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모 카페



글/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작은 네모 안에서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작은 카페에서
이렇게 작은 마음으로도
그렇게 큰마음을
이렇게 주고받는다.



작은 네모 카페엔
작은 네모란 사연이
많은 사람들과 모여
커다란 그물이 되고
작은 네모 카페엔
커다란 동그라미가 인다.



작은 네모 카페엔
작은 소인들이 모여
커다란 거인을 만들고
그렇게 작은 네모 안에
이렇게 작은 내가 있다.

































 











◎ 이름:이요조

2002/9/10(화) 14:32 (MSIE5.0,Windows98;DigExt) 211.227.69.3 1024x768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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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생각난 일


옥상난간에 사는 비둘기들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그 비둘기는 까치처럼.. 왜 집을 지으려 했을까요?

언젠가..칼럼 독자란에선가? 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시몬님은 아빠 비둘기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전..그 당시 아빠 비둘기가 죽었을 때...
저 같으면..사랑하는 처자 앞에서, 그 앞에 가서 죽었을 텐데... 했습니다.

아마도 짐승들은 사후 처리까지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그랬나 봅니다.

그 후, 암비둘기가 얼마나 많은 알을 자주 질펀히 깨트려 놓던지...
청소하기에 혼이 다 났습니다.

아마도 그 비둘기 부부는
궁합이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연이 안 닿았던 모양인 게지요.

모자라면..모자라는 대로 오순도순 살았다면 행복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비둘기는 건물에 더부살이 전세를 들어 살망정
自家를 마련하지 않는 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서 전, 철없는 아빠 비둘기란 오명을 떼어 주기로 하였습니다.

제집마련에 일찌감치 눈 뜬..
누구보다도 처자를 너무나 끔찍이 사랑했던
참으로 갸륵하고도 현명한 아빠였다는 것을....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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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꽃피던 시절



세상에는 행복하고 타고난 복이 있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왜 박복하여 물지게 지고
하루살이 허덕이며 죽지 못해 사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이 세상의 빛을 봐야
했는지, 입술을 깨물며 하늘을 원망하며, 그렇게 자살을 하려했던 청춘의 아픈 추억을
가진 철부지 시절도 있었답니다.


내 처지에 무슨 사랑이고, 내 사정에 무슨 연심이련만, 나는 열여덟 살이라는 나이에
고무신공장의 동료 여공인 이름 모를 청순가련형의 갸름한 얼굴의 소녀를 마음속으로
부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한때 공장에서 쫓겨났던 나는 겨우 공장에 다닐 나이가 되어 다시
일터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잊지 않고 두 손으로 나를 반기며 좋아했지요.
난생 처음 잡아본 이성의 손길인 그 소녀의 손을 나는 꼭 잡고 홀딱홀딱 뛰면서
반갑다는 그 말밖에는 할말이 특별히 생각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자다운 또 다른 일을 찾아 조금 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다른
공장에 금새 취직이 되어 만나자마자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배우지 못한 나는 그저 손만 흔들었고, 소녀는 오랫동안 공장
입구에 서서 서러운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는데, 그 때 그 모습이 그녀를
마지막 보게된 얼굴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을까,
중년의 길목에서 나는 희미한 추억의 그녀를 생각해 봅니다.





삐리리가족, 돈맥경화증 남자



다른 남자들은 중년이 되면 고혈압이다, 당뇨다 하면서 성인병이 걱정이라는데
나는 그런 것은 걱정 없고 돈맥경화증에 걸려 엄청 고생이 심하지요.
도대체가 호주머니에 돈이 돌지 않아 막혔으니 우야몬 좋을까요.

듣자니 가관이요, 보자니 꼴불견이더군요.
『엄마! 제발 부탁이요, 책상 위에 돈 좀 놔두지 마요,
난 돈 필요 없다고요, 돈 많이 주면 자식 버린다 구요』
『남들에게 꿀리지 말고, 돈 좀 갖고 다녀 인석아!』
아들놈과 마누라의 대화는 나의 염장을 질렀지요.

『그 돈 나주라! 이발해야 돼, 고맙데이』 하면서 그 돈을 집어드는 순간
덥석 돈을 낚아채며, 마누라가 홱 하니 빼앗아 가버리는 거 있지요. 완전히 소림사
권법을 방불케 했습니다. 저 사람이 나의 본처 맞나요? 대한의 건아! 하늘같은
남편인 나에게만 인색한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이렇게 구박받는 찬밥 신세랍니다.


이종 조카딸의 결혼식 날이었지요.
마누라가 봉투에 십만 원을 넣어서 부좃돈으로 주더군요.
언제 조카딸이 나에게 인사 한 번 다녀간 일이 있나, 웬 십만 원이래요?

현명한 이 몸이 싹뚝 반을 잘라 인 마이 포켓 했거들랑요. 나중에 그 것이 들통이
나서리 엄청 다투었지요.
아! 돈맥경화증 남자! 불쌍한 이 사람 위로해 주셔요.









나의 이기심

남혼 여가는 어느 종족에나 공통된 삶의 모습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번식 수단으로서 암수의 교접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자연법칙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러한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나의 조상이 살아왔고,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혼인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말이 나돌면서 독신주의에 공감하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혼인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 하는 질문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없다.


아들이 혼인을 하고 싶다고 서둘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 혼처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딸에 대해서는 굳이 결혼을 권하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이 문제만은 본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남자는 혼인을 하면 좋은 것이 많다.
젊음의 욕정을 아름답게 연소하는 기쁨이 있고,
중요한 의식을 제공해 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여자에겐 기쁨에 비하여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많이 변하긴 했지만,)


특히 여자가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는 역할은 끔찍한 일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하면서
남편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성자만이 가능한 고행으로 여겨진다.


혼인은 이러한 길을 여는 의식이므로 아주 엄숙하고 비감한 사건일 수도 있으리라.
小學이란 책에 보면,
婚禮不賀는 人之序也라 는 말이 있는데,
옛 사람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혼인에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서로 건네지 못한 것이 아닐까 ?


어찌되었건,
혼인에서 남녀의 손익계산을 굳이 한다면,
여자의 희생이 더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딸 보다 아들을 선호하는 부모의 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줄 알면서 나는 아들과 혼인 할 규수를 유혹하려 든다.
며느리로서 고행을 감당할 여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가지 않겠다는 딸에겐 자유의 길을 은근히 돕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 자기 모순과 이기심에 푹 빠진 속인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름:이요조

2002 8월 26일













"파란 눈썹을 가진 사람"




고유진동수로 떨리는 피아노음에 공명하는 소리굽쇠처럼,
그렇게 진저리치고 깔깔대는 파란눈썹들을 아시나요?

파란눈썹을 가진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눈썹파란사람은 필사의 구조대가 된다는 거 아시나요?

눈썹파란사람하고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함으로써,
당신눈썹이 차차 파란색으로 되어가는 걸 아시나요?

당신은 눈썹파란사람을 찾았나요?
당신은 파란눈썹을 가진 사람인가요?





********************************************

작은큰통님
이야기에
얼마나 근접한 꼬리글인지
모르겠지만요


전 알아요
그 기쁨, 즐거움이 함께 함을....

그래서 꼬리 잡았지요.

파란 눈썹끼리 서로 만나면
이야기가 많아 진답니다.

방금 만나고 헤어졌는데도
이야기가 늘 넘쳐나요.

그래서
파란 눈썹끼리는

서로의 집 중간쯤...
엉뎅이 붙일 자리 있는 곳이면
자주 만나지요.

혹...눈썹 색깔이 변하진 않았는지...
거울이 없어서
서로를 쳐다보곤 하지요.

파란 눈썹끼리 만나지려면
서로에게 거울처럼
맑아져야해요.

서로의 속을 환히
꿰뚫어 보듯
서로가 투명해진 다음...
서서히 눈썹이 물 들어가요.

파란 눈썹을 만났던 적이 있어요.

전,
두번의 행운을요.

근데...
묘한 것이 닮을려고 서로가
애쓰는 것을 느꼈어요.

눈썹이 파랗듯...그런 동질감이 어디 또 다른 곳은
없을까 하구요.

첫번째...
파란눈썹은 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저 역시 의리처럼 한 오년을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고 살았었지요.

그 파란눈썹은 '다시다'가 들은 잔치국수도
못 먹었어요.
멸치외엔...
저 역시 다시다를 혐오했어요.

두 번 째
파란눈썹을 만났지요.
사랑스러웠지요
그런데...암팡궂었어요.
어울리잖게 닮아가는 것을 느꼈어요.

자장면을 먹어도
라면을 먹어도 고추가루를 쳤어요
그리고 청양고추를 맛있다
호- 호- 불며 먹었어요.

매운거라곤
김치도 잘 못 먹던 내가
풋고추라곤 비릿한 첫 물만 먹던 내가
고추는 약간 매워야 한다며...

청양은 아니더라도
고추만 보면 겁도 없이 손이 가서는
아자작---씹고부터 봐요.

매우면...그냥 삼키고
그래도 매우면 물 마시면 되고
그래도 더 매우면...
서서 몇번 팔짝 팔짝 뛰다 오면 그걸로 끝이예요.

파란눈썹을 만나면
이렇게 닮아 간답니다.

물어 봐야겠어요.
첫째...파란눈썹은 연락이 닿질않지만

둘째 파란눈썹에겐...
넌 나에게 무엇을 닮았니? 라고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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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인연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삶의 획을 그을 만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평생지기일 수도 있고, 학교 은사님일 수도 있고, 또는 어떤 책이 되기도 한다.

나는 고 2때 그런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고2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만 해도 교복세대라서 수학여행이라 해도 교복 아니면 체육복을 입고 가야했다.
전혀 사복이 허용이 안되던 때였다.

하지만 우리 학년은 얼마나 드셌는지 각 반의 반장들이 교장실로 찾아가, 우리 사복입고 가게 않해주면 몽땅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협박과, 공갈과, 애원을 곁드려서 겨우 빨간티에 청바지로 통일하는거로 해서 겨우 사복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획기적인 거였다.
다른학교는 모두 체육복 차림이었으니. 당연히 우리학교 학생들은 인기가 캡이었다.

다른학교에서 수학여행온 남학생들로부터 쪽지가 오고가고 정말이지 한껏 들뜬 수학여행이었다.
설악산행을 마치고, 저녁식사후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우린 경포대 바닷가를 구경을 갈 수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바다를 보며 마냥 즐거워 하는 우리를 웬 노신사분께서 부르셨다.

다가가니, 어디서 왔느냐, 몇학년이냐? 무슨생각을 갖고 공부를 하느냐?
등 보통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질문을 하셨다.

별 관심없는 아이들은 그냥 바다쪽으로 가버렸고, 나와는 꽤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헤어질때, 명함을 한장 주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큰 회사를 경영하는 회장님이셨다.

그때만 해도 그런것이 크게 와 닿는것이 아니라서,편지를 꼭 하라는 말씀과 함께그냥 명함만 받아들었고 그냥 그렇게 오랜시간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 때문에 시작한 편지는 대학졸업때 까지 이어졌다.
내가 안부편지 한장쓰면 그 분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너무 지루한 내용이어서 그냥 건성 읽었는데, 사람이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햔 내용이었던것 같다.

그 인연으로 해서 그 분이 경영하시던 회사에 입사를 하게되었고, 그분 가까이서 일을 배우게 되었다.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배울점이 많았다.
실제로 나와같이 근무하던 비서실장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신다.

수학여행가서 만난 특별한 인연으로 여느 직장과는 아주 다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93세로 아직 생존해 계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골프도 치실만큼 정정하셨는데, 올해는 작년만 못하신것 같다. 안부전화 드리면,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시는것을 보면 정말 정신이 맑은 분이시다.

나에게 많은 본보기를 보여주신분이고, 삶의 지표를 가르쳐 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분과의 특별한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구름국화*


살아있는 동안엔 사랑이 필요하다



들에 핀 작은 풀 한 포기,
집에서 기르는 개나 돼지도 사랑 받기를 원한다.

어렸을 적에 나는 국화를 꺾꽂이 하여 아버지 무덤 아래 언덕오르막에다
줄줄이 심어서 국화 밭을 만들었었다.
초 중등 학교 적 일이니 까마득한 옛일이다

채마 밭 울타리 쪽 그늘에다 모래가 많이 섞인 흙을 퍼다붓고
국화를 한 뼘 반 정도 되게 잘라다 20여대씩 꺾꽂이를 해놓고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들여다보며 그들과 얘기를 나누곤 했다.

"얘들아, 어때? 물은 충분하니?"
"오늘은 어땠어? 낮에 뜨겁진 않았니?"

그러기를 한 닷새쯤 하고 나면 요 녀석들은 어김없이 뿌리를 뻗고
잎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시던 우리 할머니 말씀,
"그것들이 네 정성을 아나 보다. 하나도 죽지않고 다 살았으니"

그런가 하면 돼지에게 밥을 주는 것이 내 몫이라
밥을 주러 가서는 반드시 한마디씩 하였다.
"많이 먹고 빨리 커라!"
지푸라기를 넣어주면서도
"이거 너 고실고실하라고 넣어주는 거야. 좋지?"

그래서 그랬는지 돼지 장사가 늘 하던 말이 있다.
"뭘 맥여 키우간디 요렇게 빨리 큰다요?"
동네 단골로 드나드는 분이라
어느 집 돼지가 얼마나 컸는지를 빤히 알고 있어서 비교가 되나 보았다.

그런 것 말고도 난 모든 사물하고 대화 나누기를 좋아했었다.
지금도 가끔씩 배란다에 있는 식물들과 대화를 하곤 한다.
내가 어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것을 보고,
'생명 있는 것들은 다 사랑 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인간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
특히 가족간의 사랑은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쉬임없이 확인되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사랑 중의 하나이겠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 포근히 잠들어있는 것을 보며 아침 준비를 하러 나가는 아내,
하루의 첫 시각에 가족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남편,
부모님의 따뜻한 미소를 대하는 자녀,
직장에 나가자마자 웃으며 인사해주는 동료들..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사랑을 줄 일이다.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가식으로라도 사랑한다고 말해보자
말은 곧 씨가 되어 싹이 트고 잎이 나서
사랑의 향기를 뿜어내는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우리 오늘은,
가장 많은 사랑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의 하루를 가꾸어 봅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꺼꾸리




첫번째라는 이유로....

시장에 장보러 갔더니
햇옥수수 삶은것을 팔고있었다.
세개나 혹은 네개씩 비닐 봉지에 넣어 파는데
아직 식지않은 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둘러서서 고르고 있길래
그 틈에 끼어들어 나도 하나 골라들었다.
장사꾼 아주머니가 봉지에 넣어주며
- 새댁은 참 빨리도 잘 고르네
그렇게 물건 빨리 고르는 사람이
신랑두 잘 고른데여~ 신랑두 잘 골랐수?-
- 하하~~ 네에~잘 골랐어여~~ -

그렇다.
장삿꾼 아주머니의 말처럼
나는 물건을 참 빨리 고르는 편이다.
어디서 무엇을 사든 이것저것 집었다 놓지 않고
처음 눈에 띈것을 집어드는데 그건
첫눈에 띈것보다 더 좋은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건 물건을 살때에만 국한된게 아니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모든일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건, 어떠한 일이나 어떤 경우에든
첫번째를 중하게 생각하자는 것으로
내 자신과 맺은 굳은 약속같은 것이다.

내 눈에 띈 모든것들,
나를 좋타고 하는 모든 사람들,
그것들 중에 나와 첫번째 만나게되는 인연을
운명처럼 생각하고 받아드린다.
일직감치 매사를 그렇게 정해놓고
모든일에 그런식의 원칙을 세운다.
이럴 때는 이렇케,
저런 경우엔 저렇게,
그렇게 정하고 원칙에 따라 사니 참 편리하다.
결과에 따른 불평도 원망도 있을 수 없다.
또한 그렇게 맺은 인연을 끝까지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것도 변함없다.

그렇게 정해놓고 실행하는데
따로이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가령, 우리집에 남는 방을 세놓을 때
처음 보러온 사람이 맘에 들어 할 땐
그사람에게 주었다.
그 사람이 몇 식구인지, 어디 사람인지
그런것을 따질 필요가 없기에
한번도 물어본적이 없다.
그사람이 내집을 맘에 들어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그사람이 사정이 생겨
내 집을 나가야 할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내집을 필요로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살아 온 지난 세월을 소중하게 생각하고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알게된 친구도
처음으로 마음준 친구를
지금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있다.
통신회사도 처음 알게된 회사와의 인연을
끊치 못하고 있다.
다른 통신회사가 여러모로 따져봐서
내게 더 유리해도 말이다...
이곳 열린마당도 마찬가지다.
중년들의 모임이라해서 선택한유일한 카페이다.
지금도 비슷한 모임에서 초청이 오지만 외면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맺은 숱한 인연들...
사랑, 친구, 집, 가구, 그릇 하나 등등 까지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내게 다가와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것들...
그것들을 끝까지 사랑하련다~~~

2002 . 9. 5. 풍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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