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해가

해가 진다.

뉘엿뉘엿

 

서산너머

어이 무심한 해는

이 좋은 오월같은 청춘을 내비두고

훌훌 떠나가는 내 젊음처럼...

 

다시는 못 볼

먼-길 떠나는 길손처럼 

아쉬움 그러안은

영흥도에서 그런 해를 만났다.

 

글:사진/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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拓本이  왜 필요한가,,

 

탁본이란,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음각 또는 양각되어있는 글자나 무늬등을 원형그대로 종이에 찍어내는것을 말합니다,또,탑본이라고도 하지요.
 
어릴적 필통뚜껑에 연필로 그대로 그어본 경험,

이것이 탁본의 일종인 건탁법에 해당하는 기법입니다,


프로타쥬(frottage) 기법인데  그 대상물은 비단,,어릴적 필통뿐아니라,

상당히 다양한곳에서부터 오래전 사용해왔음을 알게됩니다,

 

기와·벽돌·고비(古碑)·판비(板碑)·기념 비·문학비·묘비·조종·마애불·날밑·솥 전·도명(刀銘)·벼루· 등이 그 대상이 됩니다,


엄격히 꼭 말한다면,  책으로 장포(裝袍)된 것만 탁본이고

석각의 탁인(拓印)은 탁편(拓片)으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어떻게 부르든,,

우리는 고유적인 사물에 대하여,원초적으로 파고 깍고,기록해놓은것들을,

시간이 흐르면서 뿌리를 찾고 싶어하거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고 싶어하는

바가 있으니. 이에 가장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남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탁본을 손쉽게 예를 들수있습니다,


글자의 점·획 등 미묘한 부분까지 본래 크기로 볼 수 있으므로 고고학이나 비문·종명(鍾名) 등의 문자·문장을 연구하는 금석학(金石學) 분야에 중요한 자료이며 방법이 아닐수 없지요?

 


또한 흰색과 검은색의 단색으로 표현되는 간소한 미(美)는

채탁자(採拓者)가 어떤이가 하는가..

 

또는  먹의 농담,,즉, 먹을 갈아서 拓을 하는가. 아니면,그냥 성의없이 먹물로 하는가에 따라, 그 탁본의  품격을 잴수있겠죠,,

 

날씨 및 그 밖의 조건에 따라 한 장 한 장의 완성된 모습이 다르고,

수(數)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그 원시성이 예술작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될수있다는것은  매우 흥미롭지 않을수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여러곳에 파생되어진 비문이나,유물들을

탁본자가 모두 탁본을 해서  한곳에 집약적으로 전시를 해놓는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감상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여러곳의 역사적 유물들을 한곳에서 감상할수있으며,

더욱 가치가 있는것은,탁본을 해놓은 대상물이

 

천재지변이나,누군가에 인위적으로 파손되거나, 천둥벼락에 소실되었다고 보면,

우리가 해놓은 탁본의 가치는 매우 가치가 있는 자료가 될것입니다,

돈으로 따진다면,,음,,,로또를 맞았다고 할까요?^^

 

탁본이.꼭 비석이나,유물만으로 국한된것은 아닙니다,

 식물의 잎이나 나뭇결·나무껍질의 자연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엽탁(葉拓)도 탁본의 일종입니다,

고대의 비석과 유물들은 그 파손범위가 다양해서 고도의 정밀 사진촬영으로도 그 재현이 불가능하므로  이를 간단히 먹과 종이로 그 기록을 보존할수있는것이기에더욱 가치가 큽니다,

그래서 대학교의 사진학과 학생들은 탁본의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더군요,


중국에서는 원래 6세기말 수나라때부터 이런 탁본이 시작되었다 합니다,

어떤이는
탁본의 유래는 남북양조 시대부터, 또는 후한 시대 종이가 발명된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지요,

문헌사의 기록으로 보아 늦어도 5세기 말엽부터 탁본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탁본은 인쇄의 시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성행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라하니..그 시기는 정확히 구분해보아야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진적(眞蹟)을 지본묵서(紙本墨書)로 복제할 경우

,

농자(籠子;둘레의 윤곽만 베낀 글자)를 떠내어 윤곽 속을 먹으로 칠하는 쌍구전묵(雙鉤塡墨)이 일찍부터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런것을  모본복각(模本復刻)도 활발히 행해졌습니다,

 

둔황[敦煌(돈황)]석굴에서 발견된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온천명(溫泉銘)》 탁본에 영휘(永徽) 4년(653)이라는 묵서가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이 무렵에 탁본기술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탁본을 떠서 책으로 만들었다는이야기입니다,

 

비석에서 직접 떠낸 탁본과 그것을 또 한 차례 돌이나 목판에 새기고 탁본으로 만든 게 있는데, 앞의 것을 원탁(原拓), 뒤의 것을 모본(模本) 또는 모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탁본을 절본(折本)으로 만든 것을 법첩(法帖)이라고 하며, 사실,,

서예가들이 주로 법첩을 보며 공부하는것이.모두 이런 탁본책이 아닐수없습니다,

요즘 법첩들은 예전과 달리  탁본 원본법첩을 또 인쇄하고 또 복사해서,

가의 원본과 틀린 법첩이 많이 나오고 있음을 확인할수있습니다,

서책을 팔아먹기위한 것에만 열중하다보니..그렇겠죠?

.

그러나 실제 탁본이 성행한 것은 금석학(金石學)이 발달하였던 송나라 때부터가 좋은 공부가 될것입니다,

송나라때 편찬된  금석록 30권의 목록서가 전해집니다,

 

 

금석학은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글을 해석하고 연구하여 서체, 문체를 분석하는 학문인데 금석문을 요즘엔 꽤 서예가들이 공부하는것 같습니다,

 

탁본을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처음에는 서체를 익히기 위한 방법으로 쓰였으니.. 전문적인 서예가들이 없어지고 현대서예에
미술적 가치만을 공부하는 요즘 더욱 그 방법이 쇠퇴기에 이르는것이 당연하겠죠,,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것을 탁본하고,우리의 서체나 역사에 대해 바로 인식하는 학문의 기틀을 잡는데 주력했으면 합니다,

 

탁본은 금석학을 연구하는 고고학자, 문학가,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서체를 연구하는 서예가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기술입니다, 다만,요즘에  세워진 비석이나,비문은 모두 기계로 파낸, 컴퓨터 서체로 만드는것이 참으로 안타까운것이.

모두 쉽게 쉽게..비석을 세우는것을,,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비문을 세우는것은 그 사람의 공덕이나,역사적 사실을 미려한 문체로 작성해서,

좋은 서예가의 필체로 서사를 받은후, 그를 그대로 刻하는것이 옳으나,

요즘은,,어찌된일인지.그저,,아무렇게나 파서 세우면 되는것이 되었으니..

개탄할일이 아닐수없습니다,,의미가,없어졌다고 봐야죠,,

 

 서예가들에게는 옛 선현들의 서체(書體)를 오늘에 되살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고, 역사가들에게는 옛 역사를 복원하는 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는데.이런,원천적이유가 없어진다면,,붓을 잡을 이유가 점점 없어진다고 봐야죠^^

 

 과거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역사적 기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마멸되고 사라졌습니다,

 

다만 탁본을 통해 남은 기록들만 과거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며,이는 3천년이지난,,오늘에 와서 밝혀지는,대단한,,,흐름이 아닐수없죠..

 

 만약 금석문을 한 자 한 자 베낀다면 오자(誤字)나 결자(缺字)가 생길 수 있으나 탁본을 하면 이러한 염려는 없습니다,

나아가 아무리 읽기 어려운 금석문이라도 탁본을 하여 놓고 보면 해독하기가 쉽고,

 이런 탁본은 금석문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기술인거죠,,

 

금석학은 인류가 남긴 유물 중에서 새겨진 연대에 의거해서 인류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우리가,나이가 들어 부모의 역사와 조상의 발자취를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우리는기록을 남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학문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너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건 아닌지...^^

우리는,

금석류에 문자나 문양을 새기는 것은 고대로부터 행해져왔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석문 연구는 고고학적 목적과 서체의 연구 등 여러 가지 학문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학자들이나 호사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취미로 하고 있는것은 널리 알려있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탁본을 응용한 기술이 바로 어탁(魚拓)이며,

 

일상생활에서 취미탁본으로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기술인 어탁은 큰 고기를 낚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체를 영원히 기록하는 기술인 거죠,.

이외 어떠한 대상물이든 요철이 뚜렷하면 채탁이 가능합니다,

 

  탁본이 성행하게 되고 지금까지 적게나마 문헌으로 남아 맥을 유지하게 된 것은 수많은 금석학자와 서예가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수없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금석문 보존을 위해 우리 모두 애써야 할 것이며, 현재 자신이 위치한,,고향이나,주변에 보존되고 있지않은 유물들을 탁본해놓는것은 후대에게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아닐수없습니다, 꼭,,,사진 찍어야만,,판독이 되는건 아니죠^^

 

탁본을 이야기하자면 중국을 논하지 않을 수 없기에 잠시 중화문화를 살펴봅니다,

간단히 기술하자면,

중국은 은시대부터 갑골문자와 종정문(鐘鼎文)이 불완전한 문자부호로 사용되었고

서주시대에 종정문자가 진시황의 천하통일 후 급격한 대전(大篆)문자로 발전했으며,

 한 대의 예(隸), 위, 진, 남북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문자가 단순한 부호가 아닌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갑골문자나 종정문의 탁본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마멸되고 사라졌가

 간간이 적은 양이 출토 되어 육안으로 분간키 어려운 것은 탁본으로 판독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남해 금산의 거북바위의 상형문자는 가까운 나라들의 상형문자나 갑골문자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은것을 알수있습니다,

 

 이들은 자형의 동일성과 거북바위라는 점, 거북등에 새겨진 문자의 배치성을 주목할 만합니다,

 

 어쩌면 쉽게 판독될 것 도 같은 거북바위의 문자는 회화성 또한 배제할 수 없고 전설과도 무관하지 않은 점을 생각할 때

 

한층 문자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중국의 문화는 크게 북방문화와 남방문화로 나눌 수 있으며,

옛날 중국 북쪽의 종이는 무늬가 옆으로 들어 있는데다 바탕이 두껍고 거칠어 먹이 잘 받지 않았답니다,,

먹은 송연먹을 많이 썼는데  소나무 그으름을 이용한 먹이지요, 가능하면,,탁본을 할때 갈아서 하시는게 좋습니다,

갈아서 탁본을 하게되면,

그 빛 또한 푸르고 엷으며,작품성도 있으니 일석2조죠^^

 

금석에 칠할 때 유납(油蠟)을 섞지 않기 때문에 북탑(北榻)은 빛이 엷고 무늬와 주름이 있어 마치 엷은 구름이 청천에 흐르는 것 같아 협사(夾紗)라든가 선시탑(蟬翅榻)이라고 불립니다,또는 협사탁,선시탁,오금탁이라는 말은,탁본 빛깔의 차이로 인해 생겨난 말입니다, 선시탁법은 일본에서 잘 사용하고 우리나라는 자주 사용치 않습니다,

 

그중에 오금탁이라는 말은, 까마귀 烏 字를 써서  문자외에  종이면을 새까맣게 채탁하는 방법입니다,이때 전체 색깔이 동일하게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선시탁이란,蟬 (매미선)字를 써서 매미의 날개와 같다고 합니다,

둘다 장단점이있지만, 선시탁은 반대로 문자의 주변이나 글자만, 엷게 먹색으로 탁본하는 방법이니. 감상 가치는 선시탁이 더 좋와서, 많이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그외.인주탁(印朱拓)....색탁, 집자법 등은,모두 물감의 원료나 다른 방법의 탁본일종입니다,

 

 

반면에 남쪽의 종이는 무늬가 세로로 들어 있고 먹은 유연을 쓰며 납과 오금지를 섞어 물에 두들겨서 비문에 바릅니다,

 그러므로 빛은 순흑이며 광택이 있어 오금탁(烏金拓)이라 불렸다고 하는군요

 

요즈음은 학문을 하는 이나 서예가들은 많으나 금석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는 적습니다,중국의것이기는 하지만,,중국것을 알아야,,우리것도 하지요,,^^

 

 사람이 글씨를 배우자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이 여럿 있습니다,

 

자체(字體)와 형세 전측(轉側) 결구(結構)를 연구하되,우리는 그당시 선인들이

남겨놓은 수백년시대동안 내려온 필사를 직접 온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은,,매우 조심스럽지 않을수없습니다,,경건한 마음이죠^^

 

참다운 고법(古法)이 가진 서에의 맛과 멋을 추구하려면

비(古碑)와 탁본을 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뜨거운 물인가 찬 물인가는 마셔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라는 옛 스님의 말씀은 이를 두고 이르신 것같습니다,

 

오래전 발견된

울진 봉평신라비,

영일냉수리비,

야고비는 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며 하루속히 완독되어 새로운 기록으로 역사에 올려지길 바라마지 않지요? 제대로 완독되길,,바랍니다,

 

저 유명한 광개토대왕비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영원히 빛낼 유산이다!!라고 말하지만,,,,내곁에있야,,내거죠,,

일본녀석들,,등살에..못살겠습니다,,

 

 중국은 예부터 탁본을 중요시하여 탁본한 것을 금과 맞바꾸었다고 할 만큼 귀중하게 취급하였답니다,,

여하튼,,이제 탁본의 중요성을 알았으니..탁본방법이나 말해보죠^^

탁본에는,

 

건탁(乾拓)과 습탁(濕拓)이 있습니다,

앞서말했듯이.

동전이나 메달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심을 비스듬히 뉘어 문지르는 방법으로, 원물 위에 종이를 대고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누른 뒤 탁본먹으로 구석구석 남김없이 문지르면 높은 곳은 짙게, 낮은 곳은 묽게 찍힙니다,

 

이것이 건탁이며,

 

습탁은,

소품이나 섬세한 무늬가 있는 것, 또는 적실 수 없는 목각작품 등에 주로 쓰입니다,

 

원물 표면에 댄 종이를 위에서부터 물을 발라 붙이고,
먹이 묻은 탐폰(가죽이나 헝겁으로 싼 솜방망이)으로 두들겨 모사하는 방법입니다,


(탐폰 만든것, 예시)

 


1.탁본의 순서
 ① 원물의 치수를 재고, 진흙이나 먼지를 털어낸다. 다만, 이끼 등은 되도록 그대로 두고 현상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② 화선지를  탁본할곳의 크기보다 조금 크게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비면에 대어 솔로 물을 바르거나 분무기로 골고루 적십니다,분무기가 없으면,

솔에다가 물을 묻혀서 문지르세요,,

 



그리고 물을 묻히기전에

 

네 모퉁이를 셀로판 테이프로 가볍게 붙여 놓으면 일하기 편합니다,

다만,유적지마다,, 테이프 등 점착제 사용을 금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테이프쪽은 물을 묻히지 마세요,,떨어집니다,,(조심조심)

 


 ③ 비면과 종이 사이에 생긴 기포를 문자 속이나 비면 밖으로 밀어내어 종이를 비면에 밀착시킵니다,즉, 물을 묻히고 난후 다시 화선지를 손으로 들어서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정확히 뗬다가 다시 붙히는겁니다,

 여기에는 나사(羅紗)나 적신 타월을 단단하게 말아서 사용할수있는데요,

수건이 제일입니다 꾹꾹 눌러주세요,


 ④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마른 헝겁을 비문 전체에 감싸 덮는겁니다,


그리고,  옷솔로 직각으로 두드립니다,그이유는 비문의 양각이나 음각의 홈에

화선지가 확실하게 세세히 붙어버리도록 하는거죠, 다다다다다,,,이때가 제일 신나지만,

팔이 아플겁니다,,그래도 천천히 세밀하게 홈을 두들겨주세요

 

 

 


⑤ 종이에 어느 정도 습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되면, 탐폰으로 채탁합니다,

 


위의 비문은 성종대왕 어필본을  채탁하는과정인데

위부분에 조금 하얗게보이는 부분이있을겁니다,적당히 말랐다는거죠^^

 

이제 드디어 탁본이 시작되는겁니다,

 



탐폰은 2개를 가지고 한쪽 탐폰에 먹을 묻히고 다른 1개와 맞비벼 먹물을 알맞게 조절하며,

남은 종이로 농도가 확인되면 재빠르게 지면 전체를 두들겨 나가는데.

보통 초보자들이 실수하는건 먹물을 너무 많이 찍는다는겁니다,,아주 엷게 시작해보세요, 찻잎이 권장하는 방법 키포인트,, 아주 부드럽게 두드린다^^

 

 

 

처음에는 엷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두들겨 먹의 농도를 고르게 합니다,

 한참을 고르게 두드리는데.

중요한것은 비석의 원몬 크기대로 모두 탁본을 하시기 바랍니다,

글씨만 나왔다고 그냥 멈추는분이있거든요,

원본의 크기가 중요합니다, 비문의 원본 크기를 알수있도록 모두  채탁을 하시기 바래요


 ⑥ 이제 모두 두드렸고,완벽히 끝났다고 생각하면,

조심스럽게 뗘내세요,,

 


 


2)준비물


⑴ 종이:건탁에는 반수(礬水)처리를 한 얇은 미농지가 좋고,

습탁에는 일반적으로 화선지를 사용한다.

 중국산 화선지는 풀기가 있어서 탁본에 가장 알맞은데.요즘은 탁본지가 나온다는군요,

 


⑵ 먹:건탁의 경우 탁본묵[石花墨(석화묵)]으로 문지른다.

 

습탁에는 유묵(油墨)을 사용한다.

한 두 장 떠낼 정도면 품질이 좋은 먹을 짙게 발라 사용합니다,,아끼지 마세요^^

 

 전문가는 식물성기름과 매분가루를 끓여, 여기에 잘게 썬 낡은 솜을 섞어 갠 묵육(墨肉)을 사용하는데. 백납이라는 한약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구하기는 어렵죠^^

 

 먹즙은 얼룩을 만들고 물이 닿으면 번지므로 탁본에 부적당합니다,

일반 시중에서 파는 먹물,,가능하면 쓰지 마세요,,


⑶ 탐폰(tampon):솜을 헝겊으로 싼 것으로 먹을 묻혀 지면을 두드리는 데 쓰입니다,

맨앞에.사진 올려놓았습니다,

 

 헝겊은 풀기 없는 견직물이나 홍견(紅絹)이 발이 가는 화학섬유가 좋습니다,세밀하게 찍히거든요,

 

 또한 삼베 같은 거친 헝겊을 써서 특수한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속에는  좁쌀이나,쌀을 이용하기도 합니다,저는 좁쌀을 주로 씁니다,

솜은 금방 뭉그러지거든요,

 

 밑동쪽에 동그랗게 자른 두꺼운 종이를 얹고,

헝겊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조여당겨 끈으로 밑동을 단단히 맵니다, 테이프도 좋와요,

 

 별도로 솜이나 헝겊을 막대처럼 만든 것을 손잡이로 해서, 조여맨 중앙부에 붙인다.

 

손잡이는 쥐기에 알맞은 길이로 만든다. 탐폰은 대(지름 7.8㎝) 2개, 중(지름 5㎝) 1개. 소(지름 2㎝) 1개를 준비한다. 큰 면은 큰 탐폰을 사용하고 가는 윤곽은 작은 탐폰으로 두들긴다.

 

★주의: 탐폰을 만들때는,탁본을 하고자하는 대상물에 따라 크기를 정합니다,

아주 세밀한것은 아주 작게 만들어야하기 떄문이죠,

 


⑷ 기타:솔은 털발이 길고 부드러운 것을 선택합니다, 손잡이 달린 옷솔이 최고입니다

 

 두들기는 솔은 털발이 짧은 것으로 양복 브러시 등으로 대용할 수 있다.

 

 습탁에는 물이 필요하므로 물통을 반드시 준비합니다,

 

★ 2인 1조 3인1조로 함께 탁본조를 짜서, 함께 떠나시면,,

각각 준비물을 분담하세요, 물통과 분무기.탐폰준비, 벼루준비.붓준비.

등등,,

 

 

☆간탁(刊拓)의 시기
탁본의 간탁(刊拓)에 알맞는 기후는 봄, 가을로

 청명(양력 4월5일)후와 하지(6월 21일) 전,

추분(9월 22일) 후,

 입동(11월 7일)이 적시라 합니다,

사찰에서는  목판경의 인출을  이시기에 좋다하니.. 이때가

판본을 상하지 않게 채탁하는 시기이며,여름이나 겨울에는, 판본이 얼거나,불어터져서

쉽게 원본이 상하는경우입니다,

여름철의 직사광선을 피하는것이 좋고,겨울이나,비오는날을 피해하는것이 당연하겠죠ㅡ,

바람도 적은 날이 좋습니다,,(좋은날,,택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이 좋와요^^

 

이때가 인사(印寫)함에 판본과 돌이 잘 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먹도 갈아 쓰기에 좋고 일하기도 가장 좋기 때문이다

 

 

★ 정말 주의사항 한가지..

 

비문과 문화재는 모두 허가를 받아서 탁본하는것이 원칙입니다,,

꼭  당국(?)의 허기를 득하셔서 하시기 바랍니다,,

간첩으로 오인되면 큰일이지요^^

 

★각종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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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대교 아래를 내다보면 서해라는 걸 잊게된다.

마치 남해에 와 있는 착각마저 든다.

출렁이는 깊은 바다,

웅장한 다리.... 누가 서해안에 이리도 웅장한 다리가 존재하는지 알까?

물론 서해안고속도로에 서해대교도 훌륭했지만...내 기억으론...개펄이 보였던 것 같기도...

인천공항가는 영종대교와 착각을 하고있는 걸까? 내가 지금?

영종대교 아래에도 분명 드넓은 개펄밭이었다.

아무튼...그런 착각을 없애기 위해 나는 부지런히 내 눈으로 담고 찍고 나만의

추억이 담긴 여행 자료로 마련하고저...

이...다리를 건느면 수산물직판장이 나온다.

우측으로....들어가면, 나는 이 곳에서 그가 좋아하는 개불을 산다.

싱싱한 개불이 (잘라도 꿈틀 거리는) 채 사그라들기 전에....한 군데 해수욕장에 돗자릴 펴면

회맛이 참으로 쥑여준단다./참고로 마눌은 못먹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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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여행.....긴 감흥,

 

 

불면증에 시달리다

전날 밤도 하얗게 밝히고
아시아나 5월 28일

여수 오전 9:00발 비행기

혹시나 늦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자두어야한다.

집을 며칠 비워야하는

주부로써 집안 일

마무리도 적지않다.

겨우 반찬 한가지 해놓고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나머지는 해야지

생각했다.

전날 밤을 밝힌 탓인지 
피곤해서 잠자리에

일찍(자정너머)들었다.

 

아들에게 내 핸폰에다 모닝콜
입력을 부탁을 했다.

이튿날 아침, 잘 자고 일어났는데...

으악~~

모닝콜은??
주말설정을 아마도

깜빡 잊었던 모양이다.

큰일났다.

겨우 고양이 세수만 얼른하고

내달렸다.
칫솔도 혈압약도 기침약도

다 둔채, 내달렸다.

공항에 도착하니 10분 남았다. 
난생 처음

화장실에서

정말 재빠른 화장을 했다.

 

비행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한지

40분만에 정확하게

여수에 착륙했다.

어쩌나

지금은

이럭저럭 10시래도
결혼식은 12시 30분인데...

동안 난 어디서 무얼하지?

일단 택시를 타고

시청부근을

(예식장을 찾아)

얼쩡이는데
소호 요트장 이정표가 보인다.

아! 바다다

택시 기사에게

그 곳으로 가달라고 했다.

 

오! 이런~ 기억이 되살아 난다.

2003년 가을에 와 봤던 장소다.

블로그 글을 뒤져보니.....

(내, 기억력의 한계)

 

녹슬은 요트 선착장엔

지칭개가

보라빛 고개를

쭈욱 뻗고 있었다.

해조음 보다

바다 모습이 더 그리웠던 게지

 

그날은

참, 달밝은 밤이었다.

가로수 붉은 유도화꽃에 홀려 

바닷길을 마냥 걸어 걸어서

당도한 곳

 

밤바다 바람은 뜨쎄고

우리는 바람막이로

옹송그려 둘러앉아서

이야기 꽃에

소줏잔을 기울이던 곳!

 

하얀 달빛에

눈이 부신 아스팔트

바닥길을 따라 걷다가

'뫼르소 '가

태양빛에 살의를 가지듯

나는 달빛에

그만

꽃나무 큰 가지를

분지르고 말았던....

달빛에

희디 희게 번져나던

목서꽃...그 ...향기...

꽃내음 바스라지던,

바로 그 곳,

그제나 이제나

여수 바다는

너무나 잔잔했다.

한 점, 일렁임도 없는

면경(面鏡)처럼

 

부산에서 출발한

친구들은

지금 어디쯤 

오고있을까?

전화를 했더니

"어, 종인엄마, 보이네~~"

이내 내 앞에는

승합차 한 대가

다가와 서고

 

우리는

우연치고는

낯 선 여수 바닷가에서

기가 막힌

조우를 했다.

 

그 날 밤

여기서 술잔을 기우렸던 

친구들 역시

소호 요트장으로

갔더란다.

세상에나~

우예, 이런 일이~~

모두들 이름도 몰랐는데..

어떻게

약속이나 한 듯이~

 

부산에서

세시간 만에

도착했단다.

흐~

얼마나 밟았으면....

 

친구의 딸

결혼식에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주로 부산 경남이지만) 

 

예식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한 차에 탑승했다.

승합차외에 승용차가

한 대 더,어차피

목적지가 부산이니

고성으로 향했다.

 

친구중에 낚시를

워낙에 좋아하여

퇴직한 연후에 

고성에다 별채를

하나 마련하여

소일꺼리를 삼는

친구가 있었으니

우린 고성으로 향했다.

 

어차피 바닷가에 온 이상

자연산 회를

배 부르게 먹고

부산으로~~출발

렌트했다는 승합차를

돌려주고 어쩌고

차 한 잔 마시고

부산

친정에 도착

밤 열시다.

 

여행길이란

낯 선 사람과

낯 선 풍광과

낯 선 길을 만남이 좋다.

 

고성 횟집에서

나는

아주마음에 닿는

아담한 풍란

한 촉을 만났다.

별로

요란스럽지도 않은

바위에

오래된 이끼가

풍란을

꽃 피운

그 둘만의

교감을...살짝 엿보고

.

 

 집에 돌아와서

지난 글들을 뒤져서

여수

일출 이미지를

찾아내다.

여수 엘지정유

사택에서

바라본

일출전경

협죽도(유도화)

붉은

가로수 거리가

이국적인

가을을 만들던

여수

그 바닷가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사진/이요조


 

  

병문안(토평, 한강둔치 소개에 여행photo로 옮깁니다.)


  5월26일 오후 토평지구 한강둔치
 
 
 
 
 
 
 
 
 
 
 
 
 
 
 
병문안을 갔습니다.
청주까지, 마침내 벼루기만 하던 출정을...
 
캔디를 너무 좋아해서 이참에 각국 사탕 맛도 보라고...
국제적인 사탕을 사 모아 모아서,
 



 
 
 
예전에 그런 CF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아파서 머리를 밀어버리자
함께 그 아픔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친구들이
하나 둘...
나중에는 모두 머리를 깎는,
(물론 남학생들이니 가능하겠지요)
 
병원비에
카드 사인을 하는데,
오른쪽 팔을 못쓰니..싸인이 안된다 그럽니다.
밥도 왼술로 뜹니다.
 
해서 우리 모두다 이참에
왼손으로 돌아가며 제 이름 석자를
낑낑대며 써 봅니다.
친구의 심경에 좀이라도 근접해 보고자...
 
5월 1일 교회를 가다가
부부가 함께 다쳤는데...
의외로 중환자실에 있던 반쪽은
조짐이 좋아 먼저 퇴원했다 그럽니다.
 
우씨...
너무 늦게 왔나?
꽃바구니도 두 개를 마련한 우리들은
머쓱해졌습니다.
 
내일, 아니 그러니까
오늘이군요.
본인도 퇴원한다 그럽니다.
 
우리들이 마지막 손님으로 피리어드를 학실하게 찍었습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우리는 토평 한강둔치
5 만평에 뿌려진 유채밭에서
소녀들처럼 꽃밭에 파묻혀서 얼굴만 내어놓고
눈을 들어 하늘로 시선을 모은 채 
사진도 멋드러지게 찍고 깔깔대다 왔습니다.
 
그 속으로 코스모스가 자라오르더군요.
인터넷 이미지로 보고는
거그가 어딘가 했었는데...
이제 바로 알았습니다.
 
유채밭 지름길도 너무 잘 알구요.
주차장도 가장 근접한 곳을 잘 알던 구신
박태완이가 운전을 했는데요
남자냐구요?
 
어머, 무슨 그런 말씀을....
운전 하나는 남자보다 더 나은
여장부!
 
거의 15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장돌뱅이 운전? 을 한
내 젊은 시절이 연상되는,
듬직한 동상~
 
코스모스
어우러지는 한강둔치(토평)
에서 가을에 다시 보자구요~~
우리~
 
 
 
이요조
 
 

유채밭이 너무 예뻐 제 블로그 타이틀 배너로 만들었습니다.

새로고침
아바타 꾸미기

 

 

▲구리 토평동=구리시 토평동 한강둔치는 국내 최대의 코스모스밭. 구리시가 1990년대 말부터 조성한 코스모스밭이 5만평이나 돼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해마다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찾는 이들이 늘자 이제는 가을이면 코스모스축제를 열 정도다. 9월 하순경이면 코스모스 축제를 연다. 축제기간에 맞춰 파종을 해, 20일이 넘으면 만개한 코스모스를 볼 수 있다. 개막식과 인기가수들의 축하무대, 불꽃놀이, 중국기예단의 서커스 공연을 비롯해 코스모스 꽃길 걷기대회와 그림그리기 대회 등이 열리고, 일반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코스모스와 함께 쑥부쟁이, 칸나, 맨드라미 등의 화초도 같이 심어 꽃밭을 조성했다.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워커힐을 지나 4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3거리에서 양평·토평IC 방향으로 우회전해 제방도로를 타고 1.5㎞ 가면 한강 자연학습장이 나온다. 대중교통은 청량리에서 165, 166, 330번 버스를 타고 교문4거리에서 하차해 1-1, 9-1번 마을버스를 타고 백교마을에서 내려 한강둔치까지 걸어야 한다.

 

.

자월도/사진:이요조

 

 

 


 

 

대부도에서 배를 타고 자월도를 함께 가실 분!  하고는 5월 중순경에 제가 날짜를 정한다 하고는 이리 늦었습니다.

 

부산(친정쪽 혼사) 다녀와서 감기몸살로 아직도 몸이 쾌찮습니다.

자월도 쑥이 유명하다고 하여 하지 전에 가능하면  단오 전에 쑥을 채취하는 게 좋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아직 건강이 좋지 못하여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안내만 우선 해드립니다.

 

이번 주말에는 또 여수로 가야할 일이 미리 정해져 있기에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대부도에 가시면 자월도 뿐만 아니라....승봉도, 덕적도  대,소이작도 등등 더 좋은 섬으로 여행하실 수가 있습니다.

 

먼저 아래 민박집으로 전화를 하시면 차가 나와 있을 것입니다.(자월도에는 차가 없음/자차를 가지고 들어 갈 경우 차, 운송 배삯 첨가)

자월도에 대해서 더 상세히 알고 싶으시면 아래를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월도 현화민박

☏032-831-4145

hp/김 춘자/010-8720-4145

제 이름을 대면 아니지요  그냥 컴퓨터에서 글보고 왔다고 만 하셔도 아마 잘 해주실 겝니다.

 

 

자월도를 더 상세히 알고 싶으시면 제 글에서 좌측 검색에 자월도를 넣으시면 됩니다.

그 것만으로도 다 나온 게 아닙니다.

 

지난 글들 검색에서 2004년 8월서 9월까지....더 많은 글들이 나오네요. 자월도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군요.

우리가족은 물론 멀리 부산에 사는 언니 형부까지도 끌어들여서요.

 

제가 글 주소를 일일이 옮겨와서 클릭만 하시게 하면 좋을 텐데 요즘 제 컴텨의 이상으로 포멧을 하기 전에는 제 글에서도 자꾸만 추방당한답니다.(잦은 다운으로 지난 글들을 잘 볼 수가 없군요)

그 사진을 보면 현화네 가족도 볼 수가 있답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기를.....

약속은 드릴 수 없지만 여름이 다가오면 저도 물론 가야지요~~

아래 대부해운을 클릭 하시면 선박정보를 한 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엔 차를 두고 가실 경우 주차비는 무료입니다.

모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라면서...

 

 

 

이요조

사진은 시화방조제(약 12km)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은 시화방조제 끄트머리에(우편)있습니다.

전기밥솥을 하나 사도 설명서가 더욱 어렵듯이...지도가 굉장히 어렵게 보이네요.

월곳ic만 나오시면 이정표 다 보입니다.

행여 길을 잘못 들었어도 서울길이 아니니 좌회전도 유턴도....모든 것이 수월합니다.

여행은 스트레스받자고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무려 12km가 되는 시화방조제를 달려보는 것만도 가슴이 탁 트일 일이 아닐까요?

시화방조제 중간에 가족들과 함께 할 멋진 공원도 있고요

또는 방조제 중간, 오이도 선착장이나...끄트머리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간단한 횟감도 드실 수 있으며 대부도의 조개칼국수....대부도를 가로지르면 선재도 영흥도를 육지처럼.,...

다리만 건느면 통과할 수 있는 여행길이 된답니다.

 

그리고 일일여행이시라면 굳이 자월도(일박)를 가시는 것 보다 각자의 매력을 가진 섬들, 승봉도나 덕적도는 배편이 자주 있으므로 배를(카페리)타시고 섬여행을 하룻만에도 즐기실 수가 있습니다.(대부해운에 전화로 알아보시면 됨/계절따라 증편이 수시로 바뀜)

여름철이 다가오면 자월도도 증편이 되어서 하룻만에 다녀 올 수가 있습니다.

 


 

 

1항차
자월도출발  11:30
자월도도착   12:10
나오실때  12:20
대부도도착 13:20
 
 2항차
자월도출발   16:00
자월도도착   16:30
나오실때  16:40
대부도도착 17:40
 
 
대부해운
  http://www.daebuhw.com/subp_2.htm#111
 
  
 편도/6,500원

 

==================================================================================

 

 서울인천방향: 대부도진입방법A
 월곶 I.C 에서 시화공단 방향(2차선으로 신호등3번) - 시화방조제(대부도) - 상동
      - 대부출장소 - 수협3거리 - 안산교회 - 대남초등학교 - 고랫부리    
 ※ 월곶 I.C 에서 나와서(지도참조) 시화방조제(대부도)까지는 계속 직진 방향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수원) 방향: 대부도진입방법B
 서해안 고속도로 - 비봉ic - 남양 - 사강 - 탄도 - 선감도 - 대부도
     - 대동초교- 대부도출장소(수협3거리) - 대남초등학교 - 고랫부리


     

   ※ 영흥도,선제도 방면으로 약 3Km 가다보면 첫 번째 신호등이 나옵니다. 거기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서
    대부상동(마을)로 진입, 수협3거리에서 영흥도,말부흥 방면으로 가다보면 SK주유소가 나옵니다.
     SK주유소에서 직진 500M 가다보면 삼거리에 바다향기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정표를 따라 오세요
     곳곳에 있는 바다향기 이정표를 따라오세요. 대부도 약도 참조

   ※ 대부도 약도를 프린트해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중교통 육상(직행버스)
버스운행문의 : 032-883-5175/
886-1603 /883-5111~3/
(태화상운 대부대표:032-883-5175)
대부택시조합 : 032-886-8883
인천(주안/만수동) ↔ 대부도(탄도,불도,상동,방아머리)

* 대중교통을 이용 하셔서 대부도에 오실려면 일단 안산역(4호선)까지 오셔서 대부도행 123번 이용

 대중교통 서울에서 오실경우
안산역(4호선) 건너편(지하로이용)에서 1일 10회 운행되는 대부도행 버스 123번을 타시고 상동(대부도)까지
오시면 됩니다. 안산역에서 상동까지 소요시간은 약 40분입니다.
상동까지 오시면 저희가 픽업하겠습니다. 사전에 인원을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안산역 또는 대부도 상동에서 택시로 오실경우 대부도 상동를 거쳐서 고랫부리 해변으로 오시면
됩니다.


※ 안산 시내버스(123번 버스) ↔ 대부도( 방아머리/상동/탄도/불도 )
123번 시내버스 노선 및 각지역 통과 시간.

안산출발

 

대부출발

출발

본오동(안산)

시화동보APT

방아머리

상동

출발

대부(탄도)

대부(상동)

시화동보APT

1

06:30

06:50

 

 

1

06:00

06:10

 

2

07:30

07:50

 

 

2

08:00

08:10

 

3

09:30

09:50

 

 

3

09:00

09:10

 

4

11:00

11:20

 

 

4

11:00

11:10

 

5

12:30

12:50

 

 

5

12:30

12:40

 

6

14:00

14:20

 

 

6

14:00

14:10

 

7

15:30

15:50

 

 

7

15:30

15:40

 

8

17:00

17:20

 

 

8

17:00

17:10

 

9

18:50

19:10

 

 

9

18:50

19:00

 

10

20:20

20:40

 

 

10

20:20

20:30

 

 요금: 안산<-> 시화구간 : 600원 / 안산<->대부 : 1500원/ 시화(시흥)<->대부:1200원
 주요노선: 안산 본오동→상록수역→한대역→고잔 신도시→ 스타프라자→ 시청→ 라성→ 안산역→ 시화이마트→
시화동보A→  대부도 (방아머리→ 북8통→ 상동→ 동4통(대동초등)→ 선감18통→ 탄도):상동에서 내리신다음 전화를 주시면 픽업 바다향기(고랫부리해변)로 이동  
버스운행사(태화상운): 032) 883-5111 ~ 3 / 032-886-0906

 대중교통 인천에서 오실경우

구분
회차
인천
시화
방아머리(대부
상동
 
  1 06:30 07:20        
  2 09:00 09:50        
  3 11:20 12:10        
  4 13:50 14:40        
  5 16:10 17:00        
  6 18:30 19:20        

인천발 주안, 만수동 경우(인천발 시간에는 주안 7~8분/만수동 20~25분 후)
출발장소 : 인천발[구)인천버스 터미널(용현동)]->주안사거리->만수동 하이웨이 주요소 맞은편
->서해안고속도로->월곶 ->시화동보아파트 -> 대부도(방아머리/상동)(1시간30소요))


 경기도 화성시 사강터미널 (수원,금정역 <->사강 )
사강  ↔  대부도 ( 탄도,불도,상동,대남초등 )(717번)
사강에 내리신 다음 대부도 상동까지 버스를 타고 오시면 됩니다.

대남초등출발   =>

대부(상동발)

사강발

사강에서 연계추가 버스

08:35

09:00

10:00

 

11:00

11:20

12:20

 

 

13:10

14:10

 

 

15:10

16:10

 

 

17:10

18:10

 

수원에서 직행버스 이용
 수원버스터미널~사강~서신행(종점) 
 좌석버스(1시간20 소요)5~10분 간격,1일86회 운행,( 택시이용자는 사강 다음 서신 버스종점에서 택시이용)

전철(금정역)에서 직행버스 이용 사강에서 하차(1시간정도 소요)20분 간격 운행(금정역 앞에서 출발),( 택시이용자는 사강 다음 서신 버스종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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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검색(대웅전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찍은 듯)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쌍계사(雙溪寺)라 하다가 애장왕(800~809재위)이 다녀간 후 장안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인조 16년(1638) 태의선사가 중건하였으며, 효종 5년(1654) 원정, 학능 충묵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大雄殿),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다.
대웅전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7호로 지정되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신라
창건자  원효대사
소재지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본문
불광산(659m) 자락에 있는 고찰로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673년(신라 문무왕 13)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탄 것을 1631년(인조 8) 의월대사가 중창하고, 1638년(인조 16) 태의대사가 중건하였다. 1654년(효종 5) 원정·학능·충묵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48년에는 각현이 대웅전과 부속 건물을 중수했으며 1987년 종각을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 대웅전(부산기념물 37)·명부전·응진전·산신각과 석가의 진신사리 7과를 모신 3층석탑이 있다. 입구에는 5기의 부도가 있고 법당 앞에는 가지들이 엉켜 올라가는 모습을 한 높이 2.5m의 단풍나무가 서 있다.

사찰 뒤쪽에는 원효대사가 수도중에 중국 중난산 운제사의 대웅전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소반을 던져 대웅전에 있던 1,000여 명의 중국 승려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척판암이 있다. 주변에 수산과학관, 해동용궁사, 임량해수욕장, 고리원자력발전소 전시관, 이길봉수대 등 명소가 많다. 기장시장에서 장안사행 마을버스가 다니며, 승용차로 가려면 기장에서 좌천을 지나 사찰로 갈 수 있다.
 

 


이미지 검색(대웅전을 오르며 찍은 듯)

 

 

 

음력 5월 초하루 기장군에 있는 장안사를 찾았다.

장안사 부근에는 유원지로 더 알려져서 유명한 먹거리가 아주 많았다.

여동생이 하도 "언니야 장안사는 새벽에 오면 안개 낀 계곡이 너무 좋아~"

하면서 함께 간... 장안사~

 

사월초파일 연등이 달리기 시작하는 아담하고 알찬 사찰이었다.

다른 사찰에 비해 석조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휴홍준님의 글을 되새기며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사찰을 구경 오면 말이다.

첫째 그 절이 얼마나 오래 된 절인지...그 건축물을 눈여겨보고...

대웅전에 올라서서 그 절터를 한 번 가늠해 보는 거다.

예부터 사찰은 다들 빼어난 곳에 자리 잡았으니...왜 어떻게 좋은지 그 지색을 어림잡아라도

느끼려 살펴 보고

어디가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있는지...잘 살펴보고

대웅전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해우소도 들러보고,,,,문 창살도 유심히 보고

 

탑의 모양도(미술사적 가치)유심히 볼 것이며...

언니랍시고(정작 내 언니는 안 갔으므로) 아는 척  썰을 풀었다.

 

대웅전 천정 탱화가 오래된 듯...특이하고 벽화 그림도 이야기가 있는 듯 보였지만...

일주일 앞둔 초파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붐볐다.

 

화단에 꽃들도 아주 정갈하게 잘 가꿔진 절이었다.

장안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이, 가똑똑이도 실은 코끼리 꼬리만 잡아보고 왔다.

 

물론 동생이 말하던 들어가는 입구 계곡은 아마도 여름이면 세인들로 발 붙일 곳 없어 보였다.

 

그 날 들어서면서 계속 테이프로 스님의 독경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늘 같은 구절만 되풀이되었다.

 

아마도 끝절은 混尼佛(혼니불) 불교의 무지함에.....구개음화로 들리는 홑이불의 환청!

"더퍼라...혼니불, 더퍼라 혼이불, 더퍼라...혼니부울 더퍼라~~"....

같아서 웃음이..절로.....( 죄송합니다. 정말 그렇게 들리데요)

 

아래 이야기가 늦게사 생각이 나서 덧붙입니다.

비록 '덮어라 혼니불' 이지만...'짚신 세 벌'과 무에 다를꺼 있나 싶어 혼자 웃어 봅니다.

 

 

짚신 세벌


옛날 무식한 짚신 장수 한 사람이 도를 닦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승에게
찾아가 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승은 사심이 없는 즉각적인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뜻으로 ‘즉심시불’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 짚신 장수는 무식한 까닭에 ‘짚신 세 벌’이라는 줄 알고 여러 해 동안
‘짚신 세 벌’을 외우고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는 도를 깨우쳤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장안사 큰스님~ 사찰 오른 켠에 큰돌로 조각된 달마스님이요 아무래도 이상해요~ 그리고 그 앞에  크고 깊고 투명한 아크릴 통에 돈이 들어 있는 것도 이상하고요"

"달마대사의 위엄이나....친근감은 전혀 없고요. 마치 삥 뜯으러 서 있는 불량배 같았어요.

조각으로서 좀 질이 떨어진다는 말씀을....따라서 아름다운 장안사의 품격에 저해 될까하여 감히...무식한 소인배가  한 말씀~~"

 

 

사진/글:이요조

달마대사 사진은 찍어오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예 찍지 않았습니다. 그럴 생각이 안들어서.....이렇게 용기내어 이야기 드릴 줄 알았음 찍기라도 할 걸...

 


 

기분 좋아지는 아주 재밌는 약숫터
 
사람들이 오가며 얼마나 만졌으면... 
 
참조/꼬리글
balma 2005.05.16 20:07:10

밑에서 두번째 불상은 포대화상 스님인 것 같소....
서양 기독교에서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에 해당되오....포대화상 살아 생전에
무엇이든 포대(자루)를 들고다니며 퍼주며 나눔과 베품을 몸소 실천한 생불이었소!!

 

돌담과 뒷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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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먹다가 생각나서...요거보다 몇점 더  얹어...이만원... 


맛으론 압도적인 장어구이, 입에 살살 녹는 맛이라니...(기장, 월정)


인간 훈제되는 줄 알았다.

 

 


 


한 접시 이만원짜리 멸치회...멸치는 보이질 않고....별로 맛도 없던...


 

하도 티뷔에서 멸치축제하며...멸치회가 나오길래 먹어볼까하고 갔더니...

기장쪽에 길이 많이 막힌다고 하여 아침 일찍 먹고 떠났다.

배가 불러서일까? 맛이 그랬다. (모두들 시큰둥한 표정)

 아니나 다를까?

식구들을 횟집에 앉혀두고 멸치사러 갔다가 차가 영 빠지질 않아 애 먹었다.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나 꾸역 꾸역 몰려드는지...심지어는 관광버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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