었다.  4월의 강은 고독하지 않았다.  완연한 봄기운에 차고도 씩씩하게 흐르고 있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위한 통로~

 

 

사위가 너무 조용해서 혼자인줄만 알았다. 

 

 

비끼는 해의 그림자는 감미롭다. 

 

 

강바닥에 철퍼덕 앉아 마음을 비우면 자연이 내 속에 들어 앉는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빗장이 열린다.

 

 

어느 미술전에서 이런 작품을 맞닥뜨릴까?

 

 

태초의 화와가 된 기분으로~ 

 

 

그예  나는 선악과를 따먹듯.....

 

 

강 건너 인적이 있었다.(줌인)

 

 

보라빛 셔츠가 물에 젖어 진보라빛이 되도록....놀이에 열중한 칭구 둘,

그들은 뭘 잡는걸까? 우렁이? 

 

 

두꺼비같기도 황소개구리 같기도....

(살아서) '괄괄,,'  운다면 이 정적이 다 깨어지리라~(얼마나 다행인가?)

 

 

묵묵함 

강은 조급하지 않다. 느긋하게 어루만지며 흘러내린다.

그러나 화가나면 무섭기도.....

범람하는 강물에 강변 느티나무들은 온전히 서있질 못하고 죄다 드러 눕다시피 했다.

10~20도 가까이 휘어진 큰 나무 등걸에도 (어린 사내애처럼)올랐다.

내가 끝에 올라서면  맥없이 뿌리를 드러내고 힘없이 드러누을 것만 같았다.

한 참을 꼭대기(?)위에까지 올라가 건덜거려도 보다가 내려서며 한 마디 해주었다.

<너, 힘쎄구나 야~ 나는 누웠길래 섣불리 봤더니...>

나무등걸 한 번 올라탄 값으로 대견하다고 툭툭~ 쳐 주었다.(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집으로

내가 가져온 건 까망 조약돌과 쑥 외에도....

흐르는 강물에 흔들어 씻어서 강둑에 펴서 잘 말린 뽀송한 내마음도 있었다.

 

 

산벚꽃이 핀

작은 그랜드캐넌 같은 계곡, 한탄강

강의 협곡이 좋아 .....그 풍경이 좀은 생경스러운 데가 있는....변화가 있는 풍경이 좋다. 

 

 

고즈넉하다. 

이 느낌을....이 자연의 채광을 과연 내가 그릴 수 있을까?

 

 

 자디잔 물결무늬 하나하나가....

잔디 하나하나처럼 생명을 담아 흘러내린다.

 

 

사구도 만들며 흘러가고,

 

 

돌아 돌아 굽이치되 소리없이 흘러간다.

 

 

말없이 점잖게, 선비롭다. 江은.....

 

 

가만히 귀기우려 들어보면 잘박인다.

파도처럼 드쎄지 않게...조용조용....

 

 

마치 산수화를 그리는.....노옹처럼,

 

 

햇살과 바람....그 모두와 함께 그림을 그려낸다.

 

 

붓끝이 스쳐 지나가듯....세밀하게,

 

 

가볍고 부드럽게,

 

 

온유하되, 위엄있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 무엇!!

 

 

그런 그림을 강이.... 

 

 

그리고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

 

 

비끼는 해는 자애롭다.

 

 

천천히~ 담뿍, 따사롭게 빛살을 골고루 퍼트린다.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고 있었다.

 

 

글:그림/이요조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임진강편 2006-05-22

신음 소리를 흘려보내는 누나를 부둥켜안고 나는 오지 않은 봄을 향해 달려나갔다 엄마야...... 누나야...... (제발) 강변 살자...... 나는, 나는 이런 데가 정말로 좋다. 임진강의 최북단 경기도 연천군...

 

대지는 어머니다.

봄의 대지는 거대한 생명그릇이다. 

 

 

모래와 바위돌 투성이 강가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안까님 쓰며 막 깨어나는 생명들의 노래가 들린다.

 

 냉이

      생명있음에

                                                                                              이요조

       


      흙으로 빚어진 육신도 균열이 가는지 아파오고 
      겨우내 움집 속에 있던 던적스런 서캐가 알을 까고 곰씨랑 거리며 기어 나온다.    
      균열된 틈새로 자란 이가 스멀스멀  끓는다.   

        

      긁적이다 못한 가려움으로 나는 묘한 춤을 춘다.   
      근질거리는....마.임.같.은.   
      마구 긁어댄 상처사이로 피가 배이면 뜨거운 불에 데인 듯 거리로 설레발치며 나선다.  

        

      거리의 악사를 만나러~   
      내 몸짓에 따악 어울릴 마법의 피리소리를 찾아서...  
      내게도 움이트는 봄이다. 봄! 봄!  


       

여리고도 기막힌....

생명의 환희, 그 몸짓! 

유채꽃

어느 몸짓이 이 보다 더 아름다울수가.... 

 

쇠별꽃이  소근소근...

<얘들아......따듯한 봄날이야! 얼른 일어나~> 

 

엄마 젖무덤에서 막 얼굴을 뗀 듯한

만족스럽고 소담한...  

 

<아함~> 

기지개키며 일어나는 생명들의 몸짓

무용도 이런 자연의 몸짓에서 본 딴 게 아닐까?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요> 

 

<희망의 노래를 불러요!> 

 

 

<꿈을 향해서~> 

 

 

<두렵지않아요> 

<해낼거예요> 

<힘껏! 힘을 모아~> 

 

<환경이 조금 척박하면 어때요!> 

 (햇살과 바람과 친구가 있는데...>

<굳셀래요!> 

 <지금은 비록 여리지만...>

<두고보세요~> 

<꿈을 잃지않고> 

<씩씩하게~> 

<슬퍼도 울지않고~> 

<힘들어도 잘 참아내며> 

<견딜거예요> 

<예쁘게 자랄거예요> 

<실낱같은 생명이지만...> 

<햇살머금고 쭈욱 쭉!!> 

<이렇게 무리지어 자라면 외롭지도 않아요> 

쇠뜨기 

산괴불주머니 

 

 

암수가 짝을 지으려는 모양이군요 

 

실은 카메라를 들이대자...연애질에 열중하다가

화들짝놀라 달아나는 녀석들~~

<미안~ 미안~> 

       

      생명그릇

       

      낡아서 더 더욱 곤궁한 
      이 생명그릇 깨어지고 나면 그 뿐일 터, 
      세상이 빨리 돌면 돌수록 더 커지는 원심력과 구심력, 
      있는자는 더 가지고 없는자는 더 뺏기고, 

        

      가벼운 건 더 가볍게  
      무거운 건 더 더욱 무겁게 
      외로운건 더 외롭게  
      고독한건 더 고독하게~ 

       

      사금파리 생명이라도 줏어담자. 
      덤으로 봄비에 젖어 낙화한 처연한 꽃잎도 
      건건이발을 뻗어 뿌리를 내릴 적에 받은 생명의 선물인 것을 
      눈물처럼 줏어다 머리에 꽂아보자. 

        

      생명이 발아하기 까지의 '라마즈' 인내 
      새 살이 돋고 딱지가 앉던 무수한 반복  
      깊은 상처에서 깨어나는 혼(魂) 
      밟히면 밟힐수록 곧게 서는 생명의 작두여~ 

       

       
      이요조

 

 

누가 버리고 갔을까?

마치 생명있는 것처럼 주인의 자동차에 목을 흔들며 끄덕대다가

낯선 곳, 멀리도 와서 버려졌다. 

(울고있니?)

 

 

어쩌다 한 짝만 강바닥에 누었는지....<기진했구나?>

 

 

낡은 군화 한 짝

모래무덤이라도 만들어 주고싶다.

임진강이라면 북한에서 흘러왔다고 생각할만한, 한탄강변에 한탄스럽게 버려졌다.

임무를 다하고도 남은 너!

 

봄은 그렇게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탄강(전곡부근)에서

 


         현호색을 닮아보이는    노란꽃은  양귀비과의 월년초인 산괴불주머니다. 산언저리나 들에서 볼 수 있는데,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는 갈라지며, 높이는 30- 50㎝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고 2회 깃꼴로 갈라지며 전체 모양은 긴 타원형이다. 꽃은 노랑색으로 4-6월에 팬촉모양으로 피고, 열매는 삭과로서 줄모양을 하고 있다.

        산괴불주머니는 잣냉이, 암괴불주머니라고도 부르고, 관상용으로 이용하며, 한방 및 민간에서 전초를 황근(황근黃槿) 또는 습지자근이라하여 진경(鎭痙-경련을 진정시킴), 조경(調經-월경을 고르게 함), 타박상, 옴, 종기, 이질, 복통, 진통, 타박상, 해독, 탈항, 독사교상, 옴이나 벌레독에 의한 피부염, 요슬마비(腰膝痲痺-허리와 무릎마비 증상) 등에 달여서 복용하거나 짓찧어서 환부에 붙인다.

        그러나 산괴불주머니는 유독성 식물로서 약을 오랫동안 달여 소량을 복용하여야 하며, 과량 복용하면 어지럼증, 가슴두근거림, 혈압강하, 허탈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결국에는 호흡마비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해독법으로 위 증상이 나타나면 초기에 토하게 하고 위를 세척한 후 설사를 시키거나 필요시엔 수액을 공급하여야 한다.

          버섯모양과 흡사한 쇠뜨기의 생식줄기

           

          필두엽()이라고도 한다. 풀밭에서 자란다. 땅속줄기가 길게 뻗으면서 번식한다. 이른봄에 자라는 것은 생식줄기[]인데, 그 끝에 포자낭수()가 달린다. 가지가 없고 마디에 비늘 같은 연한 갈색잎이 돌려난다. 영양줄기는 생식줄기가 스러질 무렵에 자라는데, 곧게 서며 높이 30∼40cm로 녹색이고 마디와 능선이 있으며, 마디에 비늘 같은 잎이 돌려나고 가지가 갈라진다.

          포자낭수는 타원 모양인데 육각형의 포자엽이 밀착하여 거북의 등처럼 되며, 안쪽에는 각각 7개 내외의 포자낭이 달린다. 쇠뜨기란 소가 뜯는다는 뜻으로, 역시 소가 잘 먹는다. 생식줄기는 식용하며, 영양줄기는 이뇨제로 쓴다. 북반구의 난대 이북에서 한대까지 널리 분포한다.

         

        경기도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 511 배상면주가,

        양조장을 찾아갔었다.

        배상면주가의 공장이자  술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이 곳!

         

         

        예로부터 술은 제사에서 기호식품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었다.

        술을 빚는 일이 안사람들의 큰 일이자

        술맛이 안사람의 손맛을 나타내므로 술을 빚는 일에 정성을 들였다.

        술박물관에 들어서자 테마로 엮어 알기쉽게 설명을  해놓았다.

         

        언제부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못해보았던 일들이

        꼭 해보아야지 하는 일들이 가슴에 새겨지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술을 빚는 일>이었고

        배상면주가를 다녀온 뒤로 그 생각은 더 굳어졌다. 배상면주가에서 누룩을 사 온 것은 물론이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자 왼쪽에 보이는

        초와 그릇 하나

        그릇은 비었지만 정안수(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먼저

        마음을 가다듬었으리라~

         

         

        설명을 들을 필요없이 인형이 대신하고 있었는데, 그 순서가 혹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누룩의 재료가 될 통밀

         

         절구에 빻아서...

         

         

        메주를 만들듯이 고형틀을 이용, 발뒷굼치가 터지도록 밟아서 누룩을 만들었다.

         

        술밥(고두밥)을 준비하고....

        고두밥을 식히느라....늘어놓으면 아이들은

        어른들 눈을 피해 훔쳐먹기에 바빴다.

        (아마도 모른 척 눈감아 주었을 터~) 

         

         

        흐~ 술 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아주 아주 어린이 였을 때,

        나라에서 술을 담그지 못하게 금지령을 내렸다.

        유달리 애주가이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시고 할머니는 몰래 술을 담으셔서 대나무숲에도 묻어 놓으시고...

        그랬다는 이야기는 생각난다.

        내가 철이 들어서 할머니 술 거르시는 모습은 생각난다.

        겨울방학때였으니...뜨뜻한 방에서 술익는 소리는 들었다.

        비오는 소리 같기도 한...

         

         누룩...맞겠지?

         누룩을 가루로 내어서...?

         

         

         

        식힌 고두밥이랑 한데 버무려서...

         

         

        술을 앉히고, 

         

         

        술이 익을동안 기다리기에 좀이 쑤시는 남정네들~

         

         

        아녀자들 역시나 술이 얼마나 익었는지

        매일매일 확인을 해야하는 정성스런 작업이었다.

        발효가 지나치면 신술이 되어버리므로~ 

         

        술을 거르는 작업같기도....?

         

        비오듯 술익는 소리가 끝난 후,

        불붙은 초를 독에 넣어보면

        발효가 덜 끝난 술독은 탄산까스에 의해서 불이 꺼지고

        발효가 끝난 술독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는단다.  

         

         

        그러면 술독에 용수를 박아

        가운데 고인 술을 담아내면 그 게 청주란다. 

         

         

        고리로 술9청주)를 내어 술병에 보관하면...

        술독이 다 비도록 , 바깥주인들은 흐믓했으리라~

         

         

        그 익은 술을 걸러

        소주고리에 담아 밀가루 반죽으로 시루뽄을 돌리고

        가마에 불을 지피면 똑똑-떨어져 내리는 곡주 !

         

         

        술밥을 꼬들꼬들 쪄내는 시루

        이미지엔 위치가....오른쪽으로 기운 것이 시루! 

         

        이 역시나 오가리의 이미지는 아니네~

        고두밥을 대량으로 찌는 나무시루 이미지~

        겹오가리란 말 그대로 겹으로된 오가리(항아리)란 뜻인데...

        술이 발효하면 냄새가 나게되고 날벌레들이 꼬일까봐 그리고 독을 식혀도 줄겸

        이중구조로 된 항아리를 말한다.

        뚜껑을 열고 이중구조로된 주둥이에 물을 부으면 물이 항아리를 천천히 타고 흘러내리게

        만든 술항아리를 이름이다.

         

         -양온기-

        술을 발효시키기까지

        술독을 넣고 온도를 높이려 등잔불을 넣었다 뺐다 반복하기를....

        그 걸 <양온기>라고 했다.

         

        손수 등불을 넣어 조절했던 온도를 올려주던 발효기 같은 원리다.

         

         

        옛날은 술이 귀했던 시대였으니

        남정네들에게는 얼마나 유일한  벗이었을꼬!

        힘든 농사일에도 농주 한 사발 입가심 후라야 피로도 가시고

        새 힘도 불끈 솟는다 했으니~

        능률이 오르니...아내가 어찌 술을 담그어 준비하지 않을까?

         

        第酒로도,

        약주로도, 농주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식품이었으니~ 

         

         

        술거르기 

         

         

        술밥을 그냥 잘박하니 담아 익어 그대로 뜨면 막걸리가 되고

        자루에 넣어서 담그면 동동주가 된다고 했던가?

         

         

        요즘같이 마트에서 돈 천원 가량에 사오는 술이 아닌...

        얼마나 주부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술 아니든가?

         

         

        각종 술병들,

        눈에 익은 술병들이다.

        친정에서 어머니는 이 독으로 식초를 일구어 잡수셨다. 

         酒병들

         

        초례청에서 많이 본 술병인데...

        친정에도 이 술병 한 쌍이 있다.

         

         

         

         

        이 술병은 현재도 가지고 있다.

        시고고님댁에 인사차 간 새댁...

        마당 꽃밭에 뒹굴고 있는 이 병 두 개를 ...얻어왔다.

        고모님은 <이걸 뭐하게? 질부야?>하셨는데...

        하나는 동생에게 주었고 하나는 가지고 있다.

         

         

        술잔......

        차곡차곡 크기별로 든 모습이....

        참으로 기이하다.  그림도 좋고,

         

         

        고배라고 알고 있다.

        제삿상의 제기처럼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 깃든... 

        신분이 좀 있는 사람들은 술잔을 여기다가 받쳐서 사용하였다.

        역시 나도 고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친정 작은 아버지는 김해 가락면 분이시다. 그러니까 가락국의 땅인 셈이다.

        밭일하면 이런 게 많이나와 그러면 곡갱이에 깨어진 거니 밭둑에 던져버리지...

        <작은 아부지 그럼 담에 꼭 나 하나 갖다주세요!>

        <야야....요조니는 차암~ 그거를 뭣하구로?>

        잊지도 않으셨는지....어느날 신문지에 싸고 또 싸서 갖다주셨다.

        그 게 내가 여고시절이야기였으니~~ 흐(빠르긴 좀 빨랐다)

         

        조자기 겹오가리

        술독에 파리나 벌레가 꼬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술독이 너무 뜨거우면 위에 물을 부으면 이중 구조로 되어있어

        바깐단지표면을 흘러내리며  술독을 차게 식힌다. 

         

         

         술을 직접 담아봐야겠다.  (전통주 담그기...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큰 글씨를 읽으실 수가...)

        25도가 발효에 적절하다하니....독을 이불로 싸지 않아도 오월 단오전 쯤이면 술 담그기에 딱 좋겠다.

        술이 익은 후에 요즘은 냉장고들이 크고 좋으니...까짓, 익은 술 보관쯤이야~

        단오날, 술을 걸러  님앞에 술상을 내리라~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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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윤중로 벚꽃축제가 하루 앞당겨졌다.(4월 8일~20일)

        서울 시내 벚꽃축제중 인파가 가장 많다는 여의도 벚꽃축제가 올해는  예상외로 일찍 만개했기 때문이란다.

        통상 14일경인데, 9일로  잡았다가  8일로  또 다시 당긴 날자였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안은 영등포구청은 서둘러 꽃장식 아취를 만든다, 꽃화분을 새로이 장만하려 부랴부랴 인원을 동원 시키고

        축제 행사무대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지하철을 이용 여의나루 (1,2번 출구)로 나왔을 때는 정오 가까울 무렵의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화창한 봄날씨....모처럼  여여함을 누리며 뽀사시한 벚꽃 터널길 사이를 걸어 봄을 만끽했다.

        KBS 본관앞 여의도광장까지 갔다가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를 맞다가 되짚어 돌아나오는 길에는  정오경과는 달리 말 그대로 인파는

        인산인해였다.   사람구경인지.....꽃구경인지....

        밤벚꽃이 더 좋다는데...갖가지 빛깔의 조명에 색깔을 달리하는 벚꽃의 모습이 무척이나 몽환적이라는데...

        친구들끼리 가면 우정에 꽃향내가 스밀것이요!

        연인들이 가면....아무래도 싱숭생숭한 봄밤에...꽃나무 아래를 팔짱끼고 걸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ㅎ`

         

         

         

        여의도 쌍둥이 빌딩도 봄치장을 한껏했다.

         

         

        꽃을 즐기는데엔 남녀노소 구별이 없나보다. 

         

         

        꽃길을 걸어가며 고민하고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 순간만큼은.....걱정근심 던 가벼운 마음마저 화사하여라!

         

         

         봄이 하얗다.

        반사되어 눈부시다는 말을 알 것만 같다.

         

         

        송알송알....포도송이처럼 둥글게 뭉쳐 피어나는 벚꽃,

        몽실몽실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등걸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그저 아름답다는 감탄밖에.... 

         

         

        마주오는 인파!  거꾸로 헤쳐나가기 어려울 정도,

         

         

        어허라~ 어떤늠이...

        풍류를 알기에? 벚나무에다가 감히 집을? 

         

         

        카메라를 줌으로 당겨 찍으니...

        위협을 느꼈나보다. 깍깍- 까치가 갑자기 나타났다.

        지금쯤  새둥지 속에는 알이 들어 있겠거니~~

         

         

        한강둔치에도 각색 꽃이 만발했다. 

         

         

        개나리, 조팝나무~

         

         

        진달래꽃도 자태를 뽐내듯....목을 쭈욱 빼고~

         

         

        goldenbell, 이름이 참으로 걸맞은 작은 황금종, 개나리꽃도 일제히 폈다. 

        니들 한꺼번에 이리 활짝피면 어쩌라고.....싱숭생숭 이 봄날 차마 어쩌라고,,,,

         

         

        윤중로는 벚꽃축제 기간동안 차도 다니지 못하게 묶어두었다.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에서 직접 액자에 끼운 사진을 건네는 사진사!

        초상화를 그려주는 길거리 화가들....

        축제거리다운 면모 맞다.

         

         

        성급한 여심에 파라솔까지 등장.....ㅎ~ 

         

         

        손에 손잡고, 유모차에, 손에 손에 카메라들고.... 

         

         

        벚꽃이 봄햇살에 하얀 웃음을 웃으며

        마구 유혹하더군...여의도 윤중로에 가면, 

         

         

         이 꽃은 자두나무꽃  흰꽃이 소담스럽다.(국회의사당 담벼락)

         

         

        국회의사당....예까지 왔으니 들어가봐야지~

        의사당 공원이 멋진데...

         

         

        여의도는 어딜가나 지금은 벚꽃 만개중!!

         

         

        봉오리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 만개...

        아서라! 비오면 다 떨어질라!!

         

         국회앞 필드운동장

         

        여기서도 잠깐 쉬고....

        필드에도 가설무대 급하게 설치중,,,,

         

         

        전경이 예쁘다. 여기 들락이시는  분들도 ...

        의사당 건물처럼 정갈하고 예쁜마음으로 ...?

         

         

        정면에서 바라보니 위엄도 있고.... 

         

         

        웅비한 기운도 느껴지고.... 

         

         

         다시 벚꽃길을.....

        일제잔재라고 하지만....어언 해방된지도 60년이 넘었으니....

        60~90살쯤 추정하면 될라나? 벌써 아름드리 고목이 보인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지하철이 편하다고요!!

         

        여의도공원 생태계연못

         

         

        어! 이늠들 봐라...무엄한지고!! 벌건 대낮에 애정행각이라니~

        요즘 젊은 것들은.....어른들 앞에서도? 

         

          

        여의도광장에는 막상 벚꽃이 적다.

        대신 人花가 만발하였다.

        재깔재깔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병아리 소리와 흡사하다.

         

         

        여의도 공원에는 진달래가 아주 붉게 피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옭아매고

        철쭉이 다음 바톤 주자로 준비하며 숨죽이고 있었다.

         

         

        공원안에 있는 소나무가 그랬다. <저도 꽃을 피운답니다>

        곧 송화가루를 날려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소월님의 詩로 더욱

        우리의 정서와 가차이 자리잡은 진달래.... 

         

         

        역시 이 진달래도 몽글몽글....

        몽우리로 피는 게 좀 달라 보인다. 

         

         

        꽃이 다닥다닥 화려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현란케한다.

         

         

        KBS본관과 여의도 공원입구부분 

         

         

        자두나무

        자두꽃이 벚꽃인지....벚꽃이 자두꽃인지....(희다)

         

         

         나무그늘에 누워서 뒹굴뒹굴 구르며 쉬다가 찍다.

         

         

        바람에 벚꽃 잎이 하르르르.....날리고 

         

         

        백줴 밝은 대낮에 비가...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강둔치는 지금 꽃불바다!

         

         

        벚꽃축제기간 행사 볼거리들... 

         

         

        나들이 따라나왔다가 맘에 꼭 드는 상대를 만난 듯....길거리 번개팅!

        멍멍양과 멍멍군, 졸지에 탐색전에 들어가다.

        <근데...완소남 시츄군! 자네 목감기 들었는가? >

        <에이 스탈 꾸겨지게...쥔님이 구랬어요...우씨~쪽팔려~>

         

         

        말티즈양! 솔찌키 인물보담 옷이 한 날개 하는군!!

        빨간 줄무늬 세라복이 환상이여~

        울집 딱 요만한 '마리'가스나(말티즈) 이거 보믄 단식투쟁하겠는걸...

        <나에게도 날개를 입혀달라!!>

        <나에게도 봄나들이를...>

         

         

         플레임 안에 가두면 그대로 멋진 그림이 된다.

         

         

        고목이 생명을 잉태해 내듯...

         

         

        딱딱한 등걸에서도 부드런 꽃을 피우는 벚나무!!

         

         

        겨우내 추위에 움크렸던 마음을 보듬어 위로하고

        보상하기에 충분한 봄의 꽃들이여~

        고맙고도 감사하구나!

         

         

         아마도 폐수를 정화시키는 차원의 인공폭포같다.

        약냄새와....아무튼 냄새가 좀 났지만....

         

         

        여의나루역에 도착.....발길을 돌리기엔 뭔가 아쉽다.

         뒤돌아 보이는 게 진정 서운하다.

        꽃놀이의 미진한 취흥을  두고 떠나야하다니....  

         

         

        눈을 돌려 나루쪽을 바라보니....젊음의 천국이다.

        만남의 약속장소를 여의나루 부근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조팝나무 흐드러지고... 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여유로움이 명화속 장면과  다름 없군요

        인생이 어쩌면 꽃 속의 꿀보다도 더 달콤할 수도 있다는....흐믓함

        입가의 미소가 바람에 떨어지던 꽃비처럼,

        딱딱한 등걸을 비집고 돋아나와 터지는 꽃망울처럼 

        배시시~ 배시시~

        강변에다 꽃잎처럼 여린 미소를 떨구고 돌아왔지요.

         

        <저도 좀 봐주세요~> 온종일 고개를 젖혀 머리위 벚꽃만 보느라 목고개가 아팠는데....발밑에

        난장이 민들레가 소근거렸다.<오! 그래, 너도 피었구나!!>

         

        봄에는 꽃구경이 (삶에) 최고의 위안이지요.

        봄이(몸이) 근질거리는가요?

        그럼 봄 속으로 햇살 속으로 뛰쳐 나가보세요!!

        오늘은 (음)삼월삼짇날!!

        강남갔던 제비도 돌아 온다는데...

        우리도 릴렉스된 삶의 원기, 재충전을 위하여 이 봄날에

        아자!! 아자!!

         

         

         

        글/사진:이요조 

         

         

         

        윤중로 벚꽃길 찾아 가는길

         

        지하철                                                                                            

        - 여의 나루역 1 ,2 번출구 - 나와서 그대로 직진. 도보 20분 거리.

        - 당산역 4번 출구 - 당산 중학교 -> 국회의사당 (여의도) 도보 15분 거리.

        버스 (윤중로와 가까운 순서)                                                               

        - 여의도 순복음 교회 정류장 1002, 1008, 5601, 753, 5713, 7613, 5615, 5618,6633

        - 여의도 관관 호텔 정류장 263, 5534, 61

        - 여의나루역 정류장 7007-1, 753, 261, 360, 461

        - 여의도 공원 정류장 5633, 5615, 5618, 6633

        - 여의도 환승센터 11-1, 11-2, 320, 301, 5601, 631, 301, 6513, 2300, 2500, 2400, 2100

           


          봄밤이 괴이쩍다.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3시에 깨어나 눈이 말똥거려~ 그만 일어나 앉았다.

          년식이 꽤나 낡아 배기량이 떨어지는 육신에 욕심만 저만치 앞서가고 급한 마음은 자빠라진다.
          내 손으로 술도 담아보고 싶고, 멋진 그림도 그리고 싶고, 맛진 글씨도 쓰고싶고.....하고싶고, ..싶고,

          옛말에 솜씨, 맵씨, 글씨, 글에도 씨자를 붙였다.
          그런데....이상한 일은 글씨안에 맵씨와 솜씨가 다 들어 앉은 것이다.
          더 더구나 그 안에 맛과 향기와 느낌마저 다 들어 앉았으니, 내 욕심은 과욕을 부르고 잠을 잊은 것이다.

          지금은 개편되어 없어진 daum 시티N 에서 여행마스터로 글을 기고할 때 일이다.
          포천사는 이가 배상면주가 탐방글을 올린적이 있었다.

          <아! 이런 곳도 있었네~ 짬나면 한 번 가봐야지!>
          했던 게 거의 2년만에 찾아든 곳이다.

          마치 상업 홍보용 같은 글로 보이겠지만...그 곳에 들린 나는 모든 게 (하나에서 열까지) 어찌나 마음에 흡족한지....

          요즘 문인화에 푹 빠져 마음이 자빠라지는 형국에 욕심에 불을 지핀 꼴이 되었다.
          습관상 카메라는 건성 챙겼지만 모처럼 카메라 셔터를 신나게 누른 날이었다.

          입구 현관서 부터 내 걸린 축제 포스터의 포스에 그만 꽃혀버린 것이다.
          맛뵈기로 주는 술을 잘 받아마시고 나는 봄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글씨에 취하고~~(@.@)

          어찔어찔 술 박물관을 돌아 나오는 길에 계단을 무심코 오르는데...바로 얼굴 옆에서 나는 풍경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날 놀래킨  풍경이 기이하게 생겨서  한참을 서서 노려보았다.

          풍경은 예로부터 (내가 아는 얕은 지식으로/맞는지 모르겠지만) 목조건물이 불에 약하니 푸른하늘을 물삼아 물고기를 띄우면 화마가 덤비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한다. 더구나 바람에 달랑이며 소리를 내는 물고기의(풍경) 소리에 화마가 저만큼 놀라서 도망가지 않겠는가?

           

          집에 와서  몇가지 사온 상품을 내 놓고 찍어보고 카타로그를 찍고 확대해서 보다가 새싹이 막 돋아나는 듯한 <봄>이란

          글자 옆에 떨어져 누운 봄꽃처럼  붉고 화려한 낙관을 자세히 보았다.
          바로 그 기이한 풍경그림이다.
          누가 이토록 멋을 아는가?  시음주를 한 잔 얻어마셨던 배가 싸르르-  또 아파오기 시작했다.

           

          양조장 주인이 들려주는 전통술 이야기 책도 덜렁 집어왔다.
          넉사(思,師,史,詞)자로 꾸며진 책이다.

          책이 얼마나 곱고 예쁘게 꾸며졌는지 얼른 샀다. (언젠가 쓰임새가 있을 것 같아서-)
          詞에는 단아한 여인을 그린 한국화와 함께 술 이야기를 풀어간 글은 바로 운률이 내재한 살아있는 詩였다.
          운률따라 얼마나 술술 잘 읽히는지... 그 글은 달디단 술처럼 입술에 걸리고 짜르르르 오장에 전해지는  첫 술잔처럼

          그렇게 감동을 실어주었다.

           

          화창한 봄날!
          나는 그렇게 흐드러진 봄꽃아래서 좋은 술 한 잔에 취한 것처럼 봄의 여흥을 느끼다 못해

          누가 나의 곤한 봄밤의 소중한 숙면마저 앗아갔는지.... 주범이 뭣인지를 도통 모르겠다.

           

          지금은 새소리가 먼저 곤한 봄날 아침을 깨웠는지, 아침이 새를 깨웠는지 누가 먼저인지 몰라도
          어느새 희뿌연 (2008년 식목일) 아침이 불면의 창을 기웃거린다.
          무심코 계단을 오르던 나를 놀래키던 풍경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명징한 아침이다./이요조

           

           

           

          주인이 풍류를 제대로 아는 술도가에 갔다.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맛글씨체이다.

          (맛글씨라 칭함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글씨가 솜씨와 맵씨를 겸비하고 맛과 향까지 풍긴다 하여...)

           

           

          술도가, 즉 전통술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내부 자세한 사진은 다음글에)

           

           

           

          붉은술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흑미주, 산사춘주, 활인18품주,....

           

           

          냉이주까지 곁들여 시음....속이 짜르르 ~~

           

           

          술빵이다. 술로 빚은 빵보다 매화가지가 멋드러진 접시문양에 반해서...

            

           

          이것 저것 사가지고 집에왔다. 여기서도 맛글씨를 찾을 수 있었다.

           

           

          술찌깨미로 만든 과자, 요리에 쓸 맛술까지...

           

           

          솔직히 책이 예쁘게 제본되어서 덜렁 집어온 책인데 책내용이 더 착하고 예쁘다.

           

           

          師(스승사), 史(역사사), 詞(말씀사), 思(생각할사)

          양조장주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다. 현대판 술도가 주인(배상면주가) 사장은 1988년 가업인 전통술 사업에 참여하여

          19년째 전통술 마케팅을 해오고 있다.

          백세주의 <국순당>을 부친과 형님과  창설하고 따로 <배상면>으로 독립한 양조장집 아들(배영호)인 셈이다.

          어쩜 그는 글을 이토록 매끄럽게 잘 쓸까?

          그의 간단한 이력은 대구에서 출생하고 서울에서 자라고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술을 단순히 알콜섞인 물이 아니라 <감성과 문화를 실어나르는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통술 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1996년에 <배상면주가>를 창업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내게 그림책 체본도 할 겸 산 책이었는데....글이 더 좋다. 돌돌돌 흐르는 맑은 물처럼  침전된 나를 일깨운다.

           

           

          깨어나는 소중한 봄처럼, 불꽃처럼 살아있는 글씨!

          (꽃대 한 송이 피워 올린 듯,  봄이란 등잔에 꽃불 심지를 돋운 것처럼~)

           

           낙관도 그림이다.

          봄 곁에 떨어져 누운 꽃잎처럼....

          낙관속의 그림을 자세히 보니 나를 놀래키던 그 풍경의 모습이다.

          가만히 그 형상의 자태를 관찰하다가  큰 발견을 한 듯....<아~>낮은 탄성을 질렀다.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의 모습이란 걸

          나는 한 박자 뒤늦게 깨닫는다.

           

           

           

          찾아가시는길

                  배상면주가 http://www.soolsool.co.kr/

           

           

           

           

           

           

           

           

           

           

         

         

         

         

         

         

         

         


      • 종 목 보물  제592호
        명 칭 허목수고본(許穆手稿本)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고본
        수량/면적 3종12책
        지 정 일 1975.05.16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립중앙박물관
        관 리 자 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이다.

        허목은 전서체에 뛰어난 유학자이며, 23세 때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퇴계 이황의 학문을 존중하였다. 이로 인해 스승 정구로부터 퇴계의 학문을 이어 받아 다시 그 학문이 이익에 의해 계승, 발전되는 매개체역할을 하였다.

        유물을 보면『동해비첩』1책,『금석운부』2책, 『고문운부』9책으로 총 3종 12책이다. 이것들은 모두 허목의 대표적 전서체 작품들로서 그의 필체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인 허목(1595~1682)의 자필고본.
        허목 /허목수고본(17세기), 〈고문운부〉에서, 보물 제592호, ...

        보물 제592호. 3종 12책. 선진(先秦)의 전서(篆書)를 통해 문과의 본원을 회복하고 회화성이 강한 상형미와 창고미(蒼古美)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허목의 서예세계와 특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동해비첩 東海碑帖〉(세로 50cm, 가로 32.7cm) 1책은 허목이 삼척부사로 부임한 이듬해인 1661년에 동해송을 짓고 고문자로 쓴 동해비의 저고본(底稿本)으로, 그의 대표적인 전서체 작품으로 꼽힌다. 〈금석운부 金石韻府〉(세로 34.5cm, 가로 22cm) 2책은 금석에 나타난 전서를 모아 꾸민 자전이다. 〈고문운부 古文韻府〉(세로 24.5cm, 가로 22.7cm) 9책은 금석을 비롯한 각종 고문을 모은 전서의 자전으로 사성별(四聲別)로 순서를 정한 뒤 각 글자마다 정서체를 쓰고 그 다음에 각 체의 전서를 썼다. 여러 종류의 전서체가 망라되어 있어 허목의 고문수집 성격과 함께 그의 전서연구에 기본 자료가 되고 있다. 허혁(許)이 소장하고 있다.

         

         척추 동해비- 허목선생

         

         

         

        허목 동해비첩

         

        종    목 보물  제592-1호
        명     칭 동해비첩(東海碑帖)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수량/면적 1책
        지 정 일 1975.05.16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시대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허목은 전서체에 뛰어난 유학자이며, 23세 때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퇴계 이황의 학문을 존중하였다. 이로 인해 스승 정구로부터 퇴계의 학문을 이어 받아 다시 그 학문이 이익에 의해 계승, 발전되는 매개체역할을 하였다.

        동해비는 본래 ‘척주동해비’로 현재 삼척군에 있으며, 그 비의 탁본은 많이 유포되어 있다. 원래 동해비의 글씨는 현재의 비보다 더 컸는데 파도에 침몰되어 선생이 따로 작은 글씨로 써둔 것을 보고 다시 새겼다. 크기는 가로 32.7㎝, 세로 50㎝이다.

        이것은 허목의 전서체를 연구하는데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금석운부

         

         

        종    목 보물  제592-2호
        명     칭 금석운부(金石韻府)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수량/면적 2책
        지 정 일 1975.05.16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일반설명 | 전문설명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옛 금석문에 나타난 전서를 총망라하여 만든 전서자전으로, 석판으로 영인간행된 적이 있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이것은 허목의 전서체를 연구하는데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고문운부

         

         

        종    목 보물  제592-3호
        명     칭 고문운부(古文韻府)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수량/면적 9책
        지 정 일 1975.05.16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시대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원고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옛 문헌 및 금석에 나타난 옛 전서문을 운별로 정리하여 먼저 해서를 쓰고 다음에 각 체의 고문과 전을 기입한 고문자전이다.『금석운부』는 금석자료에 한정되었으나 이 책은 고문헌까지 망라하였으므로, 내용이 더욱 방대하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이것은 허목의 전서체를 연구하는데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1.   서   론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육향산 산정에 있는 높이 175㎝,  넓이 76㎝, 두께 23㎝의 큰 비석으로서 조선 현종 때의 정치가이며 대학자인 미수(眉수) 허목(許穆 : 1595∼1682)선생이 세운 비석이다. 1660년(현종 원년)에 허목이 삼척 부사로 부임할 당시, 동해에는 조석간만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다. 조수가 삼척 시내까지 올라와 여름철 홍수 때는 강하구가 막히고 오십천이 범람하여 주민들의 피해가 심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은 신비한 뜻이 담긴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독창적인 전서체로 써서 1661년<을축> 3월 정라진(汀羅津) 앞의 만리도(萬里島)에 비를 세우니 바다가 조용해 지고,거친 풍랑도 이 신비로운 문장의 위력에 감동되어 그 후로 조수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조수를 물리치는 신비한 비석이라 하여 일명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리워졌는데, 원래의 비는 1707년, 풍랑에 파손되어, 1709년에 재차 건립한 것이 지금의 비이다.

        비 전면

        본고에서는 허미수 전서가 조선 중기 서예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동 비문을 풀이해본다.


        2.  허 목 의  생 애

        허목 (1595∼1682 선조 28∼숙종 8)은 경기도 연천출신으로서   본관은 양천, 호는 미수(眉수), 자는 문보(文甫), ·화보(和甫),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허목 영정

        29세 때인 1624년(인조2) 광주(廣州) 우천(牛川)의 자봉산(紫峯山)에 들어가 독서와 글씨에 정진하여 그의 독특한 필체인 고전팔분체(古篆八分體)를 완성하였다.

        3. 비 의 내 력

             비의 전면과 측면 

        허목은 1660년 10월부터 2년동안 삼척부사로 재직하면서 향약을 만들어 주민교화에 힘쓰고 척주지를 편찬하는 한편, 삼척이 동해에 가까워 조수가 들어 주민들의 피해가 심하자 '퇴조비'를 세웠다. 훌륭한 목민관(牧民官) 치적의 일환으로 척주동해비가 탄생된 것이다.

        그는 당나라 한퇴지가 조주(潮州)에서 악어를 제축(祭逐) 한 고사를 따라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비를 세우니, 과연 그  날부터 조수의 환이 없어졌다고 하는데,이 것이 이 비를 일명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부르는 연유이다.

        글은 허목 자신이 지었으며 비제(碑題)와 본문을 모두 허목 독특한 고전(古篆)으로 썼다. 비제(碑題)인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와 본문은 판독이 쉽지 않은 과두문자이다. 본문은 그의 문집, 기타에 수록되어 있는 매우 유명한 문장으로서, 실상 200여 글자에 지나지 않는 짧은 문장이지만, 다음과 같은 일화와 함께 대단히 유명하다

        <일화1> 허목은 다시 같은 문자의 비를 별도로 만들고 죽서루(竹西樓) 밑에 몰래 묻은 다음, 소리( 少吏)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 때가 되면, 서인(西人) 수재(守宰)로, 나와 원수간에 있던 자가 와서 이 비를 파쇄할 것이오. 그렇게 된 즉, 조환( 潮患)이 여전하겠기에 네게 별도의 비석 뭍은 곳을 알려 주는 것이니 너는 명심코 누설치 말라"하였다 한다. 뒷날 이 말이 과연적중하여 다시 퇴조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 다시 세운 비가 곧 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라는 것이다.

        <일화2> 퇴조비를 세운지 49년이 지난 숙종36년(1710년), 새로 부임한 부사, 박래정(朴來貞)이 이 비석의 영험함을 전해듣고, 미신이라며 철거해 버렸다. 그후 다시 해일이 일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박 부사가 근심에 쌓여있었다.

        비의 후면

        나이 많은 통인이 아뢰기를, 허미수 전 부사께서 오늘 같은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 때 가장 나이 어린 저에게 당부를 하고 임지를 떠나셨습니다. "장차 퇴조비에 이상이 있거든 동헌 마루 밑에 퇴조비 하나를 묻어 두었으니 쓰도록 하라"   박부사가 동헌마루를 파보니 과연 퇴조비가 묻혀 있었다. 이에 잘못을 뉘우치고 퇴조비를 다시 세우고 나니 해일이 멎었다. 그 이후 사람들은 퇴조비를 수화불침(水火不侵)의 영물로 여기고 재앙을 막기 위해 소장하는 풍습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석의 내력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구전설화에 불과하며, 비석의 측면에 각한 추기(追記)에 따르면, 재차 비를 세우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다만, 대자(大字)로 된 구본과 소자(小字)로 된 신본에 관한 이야기만이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 것으로 본다면 신비(新碑)를 새긴 연대는 1709년(肅宗 35)임이 분명하다.

        아래의 문장이 측면에 해서로 쓰여진 추기인데, 이에 의하면 비석은 당초   정라도에 세웠으나(1661년), 풍랑으로 파손되어 바다 속에 잠겼으므로(1707년), 선생이 이 소식을 듣고 다시 써 주어, 비석 앞 면의 큰 글자는 구본(舊本,즉 원래 비의 탁본)으로 사용하고, 뒷면의 작은 글자는 신본(新本)을 사용하여,숙종 35년(1709년)에  재차 각하여, 죽관도에 세운(1710년) 것으로 풀이가 된다.

        육향산정의 비각 <1961년에 이 자리로 옮겼다>

        <顯宗二年 先生來守是邦 撰篆東海碑 立於汀羅島 爲風浪澈沈 先生聞而 改書 今 參考兩本 大字用舊本 小字用新本 刻竪于竹串島  時 上之三五年乙丑春三月也>
        현종 2년 선생이 이 곳에 태수로 와서 동해비를 짓고 써,정라도에 세웠으나 풍랑에 물 속으로 잠기니,선생이 이를 듣고 다시 써주었다. 이제 신,구의 두 가지를 참고하여,"척주동해비"라는 큰 글자는 구본<옛 비석의 탁본을 말하는 듯함>을 사용하고,작은 글자인 비문은 신본을 써서 각하여 죽관도에 세운다.  때는 숙종 35년 을축년 봄 3월이노라.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허목은 1682년에 사망하였으므로, 1709년에 다시 비문을 써준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1708년 비석이 부서져 당시 부사 홍만기(洪萬紀)가 사방으로 비문을 찾다가, 문생(門生) 한숙(韓塾)의 처소에서 원문을 구하여 모사개각한 것을, 1709년 2월 부사 박내정(朴乃貞)이 죽관도(지금의 육향산) 동쪽에 비각을 짓고 옮겨 세웠다"는 김구용의 [척주지](1848) 내용이 옳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先生聞而 改書" 부분의 풀이가 명확치 못하다. 또한 미수 재임시 비의 파손으로 재차 건립하였었다는 설도 있으나, 학술적으로 좀더 전문성이 있어야 확인되겠는데, 여하튼 이 비는 이렇게 세월을 맞이해오다가, 세워져있는 위치가 음지인 관계로 훼손의 여지가 많아, 유지들의 건의에 따라 ,1969년 12월 6일,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산정으로 다시 이전 준공하였고, 지방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니, 동일한 비가 두 번씩이나 제조되고, 장소는 3군데나 옮겨다니는 진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이 비문을 지니고 있으면 재액이 물러가며,가정에 안녕과 번창이 온다는  믿음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직하고 있으며, 현재 허목 후손의 댁에 소자(小字)로 씌여진 고본(稿本)이 전하고 있다.

        4. 조선 중기서예의 흐름과 허목의 전서

         (1) 17세기 중국의 전서

        일반적으로 전서의 입문은 금문(金文),대전(大篆)을 거쳐, 진(秦. BC221-205)의 허신(許愼)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그 전범(典範)으로 하고, 당나라 이양빙(李陽氷)의 전법(篆法)을 거치는 것으로서 정통성을 확보하게 된다.  

        허신과 이양빙의 연대 차이는 약 900년 정도가 되는데도 불구하고,도판에 보이는 바와 같이, 이양빙의 삼분기(三墳記)는 옥조전(玉조篆)이라는 전서로서, 운필(運筆)이나 결구(結構)에서 설문해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허신 이후 당(唐) 중기까지 전서의 변화가 많지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이양빙 이후 약 1,000년이 경과한 17세기경 청(淸)에서 주로 쓰여진 전서 역시, 이양빙의 전서와 비교하여 차이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전서는 서체가  실용성이  적어, 쓰임새가 많지않다보니 자연히 연구가 활발치 못하게 되므로서 빚어진 결과로 보아야 한다. 비액이나 인장등 극히 한정적인 용도에만 사용되어,폭넓은 변환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唐 李陽氷의 三墳記碑(762년)

        이후 약 100년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다가 , 등석여(鄧石如 1739-1805)가 출현하여 일신된 전법(篆法)을 제시하면서, 이후 서령8가(西령8가)등 여러 전각가와 오창석(吳昌碩),등산목(鄧散木),제백석(齊白石)등 전서,전각의 대가들이 출현하여 중국 금속예술의 꽃을 피우지만, 그렇게되기 전, 17세기 초중반의 전서는 그 모양이 단아하고 정돈된 세련미를 특징으로 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예술성을 추가하지 못하므로서, 행서나 기타 서체의 발달에 비한다면 정체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암(李암)의
        문수사장경비전액(文殊寺藏經碑篆額)(1327)
         

        (2) 조선중기의 전서   

        이렇듯,당 이후 송,명,청에 이르기까지 전서의 답보적 상태는 조선 중기 우리 서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중국과의 교류에 의해서 행서 위주의 변화는 꾸준하였으나, 전서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워낙 부족하고,또한 좋은 교재를 입수하기가 어려웠던 때문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못하였다.

        금석학의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당시 조선으로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조선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 1953)이 전서와 전각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기 직전까지 계속되었으니, 조선에 전서 명가는 있었어도 명품은 없다시피한 것은 이러함에 기인한다.

        조선 중기의 전서는 여말이나 선초의 전서와 크게 변화없이 소전(小篆)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주로 행서와 초서가 쓰여지던 시대였다. 고려말 조맹부(趙孟부)의 영향을 받아 소위 송설체(松雪體)가 주류를 이루던 조선 초의 서풍은 다시금 왕희지(王羲之)풍으로 복고하면서 사자관(寫字官)   한호(韓濩 1543 - 1605 )의 서풍이 조선 전역에 큰 흐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전국을 풍미하는 행서 일변도의 서풍에 상대적으로 해서,예서는 그 중요도가 떨어지게되었으며, 그 중 전서는 현상이 더욱 심하여,  비액을 쓰거나 인장을 새기는 경우등을 제외하면 그 쓰여지는 예가 극히 드믈었다.

        이렇게 빈곤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전서가 명맥만은 유지하고 있었으니, 대표적인 서가로는 김상용(金尙容 1561- 1637), 김수환(金壽恒.1629-1689), 이정영(李正英,1616-1686), 김진홍(1621-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김상용은 대전과 소전을 두루 갖추어 굵은 획으로 비액(碑額)을 많이 썼는데, 특히 평양에 있는 숭인전비(崇仁殿碑) 두액(頭額)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정영 역시 엄정한 소전풍으로 전서를 썼으며, 미수의 고전(古篆)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인물이다.

        篆韻(전운)이란 전자운서(篆字韻書)를 지은 신여탁(申汝擢),삼전도비 전액을 쓴 여이징(呂爾徵),전문자관(篆文字官)으로서 전자편람(篆字便覽)을  펴낸 경유겸(景惟謙)등도 전서를 잘 썼다.

        송계(松溪) 김진흥(金振興. 1621-   )은 전대학(篆大學)이란 학습서와 전자운서(篆字韻書)를 지어 고전(古篆)의 보급에 기여했는데,  그의 묵적으로 알려진 동명(東銘)은 소위 고전38팔체(古篆三十八體) 가운데에서 기자전(奇字篆)이라 불리우는 것으로서 특유의 도안적 형태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도안 형태의 전서는 비명(碑銘)에는 잘 쓰이지 아니하고, 그림이나 서책 또는 전각등에 사용되는데, 당시 제작된 계회도(契會圖) 의 제목글씨로 많이 쓰여져  조선 중기 전서의 한 부분을 장식하게 되었다.

        김상용(金尙容)의
        숭인전비(崇仁殿碑) 두액( 頭額) (1613)

          

        김진흥(金振興)의 동명(東銘)(1667)

        )

        허목의 고문운부(古文韻府)

        (3) 허목의 전서

        이러한 환경 속에서 허목은 하(夏),은(殷),주(周),삼대문자(三代文字)인 고전(古篆)을  집중 탐구하여 특유의 전서를 창안했는데 그 연구결과는 그가 평생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펴낸 고문운부(古文韻府) 9책,금석운부(金石韻府) 2책,고문운율(古文韻律) 4책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영조때 학자이며 일세의 문장가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는 자신의 시문에서 "지금 동해비를 보니 그 문사(文辭)의 크기가 대해(大海)와 같고 그 소리가 놀란 파도와 같아 만약 해령(海靈)이 있다면 그 글씨에 황홀해 질 것이나, 허목이 아니면 누가 다시 이 글과 글씨를 썼겠는가"라고 감탄했으며, 미수의 학덕과 인품을 흠모하던 정조(正祖)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이명기에게 명을 내려 허목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뒤, 대궐안에 비치하게 할 정도였다

        반면, 당시 온건한 필법으로 서예계를 대표할 만했던 이정영(李正英) 같은 사람은 그의 광서괴행(狂書怪行)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 나머지 왕에게까지 그의 체를 금할 것을 청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집비(集碑)에서 배운 서체라 자칭, 여전히 이 법을 고수하였다 한다. 이정영의 이러한 간섭을 냉소하며 지었다는,"朝日上東嶺 煙霞生戶窓 不知窓外事 墨葛寫과두" 운운하는 풍자시는 이러한 서풍을 고집하는 그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규상(李奎象)은 "미수의 획은 철획법(鐵劃法)으로 삼엄하기가 진한(秦漢)  이전의 획과 같았다." 고 말하고 있으나, 근대의 한문학자   임창순은 "중국에서 수입된 위조 하우전(夏禹篆)등 고전이 아닌 위전(僞篆)으로 익혔으나, 전서를 쓰는데 행서의 필의를 운용하고 행초에는 전법을 구사하는 등 새로운 형태를 창안하여 이채를 띄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정영(李正英)의
        김성휘묘갈명두전(金成輝墓碣銘頭篆) (1690)

        허목의 전서

         

        허목의 행서 - 잡지(雜誌)

        미수의 전서는 자형이 매우 복잡하며, 편봉을 과감히 사용했다. 반면 그의 행서에서는 오히려 전서 쓰듯 엄정하게 써내려간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행서보다는 전서가 더 엄중하게 느껴지게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미수의 경우 전서는 변화무쌍하고 가는 획인 반면, 행서,또는 행초의 경우 무게가 있고 장중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미수가 그의 전법을 완성함에 있어 고전에 근거하였다고는 하나,문자학적 측면에서 볼 때 정통성에 의아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즉, 설문해자 또는 이양빙의 전서를 입문치 아니하고, 금석운부(金石韻府)와 같이 조작된 글자가 많은 자본(字本), 또는 후인의 위작(僞作)이라 하는 하우(夏禹)의 비 등을 답습한 데에서 빚어지는 결과이다. 심지어 그의 전서를 잡전(雜篆)이라하여 정통서예에 비하여 하잘 것없는 자체(字體)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학습입문과정에서는 그러하나,그가 독창성과 개성을 두드러지게 하여 풍부한 예술성을 살리므로서 전서의 다양화에 기여하는 고전(古篆)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는 가치를 부여해야한다. 

        또한 그는 중국,조선 양국이 공히 전서를 중히 여기지 아니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고문을 깊이 연구하여, 전에 볼 수 없었던 특유의 서체를 개발하고,그의 문인들에게 물려주므로서, 조선사회 전서의 내재적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서예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의 전서작 중에서 척주동해비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며, 이외에도 영상이원익비(領相李元翼碑), 구산사비음기(龜山祠碑陰記) 등 많은 금석을 남기고 있으나 , 단지 유감스러운 점은 그의 복잡 미묘한 필획에 대한 각을 정교히 할 수가 없었던 관계로, 금석문에서는 육필과 같은 생동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목의 천마비명(天摩碑銘)

         

        5.  비 문 풀 이

        州古悉直氏之地 在예墟 南去京都七百里 東臨大海 都護府史 孔岩 許穆書

        척주는 옛날에 실직씨의 땅이요, 예나라의 터 남쪽으로, 서울로부터 700리요,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임하여 있다. 도호부사 공암 허목 쓰다

        註 :

        悉直氏

        신라 사바왕 때 이 곳을 지배하던 토호로서 102년 신라에 항복하였다.  

         

        예맥 예. 예맥은 옛 우리나라 동북방면밖에 한민족의 근간이 되는 민족이다.

        瀛海망瀁   영해망양

        바다 가없이 일렁이고

        瀛   바다 영
        망   아득할 망
        瀁   넓고출렁일  양

        百川朝宗   백천조종

        온갖 냇물이 흘러드니

        朝   흘러들 조
        宗   흘러들 종  

         

        其大無窮   기대무궁

        그 큼이 끝이 없어라

         

         

        東北砂海   동북사해

        동북은 모래바다

         

         

        無潮無汐   무조무석

        밀물 썰물 없으므로

         

         

        號爲大澤   호위대택

        대택이라 이름했네

         大澤 - 동해를 이름

         

        積水稽天   적수계천

        쌓인 물은 하늘에 다다르고

         稽    다다를 계

         

        渤휼汪濊   발휼왕회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

         渤    물솟아오를 발
         휼    샘솟을 휼
         汪    넓을 왕
         濊    물많은모양 회

        海動有에   해동유에

        바다의 움직임엔 음산함이 서려 있네

         에    음산할 에

        明明暘谷   명명양곡

        밝디 밝은 양곡은

         暘    해돋을 양
         暘谷 - 해 뜨는 곳

         

        太陽之門   태양지문

        해뜨는 문이로다

         

         

        羲伯司賓   희백사빈

        희백이 공손히 해를 맞으니

         羲    복희 희
          伯   맏 백

         羲伯 - 요임금 때 천지와 사시를 다스리던 관원

         

        析木之次   석목지차

        석목의 위차요

         析木 - 동쪽(寅方)에  위치하는 두 별

         

        牝牛之宮   빈우지궁

        빈우의 궁으로

         牝   암컷 빈
         牝牛 - 丑方의 두 별

         

        日本無東   일본무동

        해 돋는 동쪽의 끝이로다

         

         

        鮫人之珍   교인지진

        교인의 보배와

         鮫   상어교
         鮫人 - 물속 괴물. 울면 눈
         물이  모두 구슬로 변한다.

         

        涵海百産   함해백산

        바다의 온갖 산물

         涵   적실 함   포용할 함

         

        汗汗漫漫   한한만만

        많기도 하여라

         汗   땀 한   물많을 한
         漫   물넓을 만

         

        奇物譎詭   기물휼궤

        기이한 물건 조화를 부려

         譎   속일 휼
         詭   속일 계

         

        宛宛之祥   완완지상

        너울대는 그 상서는

         宛   완연할 완    굽을 완

         

        興德而章   흥덕이장

        덕을 일으켜 나타남이로다

         章   글월 장   드러날 장

         

        蚌之胎珠   방지태주

        조개는 진주를 잉태하고

         蚌   조개 방  
         胎   태아 태  처음 태

         

        與月盛衰   여월성쇠

        달과 함께 성하고 이지러지며

         

         

        旁氣昇비   방기승비

        기운을 토하고 김을 올리고

         旁   곁 방   도울 방
         비   눈비많이내리는모양 비

        天吳九首   천오구수

        머리 아홉인 천오와

         天吳  - 水伯으로 머리는 범과  같고  몸은 사람 같다.

         

        怪夔一股   괴기일고

        외발 달린 기는

         夔  외발달린소 기. 용같이 생긴 외발달린 짐승.

         

        태回且雨   태회차우

        태풍을 일으키고 비를 뿌리네

         태 -  큰 바람 태

        (風+幷)

        出日朝暾   출일조돈

        아침에 돋는 햇살

         暾   해돋을 돈

         

        교軋炫煌   교알현황

        찬란하고 눈부시니

         교   섞여 어지러울 교
         軋   서로다툴 알
         炫    밝을 황
         煌    밝을 황

        紫赤滄滄   자적창창

        자주 빛 붉은 빛이 일렁거리네

         滄    넓고아득할 창

         

        三五月盈   삼오월영

        삼오야 둥실 뜬 달

         

         

        水鏡圓靈   수경원령

        물은 거울이 되어 주위를 신령스레 되비추니

         圓靈 - 하늘

         

        列宿韜光   열숙도광

        늘어선 별들이 빛을 감추네

         韜   덮어가릴 도
         列宿 - 별자리

         

        搏桑砂華   부상사화
        (搏은 扶의 잘못인듯)

        부상의 사화와

         搏   잡을 박   칠 박 
         扶桑 - 동해에 있는 神木.  그
         아래에서 해다 돋는다고 함.
         砂華 - 동해에 있는 나라

         

        黑齒麻羅   흑치마라

        흑치의 마라와

        黑齒,麻羅 - 남만에 있는 종족

         

        撮계보家   촬계보가

        상투 튼 보가며

         撮    모을 촬
         계   상투나 쪽 계
         보   풀이름 보
         보家 - 부족,종족이름

        단蠻之호   단만지호

        단만의 굴과 조개

         단<연>   종족이름 단 
         蠻   오랑캐 만
         호   굴조개 호
         단<연>蠻 - 부족의 이름

        爪蛙之후   조와지후

        조와의 원숭이

         蛙   개구리와 

         후   원숭이 후
         爪蛙 - 부족,종족이름

        佛齊之牛   불제지우

        불제의 소들은

         佛齊 - 부족,종족이름

         

        海外雜種   해외잡종

        바다 밖 잡종으로

         

         

        絶黨殊俗   절당수속

        무리도 다르고 풍속도 다른데

         

         

        同유咸育   동유감육

        한 곳에서 함께 자라네

         유   동물을 기르는 동산 유

        古聖遠德   고성원덕

        옛  성왕의  덕화가 멀리 미쳐서

         

         

        百蠻重譯   백만중역

        모든 오랑캐들에게 거듭 알려져서

         

         

        無遠不服   무원불복

        멀리까지 복종하지 않는 곳이 없었네

         

         

        皇哉凞哉   황재희재

        아아, 크고도 빛나도다

         皇   임금 황   밝을 황
         凞   화할 희

         

        大治廣博   대치광박

        큰 다스림은 널리 퍼져

         

         

        遺風邈哉   유풍막재

        남겨진 풍모는 끝이 없어라

         邈    멀 막
         遺風 - 세대에서 남긴 풍속과  교화 

         

        顯宗二年 先生來守是邦 撰篆東海碑 立於汀羅島 爲風浪澈沈 先生聞而改書 今參考兩本 大字用舊本 小字用新本 刻竪于竹串島  時 上之 三五年 乙丑春三月也

        현종 2년 선생이 이 곳에 태수로 와서 동해비를 짓고 써,정라도에 세웠으나 풍랑에 물 속으로 잠기니,선생이 이를 듣고 다시 써주었다. 이제 신,구의 두 가지를 참고하여,"척주동해비"라는 큰 글자는 구본<옛 비석의 탁본을 말하는 듯함>을 사용하고,작은 글자인 비문은 신본을 써서 각하여 죽관도에 세운다.  때는 숙종 35년 을축년 봄 3월이노라

         

        6.  결   론

        전술한 대로 허미수의 전서는  문자학적 정통성 확보라는 면에서 찬반이 뒤섞인다. 하지만 고전(古篆)을 연구하여   이를 체계화하고 책을 펴내 보급하며, 더구나 전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조선에 전서를 인식시키므로서 행서 일변도의 서예계를 다변화시겼다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서예사적 공헌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세인들로부터 괴기하다는 평을 들은 추사나 미수의 글씨.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자산으로 쌓여질 때, 비로서 우리 민족 특유의 대동서예(大同書藝)가 정착될 것이다. 단,민족적 긍지를 살리는데 급급하여, 결점에 대한 비판은 덮어둔 채, 장점만 과대평가하는 것은 학술적 자세로 볼 수 없으며, 결국 민족에게 해가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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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과 외딴 주택에는 방풍설림이 반드시 심어져 있었다. 눈보라가 어찌나 극심하던지....

         

        겨울에도 벌목을 해서 나르는 차들이 보였다.

         

         

        <오겡끼데스까~~>

        의 오타루 고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설국(가와바다 야스나리)의 고장도 더 남쪽이라는데....하물며 더 북쪽이니 어련하랴~

        가도 가도 설원인 곳!! 차라리 강원도라면 산길이라겠는데...북해도 지방은 가도 가도 오지의 들판이 많다.

        오죽하면 처녀림이 존재한다는 북해도!!

        이제는 삿뽀로 동계 올림픽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관강객의 행로가 트이어 눈을 뜨는 북해도!!

        처음에는 너른 설원을 보며 그 곳에 나가 나도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며 구르고 싶었다.

        도야(칼데라호)에서 나와 오타루로 찾아가는 길은  큰 산을 가로질러 가는 듯 했다.

        산위에서 설원을 구경하다가.....앞을 가리듯 쏟아지는 폭설과 눈보라에 바짝 긴장감이 돌았다.

        아마도 북해도에선 이 정도의 눈쯤이야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사진을 찍기위해 앞자리에 앉았던 나는 운전기사분의 안전운행을 하기위해 애쓰는 긴장된 몸짓 하나 하나도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로부터 일본은 천재지변이 많은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축복받은 나라나 진배 없다.

        눈보다는 북풍한설이 더 무서워 보이는 곳!

        외딴 집들은 눈바람을 피하기 위한 방풍설림을 두르고 있었다.

        물론 마을에도 방풍설림이 둘러서 심어져 있고 도로가에는 우리는 흔히 방음용으로 만든 그런 비슷한 구조물이 설원의 바람에 날리는 눈을 도로로 유입되지 못하게 잘 막아주고 있었다.

        지진에 폭설에 태풍에 폭설에...나는  두려운 마음에 애써 긴장감을  감추려  그들의 폭설대비책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이왕 눈이 많은 북해도에 왔으나 삿뽀로의 얼음축제 날자와는 어긋나서  못볼지언정 눈구경이라도 실컷 보게 생겼으니 참으로 운이 좋다고  만족하며 다행으로 여겼다가 점점 공포스런 분위기로 빠져 들었다.

        카메라의 정보를 보니 두시간 반 동안의 눈속을 헤치고 나온 공포의 설원여행이었다.

        2시간 반 동안 긴 산길을 빠져 나오며  눈에 보이는 설경도 갖가지~ 화사하게 눈이 쌓인 곳,

        앞이 보이지 않도록 눈바람이 휘몰아쳐서  길이 보이지 않던 곳....

        인가가 있길래 이젠 다 내려왔나보다 했더니 산 중턱이었던 곳!

        나중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다다러서야 <이제야 다 내려왔나보군>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치 내가 도로시찰단(재해대책) 같았던 느낌이다.

        그제서야 눈때문에 좀 늦겠거니 짐작은 했지만....예약된 식당에서 생각보다 너무 늦어서 걱정된다며  별일 없느냐며 전화가 왔다.

        오타루에 도착한 시간은 2시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북해도 하면 산간오지에 속하는데도 도로에 표지판이라든가....안전 시설물등이 충분해 보입니다.

        좋은 것은 우리도 배우면서 삽시다.

        사진을 찍은 순서대로 올렸으니 자~ 눈 속으로 함께 떠나 보실까요?

         

        글:사진/이요조

         

         

        처음엔 이런 멋진 눈구경만 할 줄 알고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했다. 

         

         

        차에서 잠시 내려 구르고 싶었다.

        오겡끼데스까~

         

         

        음...역시 잘하고 있군!! 

         

        .....

         

         

        그런대로 느낌도 많고 설경을 안전하게 즐기려는데,

         

         

        블랙홀같은 눈보라 속으로 

         

        ... 

         ...

         과연 북해도답군!!!

        ... 

         

        제설차도 다녀갔고, 

         

        .... 

        멋진 산골풍경도, 

         길이 점점 사라졌다.

        어느게 길인지....밭인지.... 

         지나다니는 차들이 없다.

        간혹 침묵을 깨고 마주치는 차량, 

         

         위에 보이는 화살표 방향이

        도로경계선 표식이다.

         

         

        그런 표식이 없다면 구릉으로 빠질 것이다.

         

         

        도로경계선도 흰눈에 덮였다.

         

         

        음 여기엔 선명하게 보이는군!!

         

         

        안전표식판들이 (산골) 얼마나 빼곡한지....

         

        방풍막이다, 눈보라를 막기위한....

         

         

        이크...소형차가 미끄러졌다.

         

         지표면 위로 눈이 얼마나 쌓였나

        알아보는 잣대인가보다.

         

        도로경계선, 보이시지요? 

         

        보이는 건 설원뿐!!

         ....

         

        거 참..눈이 펑펑 내리는데도

        일본사람들은 자기집앞 눈을 치운다.

         

         

        또다시 눈보라가 시작이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닌다. 

         .....

         

         펑펑 내리는 눈 맞으며 눈치우기를....

        존경스럽다. 배려하는 문화가,

         

         

        마을이 보이기에

        산을 다 내려왔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중턱인가보다.

        나중에 내려오고보니...

         

        눈보라의 설원 

        눈보라가 심해서 

        시야확보가 어렵다. 

        기사분도 바짝 긴장!! 

        점점 눈보라는 심해져가고, 

        가시거리를 확보할 수가 없다.

        어둔 밤에 지팡이 짚고 더듬거리며 가는 꼴이다.

        아마도 여기 기사분이라 잘들 하시겠지

        강물 안에도 수심을 나타낼 막대가 꽂혀있고, 

         

        여행중 천재지변으로 지체(체류) 할 때는 여행자 부담이다.

        계약서에 쓰인 글 중에서 눈에 확 뜨이더만.....폭설에 비행기가 안 뜨면?

        여행자 부담으로 기다려야한다.

        <어익후!!....우리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당췌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여행길이 황천길?

         

         

        이 안에까지도 눈이 들어찼으니

        눈보라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또, 안 보이잖어!

         

         

        무섭다!!

         

         

        휴게소

        구경이고....뭐시고.....무서버!! 

        산위에 보이는 건? 

         

        눈사태 대비용이다.

        도로에 눈이 와르르 쏟아질깨비...

         

         

        밖에는 눈!!

        안에는 기사 아저씨 식은땀방울,

         

        햐! 경치가 좋긴 좋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기가 막힌다.

        또 다시 속으로만<오겡끼데스까~~>

         

        만나는 차는 하나도 없다. 

         

        이 차는 오르막에서 돌발 정지

        기사분 내려서 어디론가..도움을 청하러~

        우리가 탄 차 기사분 바짝 긴장,

        저 너머 반대편으로 차가온다면 큰 일이기에....

        조심조심 무사통과~

         

         

        아저씨  중간 하차해서 얼음이 되려는 와이퍼 딱아주기~

         

         흐미....

        순찰은 돌고... 

         

        또 마을이다.

        그러나 아직 산이더라~

         

         .......

        제설차가 보인다. 

         

        얼마나 눈이 많이 쌓이는지

        이 나무들 모습을 보면 아시겠지요?

        물론 눈에도 견뎌내라는 지탱도 되지만....

        엄청 많이 왔을 땐 제설차가 그냥 밀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역시 눈사태용 

         ..... 

        .............. 

         ... 

         

         체인을 감고 가는 장소라고 씌였더군요!

        이젠 거의 다 내려왔나봅니다.

        체인을 감고 워밍업! 산길을 오르려는 차들이 있으니~

         

         

        도로부근 산에는 중간중간

        눈을 받쳐주는 방설책이... 

         ...............

        ........ 

        .......... 

        사진 하나 하나 설명을 하려니 

        그날 그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 

         

        군데군데...

        잘 설치된 안전방지책 덕분에

        아무런 문제 없었습니다.

         

         

        이제 내려가는 길입니다.

         

         

        곧이어 오타루 시내로 진입할

        바다가 가까워지나 봅니다.

        여느여행객들은 기차로 움직이더니만....

        허! 우리 패키지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군요.

        기차를 타고 雪國으로 떠나는 소설~

        기차창가에 기대어 앉아 생각하고 바라보이는 것들..... 

        (몇 살 때 독서였는지는?)

        시작부분이 무척 인상 깊었는데.....다음에,,,또 그런 설국속으로 향하는 

        겨울여행을 꿈 꾸어야겠어요.

         

         

         산을 내려오니  평지 도로는 바로 바다와 연결되더군요.

        바닷가를 끼고 도로를 지나는 풍경인데... 바닷가에 눈이 쌓인 것은 저도 첨 보았지요.

        우리의 울릉도하고 얼마나 흡사한지 착각이 들 정도더군요~ 2편도 기대해 주세요. ( 북해도 바닷가 설경편)

         

         

        "오 겡끼 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잘 지내시나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감동을 전했던 일본영화 '러브레터'기억하시나요?

        '러브레터'의 촬영지, 오타루를 향해 산길로 가면서
        영화속 그런 설원을 만났습니다.
        영화속의 오타루 설산이었는지 그 것까지는 알길이 없습니다만...
        하얀눈으로 덮힌 설원에서 큰 산을 바라보며 그녀가 외치던 말<오겡끼데스까~~>
        메아리가 들려올 것 같지않나요. <와따시와 겡끼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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