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곡은 피아노와 첼로로 연주하는
    '헨델' 의 <라르고/Largo > 입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곡 인데 이곡을 성악으로 부를땐
    <옴브라 마이 퓨/Ombra mai pu>라 합니다.


라르고의 원래 곡명은 『옴브라 마이푸 : 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라르고(Largo)란 '느리게'라는 빠르기 악상 기호로 쓰이지만, 여기서 계속 언급될 라르고는 헨델 작품으로서 고유명사일 뿐이다. 헨델(Georg F. Handel)의 라르고는 19세기 후반에 유명해진 곡이다. 그가 작곡한 희극적 오페라 『크세르세스;Xerxes』(1738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에 나오는 아리아 한 대목이 라르고 선율의 원전이다. 라르고의 원래 곡명은 『옴브라 마이푸 : 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로서, 오페라 제1막이 시작되자마자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쉬고있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세스가 부르는 이 아리아는 "귀엽고 사랑스런 푸른 나무 그늘이 이렇게 감미로웠던 적은 없다."라는 가사로 되어 있는데 남쪽나라의 더위와 노곤함을 표현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의 가락이 뒤에 『헨델의 라르고(사실은 라르게토;Larghetto이지만)』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 곡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 가사와 기분을 떠나 기악곡 형태로 새롭게 편곡하여 연주되면서 부터이다.

이 곡과 관련된 음반을 소개하자면, 우선 피아노반주에 의한 프랑스 첼로 연주자 모리스 장 드롱의 묵직하고 품위 있는 연주(동화출판공사의 세계 대음악 전집-LP)가 우뚝 선다. 실내악으로 편곡된 것으로서는 헝가리 프란츠 리스트 실내악단(야노스 롤라 지휘)이 연주한 바로크 소품집(서울 Teldec라이선스-LP와 CD)에 실려 있고, 그 밖에도 영국 실내악단의 연주(EMI-CD) 등 몇 가지 음반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빠트릴 수 없는 한 장이, 지난 해 11월 공연차 우리나라를 찾아와 개런티 문제로 화제가 되었던 세기의 가수-플라치도 도밍고가 비엔나 소년합창단, 비엔나 심포니와 함께 협연한 연주(RCA-CD)를 들 수 있는데, 굵직한 테너목소리와 뒤를 받쳐주는 보이 소프라노, 관현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연주되는지 들어보시면 어떨는지.

연주자에 따라 3분 안팎으로 연주되는(불려지는) 짧은 곡이지만, 곡(노래)의 성격이 고귀하고 숭고하며 종교적인 기품을 지닌 것이라, 어떤 형태(또는 악기)로 연주된다 할지라도, 헨델의 음악을 이해하는 한 단면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곡이라 생각한다. 
 




Handel 헨델 (1685.2.23~1759.4.19)


영국의 작곡가. 독일의 할레 출생.
9세 때부터 오르간 연주자인 F.차하우에게 사사하여 작곡의 기초와 오르간을 공부하였다.
그 후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한때 할레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18세 때 함부르크의 오페라극장에 일자리를 얻어 이때부터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20세 때 오페라 《알미라:Almira》(1705)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오페라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가 로마에서 A.코렐리, A.스카를라티의 영향하에 실내악을 작곡하는 한편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오페라 작곡가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1710년 하노버궁정의 악장(樂長)으로 초빙 되었으나 휴가를 얻어 방문한 런던에 매료되어 12년 이후는 런던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오페라 의 작곡가로 활약하게 되었다.
12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오페라 《충직한 양치기:Il pastor fido》 《테세오:Teseo》를 작곡, 상연하고 18∼20년에는 찬도스공작의 후원 아래 종교음악의 명작 《찬도스 앤섬:Chandos Anthoms》 11곡을 작곡하였다.
또 19년에는 주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상연을 위해 ‘왕립 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다른 두 이탈리아인 작곡가 G.B.보논치 니, A.아리오스티와 함께 그 지배인이 되었다.
그 후 약 10년 동안 창작력의 전성기에 들어선 그는 오늘날까지도 상연되고 있는 이탈리아오페라의 명작 《라다미스토:Radamisto》 《오토 네:Ottone》 《줄리어스 시저:Giulio Cesar》 《타메를라노:Tamerlano》 《로델린다: Rodelinda》 《아드메토:Admeto》 《톨로메오:Tolomeo》 등을 작곡하였다.
또 21년에는 초기의 명작 오라토리오 《에스테르:Esther》를 작곡하였으나 28년부터 그 후 약 10년간은 이탈리아오페라 작곡가로서의 헨델의 운세가 점차 기울어 갔다.
중산계급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던 영국의 시민계급이 궁정적·귀족적인 취미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해 반발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8년 대사(臺辭)에다 민요선율을 곁들여 당시의 귀족사회를 통렬히 풍자한 J.C.페푸시 작곡의 《거지 오페라:The Begger’s Opera》가 상연되어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자 왕실 음악아카데미는 부득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헨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에 아카데미를 재건, 헤이마게트극장을 근거로 한때 옛날의 인기를 되찾았으나 33년 경쟁상대인 보논치니의 이탈리아오페라와 《거지 오페라》의 협공을 받고 두 번째 극장을 폐쇄하게 되었으며, 34년 세 번째로 이탈리아오페라의 기치를 들고 코벤트 가든 오페라극장 경영에 나섰으나 3년 후인 37년 마침내 건강 악화와 경제파탄으로 오페라 작곡가 겸 극장 경영자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헨델은 32년경부터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예찬되고 있는 《메시아:Messiah》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그는 32년의 《에스테르》 개정판에 이어 35년 사순절(四旬節)에는 성가작품을 포함한 약 15편의 오라토리오를 헤이 마케트극장에서 연속 연주하여 점차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또 36년에는 《메시아》에 버금가는 유명한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향연:Alexander’s Feast》을 작곡하고 38∼51년까지도 거의 모두를 오라토리오의 작곡에 경주하였다.
39년 구약성서에 입각한 위대한 서사시적인 드라마 《사울:Saul》과 《이집트의 이스라엘인:Israel in Egypt》을 발표하면서 다시 건강을 회복한 그는 왕성한 창작력으로 41년에는 고금의 명작 오라토리오 《메 시아》를 작곡하였다.
《메시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정수(精髓)를 순수하고도 감동 깊게 전해 주는 명작이다.
그러나 헨델의 수많은 오라토리오 중에서 주로 서정적 요소를 강조하며, 접속하는 칸타타형태를 취한 이 작품은 오히려 예외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의 오라토리오의 본질은 현실무대의 제약을 벗어난 가상적 무대에서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모체로 하는 보편적·윤리적인 관념을 전개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는 종교적 감동을 주는 서정적 표현에 뛰어났고, 오페라작품 속에 축적한 선명한 이미지를 환기시켜 그것을 드라마틱 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하였다.
이런 점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 앞서 언급한 《이집트의 이스라엘인》과 함께 46년의 작품 《마카베의 유다:Juda Macabaeus》 등이다.
《메시아》 이 후에도 그는 《삼손:Samson》 《벨샤자르:Belshazzar》 등 뛰어난 오라토리오를 많이 작곡 하였으며, 51년 오라토리오 《입다:Jephtha》를 작곡하던 중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실명한 후에도 오라토리오의 상연을 지휘하는 한편 조수의 도움으로 구작(舊作)의 개정에 힘썼다.
헨델은 오페라(46곡), 오라토리오(32곡) 등 주로 대규모의 극음악 작곡에 주력하였지만 기악방면 에서도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유명한 관현악곡 모음곡 《수상의 음악:Water Musi c》 《왕궁의 불꽃놀이음악:Royal Fireworks Music》 외에, 작품 6의 합주협주곡, 작품 4·7 의 오르간협주곡, 작품 2·5의 트리오소나타, 작품 3의 오보에 협주곡, 그리고 20년에 출판된 하 프시코드용의 모음곡 등은 모두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종교곡으로는 앞서 말한 11곡의 《찬도스 앤섬》 외에도 유명한 작품으로 유트레히트와 데팅겐의 전승(戰勝)을 축하한 《테 데움: Te Deum》 등이 있다.
26년에 영국에 귀화하였고 사후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성당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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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

 

 

종일 우울하다.

요즘 한 사흘 내내 휴지, 걸레만 들고 산다.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레 빨기~~ 비누에 빡빡 문질러....

 

우리 집엔 이미 강아지가 세 마리나 있다.

엊그제...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XX님~~ 강아지 안키우실래요? 시베리안 허스키 한 쌍이에요"

내가 중매해준 욱이 엄마다.

"그럼 주무시지 마세요"

얼결에 그러지 머 했는데... 우리 집 머스매 둘이 좋아서 난리다.

꼭 키워보고 싶었단다.

아니 얼마전에는 꼭 '골든 레트리버'를 키워보고 싶다기에 그 소원대로 입양했잖은가?

이러다...키워보고 싶은 대로 다 들이면 집이 아니라 개천국이 되겠다.

만약에 온다면 뒷마당에 헨스를 치고 몽이랑 함께 키우지 뭐... 그런 생각도 해두었다.

 

막내늠..그랬다간

"엄마 안되겠지요? 갖고 오지 말라 전화하세요~~"
"아..나도 그러고 싶은데...정말이야~~" 어쩐지 기분이 마뜩잖았지만 이미 어쩌랴

말을 꺼낸 뒤인걸... 이상스레 별로 내키지 않은 이런 일도??

 

좀 있다가 초인종 소리에 대문 앞까지 따라나온 우리 집 막내 종열이는 화이트 허스키라며

그나마 굉장히 좋아했다.

그 중 화이트 허스키 한 마리만 하란다.
암놈은 어머니가 키워보겠다고 하신 단다.
그러면서 약을 준다. 설사병에 걸렸단다.

'헉! 강아지에게는 설사가 치명적인데...전염도 쉬 되는데..'
싫다고 똑 부러지게 말도 못 꺼내고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태가 심하다. 욱이 아빠 친구네서 얻어왔단다.

욱이와 그 남동생,  남자 아기가 둘이니 얼마나 조물려트려서 스트레스를 받게 했는지...
가히 짐작이 가는 상황이다.

병원에 갔더니.. 설사할 때는 예방 접종이 안 된다며 약만 먹이라며 주고 간다.

 

'어라..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지만,.,날 대문 밖으로 불러내서는 집에도 들어오지도 않고

개가 언제 태어났으며... 뭐 이런 얘기 단 한마디도 없이....그냥 휭-떠나버리다니...

아이들이 산 생명을 장난감처럼 마구 주무르다 싫증이 났다거나 아프다가나 하면

그 생명을 끝꺼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가?

 

이 게 어디 갖다 버리는 것이지.. 강아지를 주는 것인가?

우리 엄니는 도로 갖다 주라고 난리도 아니시다.

참  어리석은 나도 많이 생각케 되는 일이다.

욱이 엄마의 언니네 부부와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알 게 된 단짝 부부다.

(남선교회/여전도회)

어쩌면 그녀도 내 블로그를 몰래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블로그는 서로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 보게되면 마음속의 글이 다 나오질 못하는 법인데....

남편들끼리는 동갑이지만 그녀는 한참 아래여서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난다.
그러나 얼마나 똑 부러지게 영악한지..
얄미울 정도다. 깔끔하기로 결벽증이 좀 있는데.. 그 자기의 깔끔함을 세상 잣대로 삼는...

현관 쓸고 닦고..지저분하면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냅다 부리는,

자기를 늘 볶으며 사는 그녀, 그 곁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좌불안석일까?

 

그녀의 동생 욱이 엄마는 늘 언니네를 생각해서 뭘 가져와도 꼭 두 개를 마련하는데..
아마도 강아지도 그래서 두 마리를 얻어온 모양인데...가져다 논 강아지가 똥을 싸대니..

필시 싫다고 난리 법석을 치며.....아마도  내게  갖다주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어머니는 이 게 주는 거냐? 버리는 거지? 빨리 전화해서 보내라고 난리시고...

 

'엄니 그러면 우리가 더 나빠져요~~"

 

정말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우리 집에도 현재  몽이까지 세 마리라고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왜 내게 이 병든 강아지를 보냈을까?
강아지의 생태를 잘 모르니..죽을거란 생각은 않았겠지...그랬겠지? 많게는 소형견 15마리(모두 한 가족/아까워서 못 나누고)도 기르던 나였으니.. 그리고 목욕도 같이 하다시피 한 나였으니...이쯤이야 알아서 잘 살리겠지 하는 마음에서였을까?.....아마도 믿는 마음에서 였을까?
마음이 복잡해져왔다.

 

약을 먹이니 약도 게워낸다.
아무래도 불길해서 따로 격리해서 키우기야 하고 있지만..

뒤치다꺼리가 힘든다.
개에게는 인삼이라는 마른 북어를 고아서 불린 쌀을 빻아 미음을 갖다 놓았지만 물만 먹는다.
해서 물도 두 종류를 갖다 두었다. 설탕물과 생수,

 

급기야 어제 저녁엔 피 같은  설사를 하기에  아들들에게 병원 다녀오게 했더니..
다 문을 닫았더란다.  24시 동물병원도 불만 켜졌고...비가 많이 와서 그랬을까?

 

오늘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온 막내 종열이..
검사료가 비싸..42,000원이니 들었다며...엄마 개들에겐 바이러스가 다 있는데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된대요 그리고 허스키는 어려서는 장도 약해서 장염도
잘 오는데.. 이젠 어쩔 수 없대요. 외국 같으면 안락사 시킨대요.
다른 개들에게 전염성이 강하니 격리시키래요. 사망확률이 75%니  아무 것도 주지말고(심지어 물까지도) 지켜보래요.

이런... 맙소사..그럼 죽기를 지켜보라는 말이로군.

그럼 검사나 하지 말지..나쁜.....사람들....죽을  강아지에게 검사는??
그럴 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죽을만큼 무척 괴로울 때는 내 곁을 찾아오더니... 이젠..어두운 구석만 찾아 들어간다.

...............

 

오늘 아침,
나는 흉흉한 꿈을 꾸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길하다기  앞서 우울하다.

그러지 않아도 그 집사님네랑 사이가 좀 소원한데... 뭔지 모르게 서운하다.
아픈강아지 던지다시피 주었으면 그 안부 전화라도 먼저 해 줄 수 있을 텐데...

 

 

생명,
어찌..나를 빤히 보는 이 동물을 ... 날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

 

 

혁이는 갔습니다.

생명하나 지어 나와..이 세상에 며칠을 머물다 간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태어났는지... 그 것도 모르지만....갔습니다.

우리집에 버려지다시피....유기된...아기

일요일 밤 11시 넘어 와서 4박5일을 함께한 혁(화이트 허스키)이~~

 

마지막 모습, 그 게 보기 싫어서 아들 넘에게 맡기고  배낭을 지고는 12시 무작정 기차를 탔습니다.

해발 500쯤되는 동두천 소요산을 올랐습니다.

 

오후 5시 쯤 산을 내려와서   6시 30분경 집에 다다랐을 때는 전화로 곧 죽겠다기에...

집으로 들어 오지 못하고 그냥 무턱대고 시내를 한바퀴 더 돌았습니다.

 

이제 죽음은 보기 싫습니다.

저에게 그 분은 왜 죽음을 많이 보여주시는지...

 

아픈 다리로 걷고 걸었습니다.

오후 8시 반에 집에 들어오니... 혁이는 뒷대문 밖에 내놨답니다.

 

엄니는 우셨는지.. 코가 빨갛습니다.

엄니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셨습니다.

엄니는 그 넘이 눈에 밟힌다며... 저녁도 안드십니다. 아니 못 드신답니다.

 

두 넘이(아들) 혁이를 묻으러 갔습니다.

깊이 잘 묻으라 했습니다.

 

지금 막..돌아왔습니다.

내일부터 장마비가 많이 온다는데... 잘 묻었냐 물었습니다.

 

내세에는 그런 허튼 생명을 타고 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

 

강아지 죽음 하나 두고 무슨 장난이냐 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겨우 젖 뗀.. 하찮은 미물의 강아지, 생명일지라도... 너무 안쓰럽습니다.

이리도 온 가족이 우울합니다.

 

 

걱정, 함께 해주신 이웃 블로그님들

춘하추동님..... 깡통로봇, 빼빼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우리 엄니에게는 못할 짓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엄니~용서하세요~"

 

 

                                             Vitalli Chacon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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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7시 26분 창가에 새가 울며 스쳐 날았다.

 

무슨 새인지는 잘 몰라도 가늘고 여린 울음이다.

 

봄이 가까운 소리같다.

 

저렇게 여리게 우는 새소리가...이른 아침에 들리는 걸 보면 문명 봄은 가까웠나 보다.

 

요즘은 새들 보기가 어렵다.

 

마당에 참새도 잘 오질 않는다.

 

설날 아침에는 까치 소리를 들어야 길하다는데...

 

이러다가는 그도 올 해는 듣기 어려울 것 같으다.

 

공원에서도 사람들이 비둘기를 기피하고,

 

배고픈 비둘기들은 사람 가까이로 다가와서는 먹을 것을 채근하는데,

 

사람들은 야멸차게 쫓아버리기만 한다.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는 학교내에 있던 비둘기들에게 약을 먹여 없애는데 주력했다는 게

 

자랑처럼 뉴스꺼리로 나오고,

 

오늘 내 창가를 스쳐 지나간 작은 새야!

 

용케도 잘 견뎌냈구나, 모진 추위속에 세파를....

 

좀 있으면 신록이 움트고, 만물이 꿈틀대면 너희들도 살만한 세상이 오지 않겠니?

 

창가에 어둠이 걷히느라....희끄므레해지는 이 아침에

 

나 또한 살만한 세상을 희망하노니~~

 

 

 

1월 27일 아침에

 

 

 

    새

    새~보다 자유로워라 /유익종 노래
                  그대 몹시 비오던 저녁에
                  내게 이 말 한마디 남긴 채,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먼 길 떠나시었네.

                  고운 두 볼 슬픔을 삼키고
                  국화향기 여린 입술 머금어...
                  눈물진 목소리 속삭이면서 먼 길 떠나시었네,

                  새~보다 자유로워라  새~보다 자유로워라
                  저 먼하늘 한껏 머무는, 저 새보다 자유로워라...
                  음... 음... 음...
                  아~ 그대 향내음.

                  고운 두 볼 슬픔을 삼키고
                  국화향기 여린 입술 머금어
                  눈물진 목소리 속삭이면서 먼 길 떠나시었네.

                  새~보다 자유로워라  새~보다 자유로워라
                  저 먼 하늘 한껏 머무는, 저 새보다 자유로워라
                  음... 음... 음...
                  아~ 그대 향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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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오랜 친구, 개』특별전(국립민속박물관)click~
                올해는 병술년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병술년을 기해 특별전을 연다는데..

                찾아가시는 길은 윗글을 click~ 하시면 됩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들과 가장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물로써

                주인에게 충직한 "개"들에게 혹, 천대했다면 이 글로

                용서를...ㅎㅎ~~"마리야~ 더 사랑할께"

                 

                 

                 

                 

                 

                ▒▒ 치매, 애완견치료 ▒▒

                 

                학설이란, 어떤이의 논문이 인정을 받으면 늘 떠들썩하고 바뀌게 되어있다.

                요즘엔 애완견치료법이 외국에서도 인정을 하고 시행하는 모양이던데...

                 

                여기 우리 조상은 그 먼저 그 방법을 알았으니

                모든 스트레스가 병이 된다는 말, 옛날 우리 며느리들은 모진 시집살이에

                따스한 아궁이 곁에 코 박고 자는 애먼 강아지 배때기를 걷어참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전이 시켰던 것이다.

                 

                또 ‘부리지또 바르도’ 할매가 들으면 개 배때기라니...하며 게거품을 물겠지만

                그래도 며늘 그 자신도 누룽지만 겨우 얻어먹는 주제에 함께 눈물바람에 나눠 먹었으니

                물자 풍부한 나라에서 그런 사랑을 가히 짐작이나 할까?

                 

                올해로 구순이신 시엄니~  햇 수로 삼 년전, 치매 끼로 한참 애 먹을 때 정신과를 다녔었다.

                정신과는 비보험약들이 대부분이어서 한 달 치료약 값이 만만치 않았다.

                며늘인 나도 차트를 만들라시더니 갈 때마다  의사와 면담시간을 가졌었다.

                 


                "사람은 70이 넘으면 뇌세포가 조금씩 파괴되어 갑니다.

                물론 그 차이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해서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는 자신도 자신이 싫어

                은폐를 하려 거짓말도 잦게 되고....."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제가, 제가 가슴에 뭐가 딱 막혀

                숨도 못 쉬겠다가 물을 마시고 가슴을 주먹으로 냅다 꽝광 두들기다가

                음음 헛기침 소리를 내면 조금 숨통이 트이기도..."

                 


                그 때는 정말 그랬었다.

                해서 그 때 비워 둔 지금의 집으로 다시 이사를 왔었다.  우선은  내가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어려운 건,  엄니는 대소변처리를  못 하시는 게 그 당시  제일 큰

                골칫거리 였으니~~

                건강하실 땐 잠이 많으시더니  잠이 없어지셨다.  한 밤중에도 자는 우리들 머리맡에

                앉아 내려다 보고 계시고

                식사는 잡숴도... 잡숴도 배가 고프다셨고 그 외 이야기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필설로 어찌 다 풀어낼 수 있으리~

                 


                내겐 최악의 스트레스였다.

                나는 원인 없고 이유 모르게 목고개가 아프고 운전은커녕 밤엔 자다가도 울 지경이었다.

                 


                망나니의 칼에 뒷목이 뎅겅 잘린 채 겨우 필요한 명줄만 이어져 뎅겅거리는 상태 같았다.

                 


                정말 무당은 찾아가 보지 않았지만 귀신이 그러는 것 같았다.

                입을 벌려 밥을 떠 넣기도 어려웠고 말을 할 수가 없어 어쩔땐 전화를 받다가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냥 앉아서는 통증이 왠만한데, 베개를 베고 누우면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1cm라도 고개를 든다거나 좌우로도 움직일 수조차 없을지경의 통증이 이어졌다.

                집안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쓸데 없는 고집만으로도 내 氣를 꺾어 누르고도 충분했다.

                이러다가, 내가 이러다 어머님 초상이라도 치를라치면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아 불안했다.

                통증크리닉에 다녔으나 효과도 없고

                침을 맞으러 다니다가 한방병원에 종내는 입원을 하고 추나요법과 병행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회진을 돌 때(양의도 합세) 이유를 모르겠노라 혹시 목에 갑상선 결절이 있으니 수술을 하자한다.

                그 쪽으로 목이 더욱 아프다 그러니 .....

                한방병원에서 나가란 말도 않는데, 효과도 못 볼 것 같은 눈치에 결국 보따릴 싸서 나왔다.

                 


                그리고 한 삼 개월 뒤, 종합병원에서는 항진증도 저하증도 아닌 단순 물혹이라

                굳이 안 해도 되지만 그래도 해보자...라는

                결절(물혹)을 떼어 내는 수술을 감행하고 그래선지 그 통증은 점차로 수그러들어 만 이년이

                지난 지금은  보통사람 잠 잘 못자고 일어나면 아픈 강도쯤으로 잔통은 남아있다.

                 


                이제는 입을 벌려 쌈을 싸먹고...말하는데 지장이 없고 차를 후진시키는 데는 적당히 사이드, 룸, 밀러를  이용하여 나름대로 감각을 잡으니...얼마나 다행인지!

                 


                그 당시 우리는 상가 건물 맨 윗층 주택에 살고 있었다.

                좀 오래 된 근린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사무실 뿐이어서 어머님은 더 외로우셨고... 어머님 병을 낫게 해야만 내가 살 것 같아 마당도 있고 나무도 있는 사정상 그냥 비워두고 있던  단독주택을 급히 수리해서 이사를 감행했다.

                 

                한 2년을 비워두어서 나무를 잘라내고 집을 개보수하고 거취를 옮겼다.

                참~ 동안 마당에는 똘똘이가  혼자 빈 집을 지키고 있었던....그 곳으로,

                 

                우선 내가 좋았다.  뜰에 나무 한 그루라도 다 내 손으로 심어둔 곳이니 고향, 엄마품으로

                돌아 온 듯하였고, 아침에 일어나면 늘 무슨 꽃이 피고 지는지 드려다 보고,

                가을이면 낙엽도 쓸고...겨울엔 눈도 치우고,

                 


                개를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구하지 않아도 지인들에게 얻은 강아지들이 생겼다.

                내 목이 몇 년을 걸러 서서히 나아가는 것처럼 지금 이사 들어온 지 이태 째

                어머님은 다시 건강을 되찾으셨다.

                 

                요는 강아지 덕이다.

                그 것도 엄니와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하는 순전한 '마리' 덕분이다.

                 

                 

                내 큰아들은 알러지 천식이 있는 넘이다.

                물론 대개 한국사람 90%넘게 주요원인이 다 그렇듯이 먼지진드기가 우선이지만,

                애완견도 기피해야하는 상황인데도,  실보다 득이 조금이라도 더 많다면야,

                 


                할머니는 요즘은 거의 예전 정신을 수습하시고는

                두 살짜리 마르티스와 싸우다가 놀다가 그러신다.

                 


                마르티스가 얼마나 못땠는지 할머니 이불에서 함께 자다가도 할머니 화장실 갔다 오시면

                제 잠이 덧들인다고 부스럭댄다고 앙탈을 부린다.

                 


                할머닌 한밤중에도 마리랑 토닥토닥 싸우신다.

                악처가 효자 열보다 낫다고...어느 효자자식이 못된 마리보다 나을까?

                같은 이불에서 잠자며 함께 자리 다툼하는 작은 강아지보다....

                 


                낮에도 방문객이 있을라치면 , 아니 벨소리만 듣고도 자지러지는 마리에게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시다가 고래고래 호령을 치시다가 ...

                강아지 배때기를 걷어차는 며느리 심정으로 우리들에게 받은 서운함을 '마리' 에다가

                그렇게 화풀이도 하시고....

                 


                밤에는 애기처럼 손자처럼 이불을 또 덮고 덮어 다독거리시고...

                입에 든 것도 꺼내 먹이시며,

                마리는 제가 심심할라치면 작은 인형을 물고 가선 놀자 그런다.

                할머니가 그 인형을 냅다 던지면 지가 무슨 사자처럼 으르렁대며

                (아마도 신이 나고 즐거워서 내는 소리)인형을 주워 물고는 할머니께 또 달려가고

                할머니는 또 던져주시고,

                너무 제 신에 겨워 인형을 물고 절래, 절래 흔들 때도...

                 


                물 주까? 밥 주까? 과자 주까?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는...받아야만 하는...

                마당에 있는 개 두 마리도 할머니 몫이다.

                아예 일로 활당하여 떼 내어 드렸다.

                그러자니...자연 할머니를 좋아하며 따르고 할머니는 운동도 되고

                당신이 보살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흩으러진 정신을 올곧게 다잡아가며 개들을 돌보신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병원에 갖다 줄 돈..그리고 아직 그 상태대로라면 내가 더 먼저 기함을 하고 나가 떨어졌을....

                지금은 집 가까이 있는 교회도 지팡이 의지해서 혼자 가실 정도가 되었으니..

                 

                우리는 단지 마리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글쓴이/이요조

                2005.07.28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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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꽃이 이보다 더 아름다우랴~~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 가고 , 촛불을 바라보듯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고요해지자.

                나를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을 닮자....환하게~~ 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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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너에게 이름을 묻노니..


                 

                겨울이라곤 했지만 실감하지 못했는데,  12월로 들어서자  이내 매서워졌습니다.

                한여름 소등을 두고 다툰다던 소나기처럼 산속에서 회오리로 눈발이 하얗게 묻혀 내려옵니다.

                여행 목적지인 고성을 접어들며 산언덕에서 길가에 키 작은 산다화가 눈바람 회오리 속에서 빨갛게 핀 걸 보았습니다.  고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매화가 귀히 여김을 받는 것은 맹추위를 견디고도 향기를 머금어 맨 먼저 화신을 전하는 절개일 터이고,

                동백이나 산다화는 벌 나비도 없는 겨울 눈 속에 붉게(혹은 희게) 피어나기 때문일 겁니다.

                꽃이 군데군데 달린 모습으로...그냥  쉽게 보면 절로 "아 동백꽃!" 하게끔~

                고성군 하일면에 다다르니... 친구의 별장 마당에도 산다화가 곱게 피어있었습니다.


                제가 동백을 보고 반한 적이 서너 번 있습니다.

                부산여중을 다닐 때 교목이 동백이었고 내 키보다 두 배나 됨직한 키만 멀쑥이 큰 동백나무는 나무등걸이 허여멀끔한 게 그다지 예뻐 보이진 않았는데... 용케(부산) 잔설이 쌓인 어느 날,  눈 위에 떨어져 누운 서러운 붉은 동백꽃을 보고  일순 반해버렸습니다.

                나무는 전부 홑 동백꽃이었는데..아무래도 동백꽃은 홑 동백꽃이 젤로 예쁜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겨우내 통통히 살찌워 피워 올리던 꽃봉오리를 어느덧 피는가 싶으면 문득 눈물처럼 떨어트리는...


                그 다음은 거제도 충렬사 마당에 아름드리 큰 동백나무였습니다.

                어찌나 우람하게 크던지..

                마치 잎새는 참기름을 바른 듯 하다고 어렸을 적에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제도 외도에 갔을 때도 계단을 오르는 진입로에 둘러 선, 빽빽한 동백군락이 일순 숨을  턱. 가로막았습니다.

                포항 울기등대의 조성한 공원에도 동백은 애기 공만한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습니다.


                초여름이었던가?  거제도에서 산모롱이를 돌아 나오며 온 산이 은빛트리로 반짝이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비록 꽃은 져버린 늦은 봄 오월이었지만 동백군락은 도도하게도 봄빛 완연한 먼-바다를 향한  윤기나는 초록 잎새들의 환호와도 같은 반짝임 이였습니다.

                바다의 빛들을 받아 거울로 되비추기 하는 아이들처럼 모든 빛들이 바다로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도대체 뭐 길래 온 산이 저렇게 반짝이지?

                누가 은빛 트리를 꾸민 것처럼? 그런 표현을 했던 몇 해 전 쯤의 기억이 납니다.

                꽃보다 더 아름답던 동백군락지의 잎사귀들...


                애석하게도 선운사 춘백을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곳에 들면 송창식의 ‘선운사’ 한 구절이 절로 나올 것 같은데....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작년 가을 제주도에 갔을 때, 이른 듯 피어있던 동백꽃! 그 게 산다화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산다화는 사전을 찾아보면 동백나무 꽃으로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식물에 조예가 깊다는 사람들 더러는 산다화는 사상과에 속하는 나무라 했습니다.

                 

                제가 가늠한 산다화의 모습은 영락없이 해당화와 홑 동백의 중간모습이라고 상기하고 싶습니다.

                색깔 역시 홑 동백은 피처럼 붉은 색이면 산다화는 해당화의 빛깔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산다화!

                작은 동백이라고도 불리우는 산다화는 분명 동백꽃의 모습은 아닙니다.

                아름드리 클 수도 없을 뿐더러  활짝 벌어진 가운데 수술 모습도 해당화를 닮은 듯 합니다.

                동백 수술은 한데 엉긴 듯 가지런히 모아져 있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쓴  "冬栢開花' 시조 말연(종장)에...

                "귀한님 화사금관을 고이 받든 붉은 도포" 라고 표현했을라고요.

                 

                산다화는 그 모습이  활짝 핀 화사한  기녀라면

                기껏 만개해도 벌어지게 피지도(웃지도) 못하는 동백은 규방의 여염집 아녀자 같다고나 할까요?


                눈이 왔습니다.

                지금도 해안가 동백군락지에는 통통하게 물오른 동백이 붉은 꽃망울을 피우고 섰고

                키 작은 산다화는 기녀의 치맛자락같이 눈 속에서 살핏한 미소를 물고 있을 것입니다.


                꽃이라고는  다 져버린 눈 속에서도 뜨겁도록 붉은 빛깔로 피어나는

                동백은 찬 눈 속에 떨어져 몸을 누이는 정열을 안으로만 숨겨 다독인 수줍음 입니다.

                산다화는 고운 빛깔이 스러진 겨울 속에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당당한 화사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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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쌓인 겨울에 여행을 가신다면 해안가 해풍을 머금어 피어나는 동백꽃과 산다화의 아릿한 아름다움을 흰 눈 속에서 한 번 찾아 보시는 멋도 .....좋을 듯 합니다.

                 

                글/사진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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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산다화

                 

                산다화의 다른이름

                산다목, 산다화, 산다수 등

                과     명

                차나무과의 상록교목

                특     징

                밑에서 가지가 갈라져서 관목으로 되는 것이 많습니다.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고 잎 가장 자리에 물결 모양의

                잔 톱니가 있으며 윤기가 있습니다.

                꽃은 붉은색으로 이른 봄 가지 끝에 1개씩 달리며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히 퍼지고, 수술은 많으며 암술대는 3개로 갈라집니다.

                열매는 삭과(果)로 둥글고 지름 3∼4 cm로서 3실이며,

                씨는 검은 갈색을 띱니다.

                꽃말은 '신중·허세부리지 않음’이며, 꽃잎이 납작하게 활짝 퍼지는 것을

                뜰동백(var. hortensis)이라 하며 가장 많은 품종이 있고

                흰꽃이 피는 것을 흰동백(for. albipetala), 어린가지와 잎 뒷면에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을 애기동백이라고 합니다.

                분     포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중국·일본 등지에 분포

                 

                 

                산다화(山茶花, 俗名-冬柏)

                 

                <남방초목기(南方草木記)>에 이르되 『산다화에 붉은 것과 흰 것의 두가지가 있고 천엽(千葉)이란 것이 있으니 이름과 종류가 하도 많아서 다 기록할 수 없고, 대강 든다면 보주산다(寶珠山茶), 누자산다(樓子山茶), 천엽산다(千葉山茶) 등이 있다』하였다.

                <격물론(格物論)>에 이르되, 산다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바 보주다(寶珠茶), 석류다(石榴茶), 해류다(海榴茶)는 쇄화(碎花)가 있고, 철쭉다(  茶), 말리다(茉莉茶), 궁분다(宮紛茶), 관주다(串朱茶)는 모두 분홍빛이고, 일념홍(一念紅), 조전홍(照殿紅)은 잎이 각각 다르다고 하였다.

                양성재(養誠齋)는 산다시(山茶詩)에서,

                   금빛 조알, 은빛 실을 뉘라서 박았는가.
                   이른 봄엔 복숭아, 오얏꽃의 시새움 많고
                   추운 겨울엔 눈 서리의 사나움도 침노하지 못한다.

                송현(宋賢)도 시를 지어 이렇게 읊었다.

                   옅은 빛은 옥명(玉茗)이요, 짙은 빛은 도승(都勝)이라.
                   큰 것은 산다요, 작은 것은 해홍(海紅)이라.
                   이름이사 많지만 벗은 외로와, 해마다 부질없이 눈 속에 산다.

                우리나라에서 심는 것은 다만 네 종류가 있는데 단엽홍화(單葉紅花)로 눈 속에 피는 것을 세속에서 동백(冬柏)이라하니, 곧 <격물론>에서 말한 일념홍이고, 단엽(單葉)분화(粉花)로 봄에 피는 것을 춘동백이라하는데 이것은 격물론에서 말한 궁분다이고 서울에서 심어 기르는 천엽동백은 격물론에서 말한 석류다이다. 또 천엽다가 있는데 꽃술에 금빛 조알이 붙은 것은 이른바 보주다란 것이다. 대저 천엽다는 잎이 두껍고 빛이 짙푸르고, 꽃술이 쇄화로 되어있다. 꽃 기르는 사람들이 이 꽃을 귀히 여기지만 보주다의 뛰어남은 미치지 못하다. 단엽동백과 춘동백은 남해 섬 가운데 많이 나는데 거기 사람들이 베어 땔감으로 쓰고, 열매를 따서 기름을 내어 머릿기름으로 쓰고 있다. 서울에서 씨앗을 심으면 하나하나가 다 곁가지가 올라오니 분에 옮겨 심고 천엽에 접붙이되 접매(接梅)하는 방법과 같이 하여 백을 접하면 백이 다 산다. 다만 분이 작으면 마르기 쉬우니 자주 물을 주어야 한다. 가지를 꺽어 놓으면 단엽은 잘 살지만 천엽은 꽂아 심고, 흙은 분토를 쓰며 구덩이를 한 자쯤 파고 분을 그 안에 들여 놓는다. 낮엔 딴 그릇으로 덮어 주어 햇볕이 들지 않게 하고, 밤엔 열어놓아 이슬을 맞힌다. 이렇게 하여 얼마간을 지내면 뿌리가 생긴다. 다(茶)의 잎새에 먼지나 티끌이 많이 붙으니 자주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서 윤기가 나게 한다. 거두어 간직할 때 가지나 잎사귀에 다른 것이 서로 닿지 않게 하고, 온도를 알맞게 해주고 또한 사람의 훈김이나 불기운에 가까이 말고, 물을 주되 습하게도 말고 조하게도 말며, 햇볕에 쬐이지 말아야 한다. 분은 와기(瓦器)를 쓴다.

                           남방초목기(南方草木記) : 책이름 三권, 초목 80종의 산물을 기록한 책.
                           송현(宋賢) : 명나라 사람, 자는 급보(及甫), 호는 정우(定于), 벼슬은 어사.
                 

                 

                 

                 

                 

                처용 단장(處龍斷章) /김춘수(金春洙 1922- ) 경남 충무 태생.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 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제주도 산다화 나무

                 

                클릭/산다화 노래/등려군☞ http://music.bugs.co.kr/music/NetizenRecom.asp?Cat=C&Country=cpop&Genre_Code=41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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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1일  오후,

                저녁끼니 때우기가 좀 어중간해서 패스트푸드 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하나 사들고

                서울역발 부산행 ktx를(19:04)탔다.

                그러나 옆 좌석을 생각하자니 (냄새를 피우기가)좀 그랬다.


                언젠가 동반 석에 오른 아저씨..얼마나 배가 고프셨는지..

                후라이드 치킨을 올려놓으셨는데.. 마침 그 자리에 군인 둘이 앉게 되었다.

                새마을호와는 달리 식당 칸이 생략된 ktx라

                냄새는 한 차량 안을 진동하고도 남는데..아저씬...군인들에게 "함께 먹자~" 고 하셨으나

                둘은 사양하고 아예 눈을 감아버린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즐거워야할 신병 첫 휴가차 나온 군인들에겐 얼마나 무지한 고문이었을까?


                그 생각에, 저녁대신 준비하긴 했어도 분위기 봐서  참든지 해야겠다고 했는데

                옆자리 아가씨도 마침 똑같은 패스트푸드 봉지를 내려놓고는 먹는 게 아닌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도 모르게,

                "잘됐네요 난 혼자면 어쩌나 했는데..."

                하면서 접이식 테이블을 피고 부스럭 봉지를 올리는데 좀 살짝만 미소 짓듯 해도 어디 덧나남?

                나를 이상한 듯 빤히 잠깐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어간다.

                허허 참나, 난 참으로 되게 머쓱해졌다.


                '에혀! 내가 주책이지 걍 말없이 먹으면 될 껄 가지고...'

                속으로 자조했다. 앞으로 노친네처럼 굴지 않으려면 절대 침묵해야지 하고,

                어쨌든 둘 다 잘 먹었다.


                아가씨..일순 신발을 벗더니 발을 올려 앞좌석 앞사람의 어깨 부분까지 발을 올린다.

                발 냄새가 심하진 않지만 나긴 한다.

                또 전화는 얼마나 길게 자주 해대는지....

                간호사 원서를 내고 즉석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내려가는 즐거운 하행길인 모양이다.

                즐겁겠지~ 게다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힘들었겠지~

                하지만 나는 참느라 힘이 들었는지, 아니면 발 냄새와 잦은 통화에 질렸는지

                픽업할 동생 전화에다 대고는 딱 한마디만 한다는 게

                "응,응, 9시 49분(도착이란 말도 생략, 재빠르게)"

                그 날 밤, 동생은 9시 40분으로 듣고는 조금 이르게 9시 30분에 역에 나와서는 그럭저럭 한 30분 좋이 기다렸단다.




                #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애정행각이 진한 어린남녀를 보았다.


                밍크코트에다 모자까지 일습으로  잘 차려 입으신 할머니 한 분,  내심 견디질 못하시고

                "야들아~~ 너희들 그렇게나 좋으니?" 그 말에 머뭇거리지도 않고

                "예~~~~~"

                수줍게 웃으며 밝게 대답한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어른들이 아가씨의 밝은 대답에 왠지 모두는 기분이 밝아졌다.

                모두들,,,웃었다.

                선듯 밝은 대답 하나에 모든 게 용서가 될 것 같다.

                나도 입가에 미소를 베어물다가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

                "할머니, 어쩌시려고,,,요즘 젊은이들은 째려본다구요...아님 낭패를 당하시든가..."

                "나? 뭐가 무서워? 나 막 해버려...세상에..눈꼴시어서 원,"


                옛날이야기다.

                시집 온지 열흘이 지나도 서방님 얼굴을 잘 모르겠는지라

                대청에서 시숙, 시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동서에게 넌지시 묻기를 "형님 어느 게 제 서방 이예요?" 했다는...

                격세지감이지만 요즘 젊은이들 너무 심하다.

                아마도 집에서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바깥에 나가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미리 한 번 이라도 제대로 교육을 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거나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과 기분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다.

                글도 마찬가지.  이젠 가능하면 밝은 글로만 그 흐름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전철에서 분실물을  찾고,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거운 기분으로 글로 썼다가

                악플 네티즌들에게 혼났다.

                물론 공감의 글이 대부분이지만 예상치도 않았던 악플이 섞여서 괴로웠다.

                심하게는 마녀사냥 글이라 악플을 달았는데.. 이러다간 내가 나를 잡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암시랑도 않더니만,

                말꼬리,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지니, 이래서 사이버 다툼이 생기나보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함께 다투려 시시비비를 논할 설왕설래가 싫기만 하다.



                #

                4호선 거의 마지막 정왕역에는

                여자 화장실에 등이 굽은 할머니의 뒷짐 진 모습을 그린 한국화가 걸려있는데..

                붓질 몇 개의 선으로도 얼마나 그림이 내겐 좋아 보이는지..

                늘 찍어야지 했었는데,

                마침 그 때 청소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직접 엎드려 걸레질을 하시는 것이다.

                그림보다 엎드려 걸레질을 하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부터 나도 모르게 먼저 찍었다.

                급하게 조작하느라 후래시가 터지고 아주머니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짐짓 그림을 찍는 척하며 ....

                "아니...왜 바닥을 손수 걸레질 하세요? 대걸레는 어쩌고?"

                딱히 더러워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집안일처럼 그렇게 하는 것뿐이라는..

                그 아주머니의 사진은 애석하게도 날려버렸다.


                모든 일에 열심을 다하는, 그런 이들은 자기 삶에도 솔직할 것이다.

                만나서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



                #

                공중화장실에서

                칸이 네댓 개인 별로 많지도 않은 여 화장실에 사람들이 네댓 명 줄을 섰다.

                내 뒤에 있던 40초반의 아주머니가 줄에서 벗어나...화장실문에 바짝 가까이 가서 섰다.

                아무 말 않으려다가 내 뒤를 돌아다보니..거의가 내 나이 이상인 분들이고 그나마

                그이가 제일 젊다.

                "급하세요?....모두 줄서서 차례대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고개를 휙 돌리더니 "먼저 들어가면 되잖아요?"

                '흥! 별꼴이야~' 그런 표정을 짓는다.

                볼일을 마치고는 황망히 그 곳을 벗어났다.

                두 번 다시  그녀를  부딪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쳇말로...기분 드러버지게 잡치고 싶진 않았기에......,


                #

                그저께는 외지에서 미장원을 갔는데

                여자 둘이서만 손을 맞춰 일하는 곳이었다.

                주인임직한 이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고, 한 이는 있는 그대로 수수한 모습이었다.

                빼어난 외모의 주인인 그녀의 친절도 친절이지만  수수한 이의 친절은 따뜻함과 자상함이 한껏 배인 친절이었다.

                머리를 말고 기다리며 쉬는 시간에 책을 좀 달라고 했더니 두 사람이 동시에 든 책이 달랐던 모양이다.

                "이 책이 나을 것 같아요" 하더니 그녀가 내민 책은 가벼운 읽을거리지만 내용이 밝은 책이었다. " 한 번 읽어 보세요~ 읽을수록 좋아서요.~"

                화보가 잔뜩 든 잡지보다는 열 배 스므 배는 훨씬 나은 책이었다.

                좀 있더니  "저희들 간식인데 함께 빵 좀 드실래요?"  묻는다.

                마침 배가 부른지라 됐다고 사양을 했다.

                "그럼 차라도?"

                기다리면서 좀 전에 녹차 한 잔을 얻어마셨기에 그도 됐다고 사양했다.

                "이거라도 한 번 드셔보세요~ 보기보다 정말 맛있어요!"

                하며 건넨 사탕...

                세 번째 까지는 거절할 수가 없어 하나는 입에 물었는데...

                머리감기기, 말하는 법, 행동하나가, 미용사로써의 숙련된 모습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기본 예의를 잘 갖춘 보기 드문 아가씨였다.


                울 아버지의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주인만한 종업원 없다는...

                이발소에 가시면 주인의 머리 감기는 손에는 애정이 들어있다 하셨다.


                나는 얼핏 그런 상상을 해봤다.

                혹시..자기는 뒷전에서 도우미로 있는 진짜 주인이 아닐까 하고...

                정문에는 없는데...뒷문에는 XXX hair 라고 이름이 적혔기에

                누가 XXX 냐고 물어봤다. 우문 같지만,

                당연히 외모가 세련된 그녀가 주인인 미용실이다.

                머리를 풀고 잠시 카메라를 가져와서 바깥에서 미용실을 한 장 찍었다.


                주인은 퇴근을 하고 아가씨는 눈이 녹아 출입구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물이 빙판을 이루는 곳에, 발판을 갖다 놓는다.

                소금을 뿌려보라고 권유하니...맛소금뿐이라며 배시시 웃는다.

                맛소금이라도 급한 대로 뿌리게 하고 나는 속으로 아가씨를 축복했다.

                미래는 확실히 보다 나은 삶을 꾸려나갈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2005년 12월 7일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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