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인문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예천이 용궁이란 전설을 왜 가졌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용트림을 하고 있는 건 분명했습니다.
안동을 위시하여 김천 영천 예천이 유교의 민본사상이 깊은 고장입니다.
그런고로 매너리즘에 사로잡혀서 많은 볼거리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토리텔링을 못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알려보겠다고 다짐을 한 듯 합니다.
인문학 분야의 저명인사들을 활용한 셀럽(celeb)마케팅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인문캠프>를 시작되었습니다.
1회 셀럽은 신문사 언론인 출신 작가로 <칼의 노래 ><자전거여행>등이 제가 즐겨 읽고 독후감을 써 본 그의 글입니다.
그나마 작년? 그의 책 <공터에서>를 사다놓고 절반만 읽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연배지만...제 느낌에는 과거 민족사가 어렵고 진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는 불현 듯 빛을 내는 주옥같은 글귀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이런 <인문캠프> 정보에 어두웠던 제 자신을 실책했습니다.
제가 환호를 지르며 달려 간 2회는 안도현시인님이랍니다.
얼마나 가고싶었으면 1박 2일 집을 비우면서....한 달을 비워도 될 만큼 남편을 위한 반찬을 첩첩히 준비해두고 나왔지요. ㅎ~
실은 김훈씨에 비해 안도현시인님 글은 그다지 접해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안도현씨에게 마구 접근해 볼 계기가 됐습니다.
<너에게 묻는다> 라는 시와 소설<연어>등의 저자 안도현님 을 초청했습니다.
예천시는 또 저희들을 객석으로 초청했습니다.
|
|
7월 6일 우리가 찾은 예천은 때마침 용궁 순대축제로 예천 용궁역앞 장터는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만여 관광객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네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전통시장은 손님맞이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예천시의 내노라하는 용궁순대 잔치가 떡 -벌어졌군요.
용궁이니 용왕님도 어련히 계실까마는....용궁하고 순대는 또 무슨 상관일까요?
전...그건 아직도 잘 몰라요, ㅎ
안도현시인님 글을 먼저 공부해야했습니다.
그 명성이야 두루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정확하게 아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집으로 달려오자...안도현님의 국경을 넘어 셰계적인 우화 Top5 안에 <연어>라는 이 동화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그리고 <갈매기의 꿈>등과 함께 스테디셀러로 그렇게나 유명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백만부나 팔렸다는군요.
안도현시인은 1990년대 '민중시인'으로
소설같은 동화, 동화같은 소설로 은은한 울림을 주며, 세상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눈을 가지신 분
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군요!
저 블로그 역시나 그냥 <이요조` s 나비야 정산가자>에서 <이요조` s 창작실버동화 청산나비>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부끄러웠어요.
동화도 제대로 모르면서 실버동화를 써보겠다고 덤볐으니...
도서관에서 얼른 연어를 찾아 대출해왔지요.
연어의 가장 아름다운 생이...마지막 알을 낳고 삶을 종료하는 순간이라는...그 글이 삶과 죽음, 종족보존!
우리네 인생과 별 다름없다는 것을 잔잔하게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그림도 좋군요, 동양화를 공부하신 한병호 선생님의 그림이 살아있습니다.
안도현시인님은 차분하지만 약간 피곤하신 듯...
(참여하러 한양서 내려오신 분들과 예천관광지를 함께 들러보는 이벤트도 계속하셨다네요)
세상을 예리하게 바라본 통찰력 있는 이야기거리를 내심 기대했건만 저으기 속내를 절제하시는 듯 했습니다.
따끈한 신간이라면서 오신 객석에 계신 운좋은 몇 몇 분들에게 돌아 간 <남방큰돌고래>는 당첨자에게 선물로 돌아갔습니다.
부러움을 받은 신간을 잠깐 빌려 흔들리는 버스에서 몇 컷 찍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곧장 달려간 도서관에서 대출하렸더니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군요.
<연어>의 세계를 확장한 환상적인 돌고래 이야기, 연어보다는 글도 많고 좀 더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열어준다는데 얼른 읽고 싶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문캠프>가 예천용궁역광장 앞에서 열렸는데....
제가 그 날 낮에 가 본 곳!
선몽대가 얼마나 좋은지....이런 장소에서 서로 툭 터놓고 예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격의없는 전정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을가요?
저도 맘껏 질문하고,
쥐꼬리 만큼이라도 더 배워오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ㅎ~~
잠깐 선몽대의 여름경치를 좀 감상하고 가실까요? 너무 좋았어요!
7월 6일 첫째날은 용궁역 앞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대형 스피커 앞에 앉아서 아가씨의 소프라노에 귀가 따가웠고 질문자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바빴고,
화장실에 터져 냄새는 진동했고...장소는 좁고 불편했고...
그래도 꾹 참고 다들 견뎌주고 있었습니다. 음력 유월 초나흘 초승달이 반짝이며 ...저도 귀 기우려 동참했습니다.
<인문캠프>의 즐거운 한때
하늘은 무척이나 쾌청했습니다.
용문사에도 들렀습니다.
용문사의 목어를 찍어 일러스트레이터인 지인님깨 보냈더니 영락없이 똑 같은 그림 그려둔 것을 보내왔군요!
어느 게 실물인지 모를 정도군요.
용문사 절집으로 주차장에서 옆으로 들어갔다가
계단 정중앙부로 내려오니 눈이 부리부리하지만 정겨운 사천왕도 만나고
강아지풀이 꽃보다 더 예쁜 자연과도 만나집니다.
시간만 나면 이곳 절집 아랫길이 더 좋았는데...
시간이 축박해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둘째날 인문학 캠프는 초간정입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초간정에서 나누실 모양입니다.
시낭독과 여기서도 노래가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킬 모양입니다.
초간정1
">/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 조선시대 정자
| |||
의자없이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으라니 영 불편했습니다.
저같은 허리통증환자는 엄두도 못 낼 자세입니다.
.
.
초간정에 얽힌 이야기나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7년전...초간장을 처음 만나고
홀딱 반했지요.
그해 추석날 ...갓 시집 온 며느리를 데리고 고향(창녕) 선산을 돌보고
시가 일가분들께 인사 시키고 예천 초간정에 붙어있는(민박)에서 하루를 묵어갔습니다.
문화재와 붙어있으니, 초간정에서 묵어가는 거나 진배없었습니다.
| |||
-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전20권)을 저술한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고쳐 지었지만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려 1642년(광해군 2)에 후손 권봉의가 다시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정자는 용문면 원류마을 앞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반 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왼쪽 2칸에 온돌방을 만들어 사방으로 문을 달고, 그 외의 부분에는 대청마루를 깔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정자의 현판을 잃고 근심하던 종손이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른 정자 앞 늪을 파보았더니 거기서 현판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Family net > 책 속의 산책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인문캠프(안도현) 얼마나 가고팠으면 (0) | 2019.07.06 |
---|---|
엄마찾아 삼만리 ㅡ영인본 (0) | 2017.10.25 |
김훈의 공터에서...(또 다른 김훈을 느끼다) (0) | 2017.08.24 |
타고르의 기탄잘리 전문(펌글) (0) | 2016.11.09 |
'혼불문학관'을 다녀와서 <혼불>속을 거닐다. (0) | 201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